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석에 있던 칠십대의 남자가 도끼눈을 뜨고 피고석에 앉은 변호사에게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었다.
“내가 피고에게 물어보겠으니 꼭 대답해야 해요.”
재판장이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원고로 나오셨으면 피고측 대리인인 변호사에게 그러실 게 아니라 재판장인 저에게 말씀을 하세요. 판단은 제가 합니다.”
“아니에요. 내가 물어볼 게 있으니까 가만히 계세요.”
영감은 막무가내였다. 영감은 법정을 독차지하면서 농락하고 있었다. 이미 재판규칙은 무시됐다. 할 말 안할 말 엉뚱한 트집이 끝없이 계속됐다. 법정경비원이 슬며시 영감의 옆으로 다가가 재판장의 명령을 기다렸다. 제재를 할 정도에 이른 것이다. 재판장인 오상용 부장판사는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듣고 있었다. 방청객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영감 너무 하네. 재판장이 젊어 보이는데 대단해. 저 끝도 없는 말을 싫은 기색 없이 다 들어주는 인내가 정말 놀라워.’
그건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었다. 이윽고 재판장이 부드러운 얼굴로 원고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잠깐만 뒤를 보시죠.”
방청석에는 재판을 받으러 나온 사람들이 화가 난 표정으로 꽉 차 있었다.
“더 들어드리고 싶은데요, 저분들이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죠?”
재판장이 부드럽게 설득했다.
“이제부터 변론을 해야겠습니다.”
원고석의 칠십대 남자가 개의치 않고 내뱉었다.
“여태까지 하신 건 변론이 아니고요?”
재판장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되물었다. 재판장이 덧붙였다.
“지금부터 십분 동안 얘기를 더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말 못한 게 있으면 다 써서 내시면 제가 빼놓지 않고 읽겠습니다.”
십 분이면 엄청난 시간이었다. 재판장은 어조조차 흩트리지 않은 채 능숙하게 사건에 대한 심리를 끝냈다. 그 인내에 감동한 방청객 중 누구도 시간이 지체됐다고 불만인 사람은 없었다. 그걸 본 나이 먹은 사람들 중 누가 이렇게 말했다.
“누구네 집 아들인지 정말 훌륭해. 판사는 저래야 해.”
재판장에게는 인내뿐 아니라 현명함도 있었다. 누가 억울한가를 먼저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런 훌륭한 법관의 모습은 소개되지 않고 막말판사만 부각되는 세상이다. 나이 먹은 사람에게 ‘늙으면 죽어야 한다’느니 ‘입은 터져서 아직도 말이 계속 나오냐’느니 하는 험한 말을 하는 판사도 있다. 권위의식과 비현실적 사회인식으로 오염된 내면이 표출된 것이다. 판사들이 법 지식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인품 면에 있어서는 가라지가 마구 섞여 있는 현실이다.
‘유감이다’라는 정도의 진심 없는 사과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가라지들은 뽑아내야 한다. 덮어주고 대신 사과해 준다고 가라지가 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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