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 사망원인에 대한 기사를 접하였다. 꼭 법조인이 아니라도 비슷하기는 하겠으나 아련히 마음이 아프고 애잔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오늘 또 힘을 내야하는 우리들에게 ‘행로란’이라는 이백의 한시 한 수를 전하고 싶다.

금잔의 청주는 만금이요
옥반의 진미는 만전이라
잔을 멈추고 젓가락을 던지고는
검을 빼어들고 사방을 바라보나니,
가슴이 막막하다.

황하를 건너자 했더니
얼음이 강을 막고
태항산을 오르려 했더니
눈이 산에 가득하네

푸른 시내 낚시는 한가로운데
해 뜨는 곳으로 가는 배의 꿈이여!
인생길의 어려움이여, 어려움이여!

수많은 갈래길에서 나는 지금 어디 있는가!
큰 바람이 물결을 깨치는 날이
반드시 오리니
구름 같은 돛을 곧장 펴고 드넓은
창해를 넘어가리라
이백은 자 태백(太白). 호 청련거사(靑蓮居士).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남성적이고 용감한 것을 좋아한 그는 25세 때 촉나라를 떠나 양쯔강(揚子江)을 따라서 장난(江南)·산둥(山東)·산시(山西) 등지를 편력하며 한평생을 보냈다. 가정에 정착한 적은 드물었다. 맹호연(孟浩然)·원단구(元丹邱)·두보 등 많은 시인과 교류하며, 그의 발자취는 중국 각지에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이백의 생애는 방랑으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났다. 청소년 시절에는 독서와 검술에 정진하고, 때로는 유협(遊俠)의 무리들과 어울리기도 하였다. 쓰촨성 각지의 산천을 유력(遊歷)하기도 하였으며, 민산(岷山)에 숨어 선술(仙術)을 닦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방랑은 단순한 방랑이 아니고, 정신의 자유를 찾는 ‘대붕(大鵬)의 비상(飛翔)’이었다. 그의 본질은 세속을 높이 비상하는 대붕, 꿈과 정열에 사는 늠름한 로맨티시스트에 있었다. 또한 술에 취하여 강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가 익사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그런 그에게도 현실 사회나 국가에 관한 강한 관심이 있고, 인생의 우수와 적막에 대한 절실한 응시가 있었다.
이백은 당시 부패한 당나라 정치에 불만이 많았고 자신의 정치적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바랐으나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못하여서인지 이백은 오히려 인간을 초월하고 인간의 자유를 비상하는 방향을 취하였다. 그는 인생의 고통이나 비수(悲愁)까지도 그것을 혼돈화(混沌化)하여, 그곳으로부터 비상하려 하였던 듯하다. 술이 그 혼돈화와 비상의 실천수단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이백의 삶을 돌이켜보며 한시를 음미하다 보면 천하의 재인으로 태어난 이백의 가는 길이 순탄치 않은 데 대한 울분과 탄식이 느껴지지만 그를 넘어서 끝내 꿈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며 ‘언젠가 큰 바람이 불어오면 나는 그 바람을 타고 대붕처럼 날 것을 꿈꾸는’ ‘구름 같은 돛을 달고 곧장 펴고 드넓은 창해를 넘어가리라’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 가을 우리 가슴을 크게 한 번 들이켜 창해를 넘어가는 돛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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