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중 변호사

평생을 해왔지만 늘 자신이 없고, 하고 나면 불만스러운 것, 그리고 별로 힘드는 것이 아님에도 귀찮은 일 중 으뜸인 것이 이발이다. 옷 고르는 것도 그에 못지않지만 옷 고르는 자리에는 안 가면 그만인데, 이발은 직접 가지 않으면 할 방법이 없으니 피할 수도 없다. 이발하고 나면 모자 쓴 것처럼 답답하던 머리가 시원해지는 것은 좋지만 그 귀찮은 과정과, 뭔가 어색하고 멍청해지는 것 같은 결과가 싫은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불친절한 아저씨로부터 구박을 받으며 머리털을 뜯기는 고통을 참아야 했으므로 말할 나위도 없었지만 어른인 지금도 이런 저런 이유로 가장 하기 싫은 것 중의 하나다. 게다가 요즈음은 염색이라는 옵션까지 추가되었으니 오죽하겠는가?
우선 이발할 곳을 정하기도 쉽지 않다. 동네에는 이발소가 없어진 지 오래여서 이발사에게 깎으려면 목욕탕이나 헬스클럽을 가야하고, 가끔은 서초동 법원 구내이발관 신세도 지는데 그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이발사에게서 이발을 하려면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다. 다 깎은 것 같아 일어나고 싶은데도 한없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위질을 하는 아저씨의 정성을 받아주어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미용실은 이웃집 아주머니 만나는 위험을 피해 멀리가야 하는데 아는 곳이 없으니 결국 마음에 들었든 아니든 언젠가 처가 한번 같이 가준 곳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용실이라는 곳은 그곳이 ‘미용실’이라는 것 자체도 쑥스러운데 들어가 보면 여자들만 잔뜩 있어서 눈길을 줄 곳이 별로 없는데다가 가끔 눈에 띄는 남자들도 대부분 이십대 아니면 삼십대이다 보니 저절로 얌전해지고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머리를 깎으려 자리에 앉고 나면 “어떻게 해드릴까요?” 하고 묻는데 이 또한 대답이 만만치 않은 질문이다. 정말 다른 40~50대 남자들은 어떻게 대답하는지 궁금하다. 아들 녀석과 미용실에 갔을 때 아들이 주문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주문해야 하는 항목이 상당히 많은 것 같은데 그 점에 관하여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냥 전처럼 해주세요. 이발한 지 한 달 되었습니다” 정도다. 결국 한 달 전 상태로 복귀시켜 달라는 주문이다. 그래도 그 말을 하면 이발사든 미용사든 더 이상 묻지 않고 가위를 들고 달려드는 것을 보면 알아듣기는 하는 모양인데 각자 다르게 알아듣는지 결과는 매번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깎는 동안에는 안경을 벗은 탓에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으니 평가나 요구를 할 수 없고 그저 가운 위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의 양이나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일단은 양이 많은 게 뭔가 실속이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다 깎고 난 후의 평가도 쉽지 않다. 너무 길게 깎아서 ‘좀 더 잘라주세요’ 할 경우가 아니라면 불평을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붙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집에 가서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는 안 온다는 마음으로 나올 수밖에.
집에 돌아와서 편안한 마음으로 거울을 보면 그제서야 결과가 눈에 들어오는데 정말 마음에 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처로부터 듣는 말도 늘 정해져 있다. “아니, 어디서 머리를 그렇게 촌스럽게 깎았어요, 군대 가요?” 이런 말 듣지 않으려면 처와 함께 처가 추천하는 미용실에 가면 된다. 그러면 어울린다든지 괜찮다든지 하는 좋은 말이 나오는데, 내가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자기가 추천했으니까 하는 면피성 멘트 같다.
이발이라는 것은 이처럼 잘 해봐야 조금 덜 바보 같아 보이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는 것인데, 그처럼 많은 신경을 써야 하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누가 나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는데?’ 하고 물어도 대답할 말이 별로 없다. 그처럼 오랫동안 이발을 해 왔지만 공부하거나 생각해 보기는커녕, 누구에게 물어본 적도 없으니 무슨 생각이 있겠는가? 이발하러 가서 제대로 주문하고, 주문대로 깎았는지를 확인할 정도가 되면 나도 좀 여유롭고 세련되게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든다. 인생의 어느 다른 부분에서도 이처럼 조그만 관심을 아낀 채 불평만 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걱정도 들고.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발하고 나서 열흘 정도만 지나면 잘 깎은 머리나 못 깎은 머리나 별 차이 없이 그냥 그런 머리가 된다는 점이다. 인생도 그런 것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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