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철 변호사

사실관계를 정리하면 이렇다. 2009년 2월 24일 11시 35분경 장모씨가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체포돼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당일 오후 5시 30분경 남대문경찰서로 가서 장씨를 접견했다. 그런데 장씨는 자신이 체포된 이유를 잘 알지 못하였다. 장씨가 어떤 혐의로 체포됐는지를 알아야 변론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남대문 경찰서 지능팀으로 가서 담당 경찰관에게 장씨의 체포영장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담당경찰관이 건네준 체포영장을 보고 있는데, 지능팀의 다른 경찰관들이 선임계도 없이 체포영장을 무슨 권한으로 보느냐며 제지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 장씨의 부인과 통화한 후 사무실의 직원에게 부인 명의의 선임계를 제출하고 체포영장을 등사해 올 것을 지시하였다. 그런데 남대문 경찰서에 간 직원이 전화로 말하기를, 경찰이 변호사더러 직접 와서 열람·등사하라는 것이었다(변호인에게 기소 전 체포영장 열람·등사청구권이 존재하느냐는 소송에서 쟁점이 된 것이었고, 이때는 경찰은 변호사가 직접 선임계를 들고 와야 열람·등사가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담당 경찰관과 통화를 한 후 이들의 완고한 입장을 확인하고는 바로 직원에게 철수하라고 하고 국가배상청구소장을 작성하였다(1심 서울남부지법 2009가단15903 판결, 항소심 같은 법원 2009나7446 판결, 상고심 대법원 2010다24879 판결).
이 사건 소송이 진행되는 내내 나는 경찰의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변호인 선임서의 선임인이 장모씨가 아닌 그의 부인으로 되어 있어서 적법한 선임서가 아니라는 주장은 형사소송법 규정에 비추어 어이없는 주장이었고, 법무법인 사무원증을 들고 간 직원을 유령취급하면서 변호사가 직접 와서 영장을 열람·등사하여야 한다고 한 주장도 일반적인 변호사 업무처리의 관행과 전혀 동떨어진 주장이었다. 소제기에 대하여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자못 궁금했다. 국가(경찰)의 1심에서의 답변은 이랬다. 변호인 선임서의 선임인이 장모씨가 아닌 그의 부인으로 되어 있어서 적법한 선임서가 아니고, 따라서 내가 적법하게 선임된 변호인인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직접 남대문서로 오라고 한 것이므로 아무런 직무상 과실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법적인 논변으로 받아들여질리 없음은 물론이다.
항소심에 와서 경찰은 1심의 주장을 유지하면서 나아가 체포영장이 형사소송법 제47조의 소송에 관한 서류이므로 공판 개정 전 공개를 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덧붙여 “변호인의 형사기록 열람·등사는 헌법상의 변호인의 조력권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이나, 자칫 수사단계에서 형사기록의 열람·등사가 무제한적으로 허용된다면 참고인 회유, 증거인멸, 증인협박, 증거조작, 수사의 현저한 지연 등이 우려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나를 매우 황당하게 했다. 피의자신문조서나 참고인 진술서의 열람·등사를 요청한 것도 아니고 어떤 물적 증거의 열람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경찰이 혐의를 두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게 ‘참고인 회유, 증거인멸, 증인협박, 증거조작, 수사의 현저한 지연 등’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헌재 결정례 가운데에는 구속적부심 단계에서 수사기록 중 고소장과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한 변호인의 열람 및 등사신청 거부가 위헌이라는 것도 있다(헌재결 2003. 3. 27. 2000헌마474 결정). 또한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6에서 준용되는 제87조 규정에 의하면 피의자 체포시 사건명, 범죄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 등을, 변호인이 있는 경우에는 변호인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나는 체포영장의 별지 범죄사실에 이 ‘범죄사실의 요지’가 담겨있어 열람을 요구한 것뿐이었다.
경찰은 공권력의 상징과 같은 집단이다. 공권력이 뭔가? 합법적 폭력이다. 공동체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국민이 위임한 것이 공권력인 거다. 공권력의 권위는 공권력이 확보하고 있는 힘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이 공적으로 쓰인다는 데 있다. 따라서 공권력의 행사에 대한 국민의 동의와 자발적 지지는 공권력의 권위와 정당성의 원천이 된다. 그러자면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의 궤를 이탈하지 않는 공권력의 행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이 사건은 상식적인 견지에서 보면 소송까지 갈 사건은 아니었다. 체포영장 별지 부분에 어떤 수사기밀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고, 피의자가 자신이 어떤 혐의로 체포되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보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러한 상식적인 판단을 외면하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러한 상식을 확인해 주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최고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 이 사건 당사자로서의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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