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세금낭비 철저히 수사해 제대로 규명할 것”

얼마 전 서울시민은 분통이 터지는 뉴스를 접했다. 서울 반포대교 남단에 띄어놓은 인공섬 세빛둥둥섬에 둥둥 떠내려간 세금 때문이다. 절차는 무시되고 투자비 부풀리기, 민간사업자 특혜 등 ‘갖가지 문제의 종합선물세트’라는 게 드러났다. 민간사업자의 잘못으로 계약을 해지해도 해지 시 지급금을 서울시가 내도록 계약하고, 통상 연간 1억원 이하인 하천준설비가 10억원(30년간 318억 지급)으로 책정되는 등 민간사업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17년. 지방자치제는 주민의 환경과 상황에 맞는 정책으로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부실과 부정, 세금낭비의 어두운 면들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감사원, 검찰 등 국가기관에서 이를 감사하고 견제하면 될 것 같지만 ‘중앙정부의 길들이기’ 또는 ‘지방자치정신의 훼손’ 등으로 오해받기 쉽다.
그래서 대한변협이 나섰다. 법률전문가단체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세금낭비를 감시하고 적발해 썩은 살을 도려내 건강한 지방자치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할 작정이다.
박영수 지자체세금낭비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조사계획을 들었다.
“도대체 변호사들이 왜 지자체 일에 간섭하느냐는 소리 듣겠는데요.”
“전통적, 고전적 변호사 개념으로 보면 그렇지요. 수동적이고 법 논리에만 매달려도 그렇고요. 사회가 다변화하고 갖가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대사회에서 법률전문가로서 다수의 말하지 않는 국민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소수 의뢰인에서 다수 국민으로 확장된 거죠. 이 또한 변호사의 사명인 사회정의실현을 위한 봉사의 한 모델이라 생각합니다.”
대검 중앙수사부장을 역임하고 현대, 대우, SK 등 거대재벌을 상대로 수사를 벌였던 서울고검장 출신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약간 긴장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원시원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모습에서 금세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의뢰인의 턱없는 요구에 고민하지만 ‘정의’를 생각하는 변호사의 모습에서도 검사출신 특유의 결기도 느껴졌다.
“변호사는 다 생업을 유지해야 하는, 자기 일이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이 사람들이 모여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내느냐가 관건이겠죠. 적극적으로 조사를 전담할 인력과 시설이 턱없이 모자라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 중입니다. 일단 과거 문제 됐던 부분들, 현재 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세금 낭비사례를 꼼꼼히 스크린할 작정입니다. 법률전문가들답게 소송으로 해결할 부분이 있는지 찾아볼 겁니다.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이미 문제제기한 부분들을 점검할 겁니다. 찾아가서 확인하고 대조해볼 겁니다. 또 우리가 찾아내는 성과도 내야죠.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제일 강점입니다. 정치적 타협이나 고려 없이 성심성의껏 조사해줄 것이라 믿어주실 것이라는 점, 법률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게 우리의 강점입니다. 여타 시민단체들과 다른 점이죠. 낭비사례의 세부적 사실을 조사할 때 관계자들의 협조를 받기 어려운 점이 제일 약점이고요.”
요사이 불거진 지자체 세금낭비 사례야말로 한두 건이 아니다. 직원 10명 근무하는 면사무소를 100억원대 공사비를 들여 짓거나 친인척을 공무원으로 발령낸다거나 턱없는 토목사업을 벌이는 일 등이 대표적 유형이다. 감사원은 지난 5월, 지방자치단체들의 건설업체와의 유착으로 인한 비리 실태를 발표했다. 지자체가 지역 건설업체들과 공사계약을 하면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고는 뇌물과 향응 등을 받은 비리 사례는 끊이지를 않는다.
경기 용인의 공무원 세명은 2007년 하수처리시설 투자사업 협약을 편법으로 변경해 수의계약으로 특정업체에 284억원의 특혜를 줬다. 그 대가로 두 명은 두 달여간 미국과 캐나다로 6400만원자리 호화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한 명은 자기 딸을 그 업체에 취직시켰다. 전남 신안의 한 공무원은 체육공원을 만들면서 2개 업체에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해 600만원을 받았다. 대신 설계변경을 통해 공사비를 올려줬다. 경기도 성남 분당구의 공무원 두 명은 지하차도 유지 관리 업체가 거짓으로 신청한 용역비 1억9500만원을 지급했다. 그리고는 단란주점에서 향응을 받았다. 부산시, 인천시, 경기 부천·용인, 경남 함안, 전남 나주 등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비리가 적발됐다. 감사원은 비리 혐의자 32명에 대해 파면 또는 징계 등을 요구하고 4명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렇듯 검찰이나 감사원의 감사, 수사는 형사적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변협은 민사적으로 비리책임자에대한 철저한 구상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지자체에 대해 이를 압박할 계획이다.
