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외숙 변호사

부산지방변호사회는 변호사와 부산지역의 학교를 일대일로 연결해 학교폭력예방 교육에 힘쓰고 있다. 우리 법인의 박 변호사도 얼마 전 집 근처의 한 중학교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교폭력예방 강연을 다녀왔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교사들은 학교폭력사건이 발생했을 때 부담할지 모르는 민사책임이나 형사책임에 특히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내게도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몇 달 전이다. 퇴근시간 무렵 휴대전화로 아이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예기치 않은 전화는 대개 나쁜 소식일 때가 많은데 과연 그랬다. 그날 아이에게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고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으니 집에 가서 아무 말 말고 그냥 아이를 안아주라고 하였다. 일하는 엄마로서 자격지심이 있던 나는 처음 통화하는 부장교사의 말을 죄인의 심정으로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만으로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날 학교에서 어떤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었는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내 이런 질문에 돌연 그녀의 전화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바뀌었다. “학부모들은 언제나 이렇다니까.”
그건 마치 학교나 교사에게 무슨 책임을 묻지나 않을까 지레 자기방어적인 태도 같기도 했다. 하지만 무심코 내뱉은 말이 좀 지나쳤다 싶었던지 곧 처음의 목소리를 되찾은 그녀는 내가 궁금해 하던 것을 이야기했다.
각설하고, 그 사건에서 교사가 보지 못했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교실에서 학생들 사이에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학년으로 같은 교실에 앉아 있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다. 힘의 세기가 동등하지 않고, 신체적 물리적 접촉에서 느끼는 불쾌감의 정도가 다르고, 그만하라는 말이 거듭 무시될 때 느끼는 감정이 똑같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똑같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그런 건 장난이지. 애들은 다 그런 장난치면서 크는 거야’하는 생각으로 넘기고 만다.
아이가 다른 아이의 머리를 팔로 감싸고 목까지 죄어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소위 헤드락도 그냥 남학생이 남자가 되는 통과의례쯤으로 여긴다.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등을 손바닥으로 힘껏 내리쳐도 장난이었다고 하면 장난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학교폭력이라고 말하면 되레 예민하고 속 좁고 이상한 부류가 되기 십상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교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학교의 눈에는 학교폭력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장난과 불운만 있을 뿐 학교폭력이란 건 애당초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 학교가 아이들에게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기를 기대할 수도 없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선 시급한 것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어떤 민형사상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지를 알아두는 일이 아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폭력인지, 다른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 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학교폭력에 대한 단호한 메시지를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강당에서 끊임없이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2009년에 아이가 다니던 미국 케임브리지의 공립학교에는 행동수칙과 운동장 규칙이 여기저기 게시되어 있었다. 그에 따르면 때리는 것, 밀치는 것, 괴롭히는 것, 쫓아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아울러 이를 위반하면 어떠한 결과가 되는지 처벌수위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이를 기준 삼아 우리의 교실을 들여다보면 학교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에서 1년 안식년을 보내고 근래 복귀한 우리 법인 권 변호사의 말도 그러했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학교를 다녀오더니 “미국 학교 같았으면 퇴학당할 아이가 교실에 수두룩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장난인데 괜찮아’하며 안일하게 보아 넘긴다면 학교폭력 근절은 언제까지나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폭력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busandik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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