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대학동기회 골프모임에서 고검장 출신 모 변호사와 한 팀을 이루어 골프를 쳤습니다. 팀 동료 전부가 변호사들이어서 당연히 수임료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고검장 출신 변호사가 “강판, 자네 수원에서 잘 나간다고 하던데 한 건에 얼마씩 받는가”하고 묻길래 저는 “건당 500만원 기준으로 받고 1000만원 건은 1년에 한두 건이며 300만원 건도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고검장 출신은 “이런! 자네 그런 식으로 해서 언제 돈을 모으겠나. 나는 사무장이 약정한 건을 가지고 들어오면 먼저 0이 몇 개인지 살피는데, 보통 8개라네”라고 자랑을 하더군요.
저는 ‘0이 8개’라는 숫자가 선뜻 감이 오질 않아서 멈칫거리며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니, 아 글쎄 그게 소위 말하는 ‘억대 수임료’더군요.
김 모 장관이 전화 한 통에 1억원씩 받았다고 하니 그 고검장 출신 변호사가 한 말도 빈말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걸 보면 서울이 좋기는 좋은지라,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옛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제 경우라면 건당 500만원을 기준으로 수임료를 받고 있으니 20건을 맡아야 1억원이 되더군요. 그러니 그 고검장 출신은 소위 대단한 범털 변호사인 셈입니다. 말하자면 그 친구가 호박 한번 구르듯이 지나간 길을 저는 도토리처럼 몇십 번을 굴러야 갈 수 있는 셈입니다. 그 친구와 비교를 해보니 저는 애는 써도 돈은 되지 않는 개털 변호사인 셈이더군요.
저같이 변두리 도시에서 변호사를 하자면 사건을 많이 맡아야 합니다. 그나마 저는 개업 초장에 많은 사건을 선임했고, 그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새 의뢰인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주곤하니 수임 건수는 그런대로 유지하면서 변호사 일을 하고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새 의뢰인이 제가 아는 사람을 앞세우고 와서 선임료를 깎아달라고 할 때마다 저는 두말 않고 그렇게 해줍니다. 사실 저는 정액 선임료라는 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보니 품이 많이 드는 소위 ‘깡치사건’들이 종종 있어 선임료 깎아준 걸 후회한 적도 종종 있긴 하지만요.
인생의 봄날은 일찍 지나갑니다. 억대수임료를 자랑하던 그 범털 변호사의 생명은 그래 오래가지 않았고, 로펌의 골방으로 쫓겨나서 사건 수임도 거의 없이 지내는 모양입니다.
저는 어쨌든 선임 건수가 많은 변호사여서 변협이 관리하는 특별변호사 명단에서 한번도 빠지질 않더군요. 그래서 6개월마다 사건 선임 관계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데, 환갑 진갑을 넘긴 이 나이한테도 정기적으로 이런 보고서를 작성하라니 좀 섭섭하긴 합니다.
제 나이 65세.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됐으니, 이제 특별변호사 명단에서 빼줘도 될 나이가 아닌가요? 솔직히 말해 선임 건수보다는 선임료가 과다한 변호사가 변협의 특별관리 명단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변호사 1만2000명 시대에 한달 한달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를 걱정하는 변호사들, 또 잠깐의 포만감 때문에 당사자의 돈을 횡령하여 교도소에서 실형을 사는 변호사들 얘기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제가 범털 변호사가 아닌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수임 사건이 없어서 당장 끼니 걱정을 하는 개털 변호사 또한 아닌 모양입니다. 범털과 개털 중간에 다른 털이 있다면 토끼털변호사쯤은 되겠구나… 하고 자위를 해봅니다.
옛날 옛날엔 변호사 깃발만 꽂아도 사건이 몰려와서 주체를 못했다던데, 이젠 변호사들이 사건을 찾아나서야 하는 세상이 됐네요.
그런데 변호사 수만이 아니라, 변호사들의 질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대방 변호사로 소송을 해보면 사건 보는 눈을 좀 더 길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는 변호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결국 본인이 부단한 노력을 해야 개털변호사 처지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하고 행동하면서 평생 책을 놓아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볕바라기로 앉은 툇마루에서 저는 적어도 개털이 안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혹시 범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꿈을 꾸면서 오늘도 세월을 낚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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