강남으로 이사온 지 3년이 조금 넘었다. 우리 아이들이나 나나 강남에 산다는 생각보다는 멀리 인천에서 서울로 이사 왔다고 생각하며 지내 왔는데, 최근 ‘강남스타일’이 뜨면서 강남이 어디냐에 대한 전지구적 관심과 함께 우리 아이들도 자신들이 사는 곳이 서울에서도 잘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교육열이 높다는 강남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3년을 동네 아줌마들과 부대끼면서 강남스타일이 저런 것인가 조금씩 느껴가고 있다. 아직도 강남 아줌마가 아닌 이방인인 내게 강남스타일은 이런 것이 아니라 저런 것이다.

내가 사는 강남은 압구정, 청담, 대치동은 아니고 서초동이다. 서초동 특성상 법조인이 많고 기타 의사, 방송인 등 전문직, 그리고 대기업 회사원 아니면 사업가들이다.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는 자유로우나 그렇다고 대단한 부자들이나 자산가는 아닌, 서민과 중산층(중산층은 물건을 살 때 가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계층이란다)의 가운데 층 정도라고 할까?

우리 동네 대부분 엄마들은 24시간 아이들 교육에 매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 동안도 자신의 인생에 투자하기보다는 아이들 교육정보를 위해 엄마들끼리 모임을 갖거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한다.

엄마들 모임의 주제는 단연 ‘요즘 어느 영어학원, 수학학원이 좋아졌다’ ‘어디가 대세다’ 뭐 이런 것들이다. 나 같이 교육정보가 없는 엄마들이 고급정보를 얻으러 갔다가, 내가 지금 아이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 거 아닌가 불안감에 휩싸이는, 그야말로 ‘시험에 드는’ 곳이다.

처음엔 거기서 들은 대로 이것저것 아이를 학원에 보내보기도 했다. 영어학원을 보내지 않고 있는 입장에서 괜한 불안감에 떨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지금 행복해야 한다며 영어, 수학 공부를 시키지 않다가 대표적인 동네바보로 놀림받아 결국 전학간 아이의 에피소드를 들으면 공포감은 극에 달한다.

엄마들의 밀착서비스는 사교육에서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의 장까지 장악했다. 처음 이사를 와서 놀이터에 놀러 갔다가 서너살 아이들만 있어서 이 동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은 다 어디 있을까 궁금했다. 토요일 오전엔 거의 아기들만 조금 있다가 오후가 되어야 초등학생들의 모습을 드문드문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모르는 아이들이 우연이 만난 것이 아니라 한 무리의 엄마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와서 신나게 두어 시간 놀더니 다 같이 철수했다. 저게 강남스타일인가? 다른 친구들 없이 엄마가 아이들만 데리고 온 나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그러다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만나면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한 무리의 놀이떼 습격이 더 자연스러운 놀이터 풍경이다. 엄마들은 교육정보를 알아내어 아이를 좀 더 나은 학원으로 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괜찮은 친구와 엮어서 같이 놀 스케줄까지 짜는 것이다. 정말 부지런한 엄마들이다.

큰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같은 반 엄마들을 중심으로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에게도 생겼지만, 나에게도!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좋아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가 있어도 그 아이 엄마와 내가 친하지 않으니 금방 소원해졌다. 그 아이는 그 아이의 엄마와 단짝인 엄마의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나 같은 직장맘의 아이들은 불쌍한 측면이 많고, 직장맘들은 말과 행동을 조심하지 않으면 엄마들한테 미움받기 십상이다. 나는 그나마 시간활용에 융통성이 있어서 다행이나 빡빡하게 시간에 얽매이는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들의 경우 일찌감치 사표를 내거나 아니면 엄마와 아이가 함께 왕따가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강하게 자라거나 혹은 불쌍하거나다.

이상의 모든 강남교육의 문제점은 ‘경쟁’과 엄마들의 지나친 교육개입으로 요약된다. 이것이 어디 비단 강남교육만의 문제이겠는가?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그럭저럭 3년 조금 넘게 서초동에 살면서 서초동 구석구석을 알아가고 강남스타일에 적응해 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 적응이 안 되는 점들도 있지만, 그래도 알면 알수록 주말이나 방과 후에 취미활동을 하기 좋은 교육기관이나 엄마들 여가 활용을 위한 시설이나 기관도 가깝고 유흥가는 별로 없어서 환경이 참 좋은 동네인 것 같다.

그리고 독서교실, 영어학원 등등 학습능력을 키우기 위한 학원들도 아이들 특성과 수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구비되어 있어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선생님들 수준도 높은 편이다. 그만큼 교육편의시설 측면에서는 압도적으로 좋은 환경을 자랑한다.

나를 강남예찬론자로 만든 이 좋은 환경이 진정 가치를 발휘하려면, 엄마들의 결단이 필요한 것 같다. 얼마 전 모 신문사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을 지키기로 결단한다면, 우리 동네 아이들 지금도 미래에도 정말 너무너무 행복해질 것 같다.

올해 볼라벤과 덴빈이라는 두 태풍이 우리나라 남해안과 영동지방을 강타한 후, 나무들이 가을에 개화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봄에 본 꽃을 또 보니 아름답고 좋을 것 같았으나, 농민들은 울상이었다. 때가 되지 않았는데 너무 일찍 꽃이 핀 나무는 내년에 열매를 맺어야 할 시기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들도 아이에게 내년 봄에 피울 꽃을 올 가을에 피우라고 강요하면서 진정한 열매를 맺을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