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시절 밤에 학회실의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며 ‘10년 뒤에 난 뭐가 되어 있을까’하며 당장의 눈앞을 가로막는 불확실함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10년 뒤도 내다볼 수 없게 그때그때의 현실에 내몰려야 하는 급박함이 싫었고, 내몰리는 객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싫었죠. 그렇지만 이제는 조금 알 수 있습니다. 10년이 아닌 5년, 아니 3년 앞이라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사는 것이고 살아가는 방법일 수밖에 없단 것을 말이죠.
지나고 보면 3년을 주기로 인생의 변화라 할 중요한 것들이 일어났었습니다. 지금부터 3년 전에는 로스쿨에 진학하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둔다는 결정을 해야 했고, 그보다 3년 전에는 결혼을 하여 한 가정을 꾸렸고, 그보다 또 3년 전에는 대학졸업과 함께 취업시장에 몸을 던져 치열한 현실로 발을 담갔더랬죠. 또 그보다 3년 전에는 갓 제대하고 하늘 아래 유일한 인격체인 것처럼 착각하고 나대면서 떠들어댔던 제 자신이 있었고, 또 그 3년 전에는 굳이 어른이 되겠다고 부리나케 입대하는 제가 있습니다.
이제와서보면 그때그때의 아쉬움은 언제나 있었지만, 제 스스로가 그르친 결정을 하지 않도록 옆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은 분들 덕분에 지금까지의 결과들을 후회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로스쿨에서의 3년도 계속되는 시험에 지치고 언제 끝날까 하는 기다림의 시간이었지만, 이제 불과 여덟달도 남지 않은 변호사시험을 눈앞에 두고 있단 사실은 이렇게 또 3년이 지나간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공부 외에는 다른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이곳에도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로부터 때로는 힘을 얻고 때로는 시달림에 지치기도 합니다. 매 강의시간마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를 선택해야 하는 소소한 결정부터, 믿고 따를 지도교수님을 정하기도 하고 어떤 과목을 수강해야 조금이라도 성적표가 예뻐 보일지, 언제 실무수습을 나갔다 오며 몇 달 동안 특정과목을 공부해야 할지 결정하고 선택해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무언가를 향해 정진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합니다. 하나는 매일의 사소한 것도 기적처럼 여기고 끊임없는 희열을 찾아가며 활력소를 창출해 가는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에 대하여도 일상처럼 여기고 마음씀을 그 이상으로 하지 말며 그로써 외풍에 휘둘림 없이 꾸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이든 앞선 불안함에 지금을 소홀히 함이 없이 한발한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일 테지만, 긴 시간의 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어떤 방법 하나만 취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주변 주자들의 페이스를 고려하지 않고 내달리는 마라톤 선수가 완주하기 어려운 것이니 얼마나 어떻게 달리는지 신경이 쓰이지 않을 리 없고, 같이 뛰는 것은 아닌 마라톤 코치가 자신만 믿고 페이스를 조절하라고 한다하여 그 말을 턱밑까지 숨이 차오른 선수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이 때 코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선수를 적당히 다그치고 격려하여 코칭대로 뛰게 하여 최상의 성적을 내게해야 할 일인 것이죠.
사법연수원 교수님들도 그러하다고 들었지만, 로스쿨 역시 교수님들께서는 학부 때의 교수님이 아니고 대학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개개 학생들의 멘토이십니다. 스승의 날 또 다른 부탁말씀을 드리는 것 같아 송구하지만, 로스쿨 학생들 대부분은 입학 전부터 로스쿨 사전학습이란 이름으로 몸풀기를 시작해 골인지점을 향해 계속하여 달음질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잘못된 운동화를 신고 때로는 호흡법을 가다듬지 않아 힘들어하더라도 그대로 서서 멈춰있을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행착오에 헤매이는 학생들을 지켜보는 교수님들께서 다그치고 꾸짖어 올바른 길을 알려주시며 때로는 골인지점이 눈앞에 왔다는 환상을 불어넣어 지치지 않게 해주셨음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그래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0년 앞의 먹구름을 걱정하던 때에서 당장 1년 앞도 그려보지 못할 절박함에 마주친 것은 저뿐만 아닌 대부분의 로스쿨생들의 입장일테지만, 마법의 주전자를 문지르듯 자꾸 책을 펼쳐 보고 지구의 몇 바퀴를 두를지 모를 줄긋기를 계속 하다보면 변호사 자격이라는 선물을 가져다 줄 요정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로스쿨생의 마음입니다. 눈앞에 마주한 어려움에 시달릴 때 항상 희망의 끈을 찾아 내어주시는 램프의 요정같은 지금의 교수님들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인생의 여백을 3년마다 다른 색으로 칠해가야할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갖고 있는 붓 한자루를 내어주시는 마음을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덧붙여, 이곳에 글을 쓰는 것이 제겐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개인사정으로 이번까지만 글을 쓰게 되었으며 그간 읽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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