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소송은 변호사의 변론 재능 기부”

“변호사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희생, 봉사 이런 단어는 아닐 겁니다. 공익소송은 철저히 ‘재능기부’의 의미입니다. 변론 전문가니까 변론으로 도울 수 있는, 봉사의 길을 찾은 겁니다.”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낸 첫 번째 대한변협의 공익소송이 승소했다. 대한변협 공익소송위원회가 거둔 첫 번째 공익소송이 승소로 마무리된 의미 있는 사건의 주인공 임치용 공익소송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배경과 의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6개월 가량의 노력이 성과를 이뤄냈는데요, 제1호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들의 입장이 옳다고 확인해줘 기쁩니다. 중앙일보가 사설에서 변호사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하는 등 변협이 제대로 가는 길이라는 언론의 반응이 무척 고맙습니다. 국민과 언론의 성원과 지지가 큰 힘이 됐습니다.”
9월 18일자 신문 대부분이 변협의 공익소송 승소 소식을 다뤘다. 1인당 50만원의 배상금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지난해 3월 공익소송 1호로 기아차 카니발의 에어백 허위광고로 정하고 성명서를 냈을 때 반응이 정말 뜨거웠습니다. 바로 다음날 기아자동차 측이 사과성명을 냈을 때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거액을 받는 게 목적이 아니었으니까요. 대기업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등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상당 부분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소송을 내겠다고 지원하신 분 중 상당수가 리콜을 받거나 기아 측이 제시한 금액을 받고 소송을 포기하셨고, 소송을 계속하신 분들은 법원으로부터 판단을 받는 것이 의미가 있다 생각하신 분들입니다.”
원고들은 거액의 배상금을 원하여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국내 소비자를 외국 소비자와 차별한 것이 위법하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한 것이므로 배상금액의 다과는 항소 여부를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항소할지 여부는 위원회가 원고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설명. 추가적인 소송이 필요하다면 공익소송이 아니라 변호사인 회원들이 통상적인 경로를 통해 진행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임치용 변호사의 설명.
미국의 경우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클래스 액션이라는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이 제도화되어 있어 한 번의 소송으로 세계적 기업이 해체될 정도의 손해배상을 받아낸다. 소비자소송을 주도한 시민의 대변자 랄프 네이더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랄프 네이더는 소비자 보호·반공해운동의 지도자인 변호사로, 1965년 GM(제너럴모터스사)의 차 결함을 고발한 ‘어떤 속도로도 위험’이란 책을 저술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이후 일반대중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변호사의 사명임을 깨닫고 젊은 변호사들의 그룹인 ‘네이더 돌격대’를 이끌고 대기업과 정부의 부정을 잇달아 적발, 많은 성과를 올렸다.
변협의 공익소송특별위원회가 미국처럼은 아니더라도 소비자가 존중받는 시민사회로 가는 거름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미국의 소비자 단체 소송처럼 거액의 판결금액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징성을 갖는 어느 사건을 계기로 대기업이나 국가 등의 위법한 행위를 법원의 판결을 통해 시정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소송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피고는 대기업이고 당연히 소송수행도 대형로펌에서 했죠. 저희는 아무래도 청년변호사들이 위주가 돼서 했고요. 변협에서 약간의 보조를 받을 뿐이고요. 그러나 저희는 열의, 정의감, 봉사정신? 이런 게 있었어요. 사실 이번 사건은 사건 자체가 간단하고 쉬웠어요. 자동차공학까지 들어가면 힘들었겠죠. 그러나 공익위원회에도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들어오는 등 다양한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청년변호사들이 많아지고 거기다 봉사정신이 더해지니 막강해지겠죠. 저희 공익소송위원회에는 홍일표 전 사법연수원장님부터 변호사시험 1기까지 다양한 경력의 변호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소송수행을 의논하니 대단하죠. 소송수행상의 어려움이요? 사건발굴이 가장 어렵습니다.”
“그렇군요. 어떤 기준으로 공익소송의 대상을 정하십니까?”
“우선, 한 개인의 권리구제는 공익소송대상으론 적합하지 않다고 봅니다. 다수의 피해자가 있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미 변협의 회원인 변호사가 수임하고 있는 경우라면 원고가 다르더라도 대상으로 삼을 수가 없지요. 법을 지키고 소비자를 생각해야 기업이 오래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을 고르다 보니 힘들어요. 저는 소장제기 단계부터 승리하는 사건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고의 입장에서도 사건화할만하다고 느낄 정도라야 합니다. 기업이 악이고 소비자가 선이라는 구도를 제일 경계해야 합니다. 누가 선이고 악이라는 것을 밝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공익소송을 추진할 때 가장 염두에 두었던 점이 정당성, 윤리성, 도덕성의 확보였다. 경제적 이익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소송수행한 변호사 개인이 조명받는 것도 꺼렸다. 유명해져서 송무에 도움을 받고자 한다는 오해를 받아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철저히 변호사의 재능기부, 변협이 봉사단체라는 것을 확인하는 소송이어야 했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곡괭이질 잘하는 사람은 곡괭이질로 남을 돕듯이.
희생도 변호사의 자질 중 하나임을 알렸으면 좋겠다.
“어떤 사건을 다음 공익소송 대상으로 삼으실 건가요?”
“살인적 이자로 고통 받는 사건을 대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금융소비자에게 말도 안 되는 고율의 이자를 강요할 수 없도록 제도적 정비가 절실합니다. 이자율 체계 등에 대한 일본 판례 등을 참조하면 될 것 같아요. 일본변호사연합회 우쓰노미야 겐지 전 회장님이 그 운동을 하고 이자율 제한 법제화를 이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비제도권 사금융피해자들을 모아 상징적으로 소송을 내보고 싶어요.”
서울중앙지법의 파산부장 출신다운 의견이었다.
임치용 변호사는 지난 집행부에서 기획이사로 일했다. 김평우 협회장을 도와 의욕적으로 일했다. 변협포럼을 만들고 공익소송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협회지인 ‘인권과 정의’를 맡아 학술진흥재단 등재지로 선정되는 보람도 맛보았다. 올해 2월, 대한변협에서 공로상을 수여한 것도 그의 이런 헌신에 대한 감사표시였다. “사실 제가 법원 출신인 전관이잖아요. 거기다 대형로펌인 태평양에 근무하고요. 협회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개업변호사들의 어려움이나 애환에 대해서 잘 몰랐을 거 같아요. 일부러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정말 일이 바쁘니까요. 여러 계층의 다양한 변호사들을 만나면서 변협이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국민을 위해서는 뭘 해야 하나, 고민해 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선거관리위원회, 윤리장전개정특별위원회, 국제교류위원회에 나가 열심히 참여합니다. 혜택을 많이 받은 변호사로서 봉사해야 한다는 걸 느낀 것이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열성적인 이유는 김평우 협회장 집행부에서 이뤄낸 변협 협회장 직선제가 잘 정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법무부, 법원에서도 ‘직선제로 대표를 뽑으니 정말 더 발전하고 법조 삼륜의 한축의 역할을 하는구나’라는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에서다.
“선배님들이 그러셔요. 옛날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수도변호사회와 제1변호사회로 나뉘어져 있다가 통합될 때 정말 힘들었다고요. 나눠진 마음을 다시 합치는 것은 나눌 때보다 훨씬 힘든 법이라고. 분열은 최악입니다. 변호사들이 이렇게 힘들 때 위기의 시대를 잘 헤쳐나갈 수장을 단합된 모습으로 선출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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