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민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학생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어느 날 창가를 내다보며 그동안의 글들을 되새겨보니 너무 원망만을 많이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행복하고 보람된 일도 많이 있었는데, 잘못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점만을 부각하다보니 우울해지고 스스로가 위축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로스쿨생들은 주변의 질투와 시샘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적어도 자유롭게 꿈을 꿀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전에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보았었다. 물론 가치있는 일이었지만, 적성에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었다. 정말 어렵게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게 되자 며칠동안은 잠도 제대로 오지 않을만큼 행복했었다.
비싼 등록금을 납부하면서도, 내 꿈이 반은 이루어진 것 마냥 즐거웠고, 공부해야 하는 책들이 쌓여가는 것도 마치 그 지식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이 헛기침이 나오고 왠지 권위가 높아지는 것 같아서 좋았다. 어찌저찌 3년여의 시간이 지나면, TV에서만 봐오던 멋진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의 행복은 예전에 꿈꾸었던 그런 이상적인 행복은 아니다. 학습량도 많은데,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도 많다. 이제야 겨우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이리라. 그런데 행복이라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냥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면 다른 이들이 행복의 기준이라고 말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
후자를 기준으로, 주변에서 칭찬해주고 부러워하면 지금 당장의 가혹한 현실에도 매우 행복해지고 우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배우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 로스쿨 입학을 꿈으로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예전의 학부시절처럼 도서관에서 자리싸움을 하지 않고, 지정된 자리에서 더 좋은 지원과 대우를 받고 일정 합격률을 보장받으며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반면 스스로 행복하다는 마음을 갖기는 생각보다 매우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에겐 틀림없이 어려운 일일 것이다. 타인에게 생기는 좋은 일은 쉽게 행복해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쁜 일에 대해 느낄 불행은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뉴스나 신문지상의 사건·사고 등을 보면서 무감각해진 스스로를 보고 놀란 경험이 아마 한번 정도는 있었을 것인데, 반대로 자신에게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작은 일에도 불행해 하고, 행복을 느끼는 데에는 인색한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불행해 하는 현재조차도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왔던 꿈과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로스쿨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등에 불쾌하지만, 그러한 시선조차 부러운 이들이 있을 것이며, 지금 힘들어하는 공부는 누군가에게는 정말 간절한 소망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변호사가 되어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들도, 사법시험을 준비하거나 로스쿨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그런 어려움을 계속 접하면서도 변호사가 되기 위해 밤을 새우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를게 없다.
지금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여유있게 주변을 한번 돌아보면 사소한 행복들이 얼마나 많이 널려있는지 알고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공부가 힘들어질 때면 환하게 웃고 찍은 입학사진을 다시 찾아보며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되새겨보고, 그래도 힘이 들면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올리면 다시금 힘을 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에 대한 논쟁, 로스쿨 졸업자들에 대한 불신, 넘쳐나는 학습량, 매일 만나는 이들과의 대인관계 등의 어려움을 접하며 자존심이 상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막상 행복이라는 것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이들에게 그러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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