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을 늘 피해 다녔다. 1986년 군법무관부터 치면 법조경력 27년차가 다 되어 가는데, 부끄러운 일인지 운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사형을 구형한 적도 선고한 적도 없고 변호사로서 변호한 피고인이 사형을 선고받은 적도 없다. 사형 집행을 본 적도 없다. 내가 기억을 못하고 있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사형 선고를 받은 일은 당연히 없다. 사형이 구형된 사건을 재판한 적은 있으나, 고심 끝에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던 일은 몇 번 있다. 사형 감인데 의도적으로 사형을 피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택시를 탔더니 기사가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성범죄와 강력범죄가 빈발하므로 그동안 유보하였던 사형집행을 재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들을 사형시켜 사회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형을 늘 피해 다녔지만, 명색이 변호사인데, 택시기사와의 사형제 토론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한참 동안 나의 설명을 들은 택시기사는 이게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는 결론에는 찬성하여 주었다.

헌법재판소는 2010년 2월 25일 사형제에 대해 5 대 4로 합헌결정을 선고하였다. 헌재는 1996년 11월 28일에는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범죄행위에 대해 행위자의 생명을 부정하는 사형을 규정한 것은 행위자의 생명과 그 가치가 동일한 하나 혹은 다수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1996년 결정 당시 김진우·조승형 재판관 2명만 사형제는 헌법 제10조 및 제37조 제2항 단서에 위반된다는 소수의견을 취했다. 13년이 지난 후 위헌론을 취한 재판관이 4명(조대현, 김희옥, 김종대, 목영준)으로 늘어났다. 네 재판관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전제로 사형을 폐지하여야 한다고 하였고, 합헌 측 민형기·송두환 재판관도 사형 대상을 축소하거나 시대상황을 반영해 개선하여야 한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재판관 구성이 대거 바뀐 후의 5기 헌법재판소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미지수이지만, 사실 헌법 제110조 제4항에 ‘사형’이라는 용어가 나오는 우리 헌법 하에서 그리고 이론적·정책적으로도 사형폐지론과 사형존치론의 입장이 각각의 논거가 분명하고 팽팽히 맞서 있는 상황에서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 무리가 있다. 사형제 폐지 또는 개선 문제는 다수결의 원칙을 통해 국민의 다수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입법 내지 정책의 문제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가 있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사형제도 개선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바람직한 현상이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최근 국회 본회의 답변에서 개인적으로는 종신형 도입을 전제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제19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입법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국민여론과 형법문화의 시대적 변화상황 및 국제인권법의 정신과 UN의 권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유럽의회는 2010년 3월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에 대한 비난 결의안을 채택한 적이 있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래 우리나라는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어 국제적으로는 이미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형 선고는 하되 집행은 하지 않는 이러한 어정쩡한 입장이 ‘사형집행의 명령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하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제465조 제1항의 규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형사소송법을 무조건 준수하자는 주장은 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외교적 및 국제인권법적인 이유로 인해 형소법을 준수하는 것이 어려운 이상, 차제에 형소법을 사법관행에 맞게 개정하여야 한다.

흉악범죄에 대한 사법적 대응의 필요성 측면이나 일반국민의 다수 여론에 비추어 아직은 사형제 폐지가 시기상조라고 볼 여지도 있다. 사형을 선고는 하되 집행은 하지 않는 사법관행과 우리나라가 사형 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EU에 한 외교적 약속 등을 반영하여, ‘사형은 선고하되 일정기간 사형 집행을 유보한 뒤 그 기간이 경과하면 종신형이나 무기징역형으로 감형해 주는 방안’을 현실적으로 고려할 만하다.

국회가 개선방안을 마련함에 있어 공청회를 통하여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할 텐데, 변호사단체도 개선방안 마련에 적극 동참하고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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