“오늘 아침에도 잠수교 앞 세빛둥둥섬을 보면서 출근했어요. 시민들 심정이 어떻겠어요? 낭비한 세금을 다 찾아와야죠. 그러기 위해선 시민단체와 언론의 협조가 꼭 필요합니다. 한정된 인력으로 소기의 성과를 얻기는 어렵습니다. 언론의 협조 없이는 안 되죠. 우리의 의도는 좋은 것이지만 국민의 성원 없이는 미지수입니다.”
변협이 기대하는 것은 국민의 성원과 권력·정치에 얽매이지 않은 입장, 그리고 박영수 위원장의 수사력일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수사의 정도를 물었다.
“수사라는 게 범죄를 극구 숨기려는 사람을 추궁해 죄를 밝히는 것이잖아요? 숨기려는 범죄를 찾아내야 하니 집요한 주변수사, 증거로 설득하고 압박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물의를 일으키는 거죠. 칼을 들었으면 반드시 뭘 베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정도수사’ ‘과학수사’가 답입니다. 디지털 포렌식과 첨단회계 분석으로 웬만한 범죄는 증거를 잡아낼 수 있죠. 또 저는 검찰이 기획수사를 할지언정 표적수사는 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최근 검찰 수사가 비난받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만 대다수 검사가 중도를 지키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법률전문가, 수사전문가가 아닌 국민이 보기에 오해할 만한 부분을 없애나가야죠.”
정파나 권력에 편승하거나 아부해 수사를 좌지우지하는 검사는 극히 드물다는 설명이다. 수사라는 것이 칭찬받기가 어려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박영수 변호사가 검사 시절 했던 재벌 수사는 대부분 호평받았고, SK수사는 재벌 수사의 교과서처럼 여겨진다. 철저한 사전압수수색으로 완벽하리만큼 증거를 확보하고 시작한 수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차, 대우, 황우석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도맡아 처리해왔다.
“검찰에 있다가 변호사가 돼보니 검찰의 모습이 더 잘 보이긴 합디다. 복사 하나 편하게 할 수가 없고. 그런 얘기 참 많이 들었는데요. 재량 없이 딱딱하게 대하고 말이죠. 전 검사로 일할 때도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형사피의자의 변명일지언정 열심히 들어주고 변호사들 얘기에 귀 기울이라고요. 검찰도 검찰 나름의 애로가 있긴 하지만 요사이는 직접 수사를 너무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접 수사일선에서 뛰니 당사자가 돼 버리잖아요? 검찰의 역할에 맞게 경찰의 수사를 잘 보고, 억울한 일이 발생하진 않는지 지켜보는 기소에 더 역점을 둬야 합니다. 수사당사자가 되니 시각과 생각이 객관화될 수 없지 않겠어요? 중립적일 수가 없죠.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큰 범죄를 맡고 지도·감독기능을 강화해야 합니다. 주폭 같은 길거리 범죄는 경찰에 맡겨야죠. 기왕 수사를 하려면 좀 더 전문화된, 검사의 도를 확립한 수사를 보여줘야죠. 검찰이 하는 수사는 다르다는 걸 말입니다. 수사는 참 어려운 겁니다. 칼을 들었으니 성과를 보겠다는 생각보다는 놓을 줄 아는 검사가 돼야 해요. 들을 줄 아는 검사가 돼야죠. 국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대면하잖아요. 정의감, 성취감으로 막장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게 검사예요.”
박영수 변호사는 변호사가 된 지 3년 6개월 정도된 초짜변호사다. 그래서인지 자신 있게 설명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부분은 검사, 검찰과 관련된 부분이다.
SK사건의 경우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언론과 참여연대에서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해 수사하게 됐다. 분식회계 상태를 보니 심각했다. 재벌기업을 수사한다는 부담감에 저명한 경제학자와 관료들을 만나 자문을 구했었다고. 대부분 우리 사회가 국민소득 2만불에서 3만불로 성장해가려면 기업의 투명성 확보가 절실하다며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전격 압수수색이 단행되고 기소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주가는 떨어지지 않았고 한국경제에도 오히려 좋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엔론사태로 기업 투명성에 대한 우려가 컸었는데 한국은 3대 기업의 분식회계를 까발리는 것을 보아 이젠 신뢰해도 될 정도라는 해외언론의 평가가 있었다. SK도 이를 기반으로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좋은 수사란 이런 것이 아닐까?
“저의 아버지가 판사셨어요. 돌아가시는 날까지 제가 검사인 걸 걱정하셨지요. 검사를 하겠다고 할 때 만류도 많이 하셨고요. 검사한 친구 중에 건강하게 오래 사는 친구를 못 봤다시면서요. 가장 걱정하신 부분이 건강이었어요. 워낙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몸이 안 좋아지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하셨죠. 두 번째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줄 아는 요령, 방법을 익히라고 하셨죠.”
“그래서 고검장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익히셨나요?”
“아니요. 그게 가장 후회스러워요. 시간 남으면 동료들과 술 한잔 기울이기 바빴죠. 나 자신을 등한시했다 싶어요. 문화도, 건강도요. 다 게을러서죠. 후배들에겐 일과 여가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여가시간을 네것으로 만들라고 충고하는데 제가 못 그래서 그렇게 말해요. 취미생활도 제대로 없고. 문화활동의 주인공이 되는 주변 사람들보면 놀랍고 존경스러워요. 이우근 변호사가 지휘하는 거, 색소폰동호회, 뮤지컬동호회 다니는 분들 정말 부러워요. 저도 이제 60인데 황규한 변호사가 부산동부지청에서 함께 근무할 때 같이 색소폰을 배웠어요. 전 도중에 포기했는데 황 변호사는 저번 모임에서 멋지게 불더라고요. 제 취미요? 요샌 불교서적 열심히 읽는 정도에요. 이제 개발해보려고요. 테니스를 좋아했는데 디스크 탓에 이젠 못해요.”
정신없이 일하고 정신없이 달려왔다. 이젠 정말 평생할 수 있는 취미를 가져야겠다 싶어 모색 중이다. 그러나 변호사 일도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사람이 마음이 자유로워야 하는 법인데 변호사는 고객관리, 사건 유치 등 스트레스가 너무 무거운 직업인 것 같다. 또 그에게는 검찰 특수수사 사건이 주로 들어오기 때문에 쉬운 사안이 거의 없기도 하다. 최근 한화와 박연차씨 사건을 맡아 부담이 크다. 여러 정치인들에 대해 박연차씨가 많은 진술을 해놓은 뒤에 변호인단에 합류해 오해를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서울고검장을 하고 나왔는데 서울고검 사건은 1건도 못해봤어요. 현재 법조계에는 법조브로커 문제가 심각합니다. 30%를 떼어주고 나면 어떻게 사무실을 유지하고 일을 합니까? 젊은 변호사들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법조계에 심각합니다. 보수체계를 다양화해서 법무법인들이 젊은 변호사들을 많이 고용해야 하고 사건브로커가 일소돼야 합니다. 변호사중개제도가 법제화돼서 투명하게 수수료를 공개하고 법으로 엄격히 규율했으면 좋겠어요. 저처럼 직접 법정에 나가기에 나이가 있는 변호사들이 사안을 파악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변호사와 연결해주는 변호사중개제도가 확립되면 많은 문제가 없어질 것 같아요. 일본은 그런 게 잘 돼 있어요. 시군법원에 간 친구들 보면 참 행복해해요. 봉사도 하고 명예도 얻고요. 김준규 검찰총장 때 건의해 법조브로커 단속을 했는데 그 많다는 법조브로커들 중에 단속은 10건 정도였나? 비일비재한데도 못 잡아내더군요. 사건브로커를 쓰는 것은 소개료를 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범죄행위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법조의 쏠림현상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법조브로커를 근절시키지 않고선 법조인이 국민의 신뢰를 받기 어렵습니다. 기필코 뿌리 뽑아야 합니다. 법조계가 이런 부분도 해결 못하고 어디 가서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단호하게 말하는 박영수 변호사. 사석에선 누구나 존재를 인정하지만 드러내 말하지 않는 법조브로커 문제는 법조계의 한 단면인데도 이에 대해 거론하기를 다들 꺼려한다.
박 변호사의 사무실에는 소박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정갈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의 성품을 짐작하게 해주듯 제 자리에 걸린 작품들이 예술에 대한 이해를 느끼게 했다.
“법학과 졸업이 아니시던데요.”
“철학과 나왔어요. 종교학 전공이죠. 부전공이 법학이고요. 문리대를 다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법학 과목들을 수강했어요. 지금 선택하라면 판사를 택했겠지만 검사가 능동적, 생산적, 적극적이라 여겨져 택했죠. 리버럴한 성격이셨던 아버지가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제주출신 첫 고검장이라고 제주분들은 좋아하시던데요.”
“할아버지가 북제주군수를 하셨고 지금도 친척들은 다 제주에 계세요. 아버지가 목포지원장을 하실 때 태어났기 때문에 목포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녔어요. 그래도 제주방언은 다 알아듣습니다. 집안어른들 말씀을 들으며 자랐으니까요. 제주에 많이 가보진 못했어요.”
박 변호사가 퇴직할 때는 진정한 수사통, 누구보다 수사욕심이 많은 진정한 검사를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제 변협에서 지자체의 세금낭비 현장을 누비고 국민을 대신해 꼼꼼히 비리를 찾아내는 역할을 맡았으니 그만한 적역이 있을까 싶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