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올라가기-등산]
2일 전 네팔의 포카라에 도착하여 해발 1070m의 나야풀에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11년 전인 2000년 일본 북알프스를 4일간 종주한 적이 있었으나, 그때는 최고 높이가 3000m 남짓하여 고소증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등산은 베이스캠프가 4130m라 하니, 등산의 어려움에 고소에 대한 걱정이 추가되었다.
하루 12시간씩 이틀에 걸쳐 산행을 계속하여 해발 2505m의 도반에서 숙박하였다. 고도차는 출발지보다 1500m 정도 높았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여 그 두 배 정도는 올라온 느낌이다. 새벽 6시경 두꺼운 내복을 입은 채로 잠잔 침낭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눈앞에 숨이 탁 막히는 장관이 펼쳐져 있다. 해발 6993m의 영봉 마차푸차레가 바로 눈앞에 솟아 있는 것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이름 그대로 ‘생선꼬리’모양의 눈 덮인 암벽이 솟아 있었다. 신성한 산이라 하여 네팔정부가 아직까지 등반을 허용하지 않은 유일한 산이다. 내가 있는 곳보다 약 4500m높은 산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 있다. 거의 백두산과 한라산을 합친 높이가 이렇게 가깝게 한눈에 보일 수 있을까 생각하였는데, 공기가 희박하고 또한 맑으면 눈에 착각이 생겨서 그렇게 보인다고 한다. 감격을 가슴에 안고, 나머지 3일간의 힘든 등산을 계속한다.
3000m가 넘어가자 고소증상이 나타난다. 약간의 두통이나 구역질, 소화불량은 기본이고, 갑작스러운 배변욕구도 그 증상의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등반 5일째 새벽 4시에 숙소인 롯지에서 출발하여 어둠속을 3시간 가량 걸은 끝에 황금색으로 물들어 가는 정상을 보면서, 4130m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였다. 등산시작 지점은 초여름 날씨였으나, 이곳은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겨울날씨이다. 인간이 8000m급 산으로는 최초로 정복하였다는 안나푸르나 정상과 그 연봉들에 취하여 1시간여 동안 행복에 젖어 있었다. 하산 길의 3일 역시 수월치 않았으나, 더운물 샤워의 기대로 참고 견뎠다.
[산 내려오기-스키]
헬리콥터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자, 8명의 일행이 헬기의 문을 열고 눈밭으로 내려와 몸을 숙인다. 헬기에서 스키장비가 모두 내려진 후, 각자의 스키를 찾아 신기 시작한다. 그러나 눈이 깊어 빠지는 바람에 신기가 쉽지 않다. 이제 산 정상에서부터 신설 위로 내려오는 일이 남았다. 이곳은 캐나디언 로키의 산중으로, 연중 평균 강설량이 18m여서 웬만한 높이의 나무나 바위는 모두 눈 밑으로 잠겨 있어 그야말로 눈 천지의 내리막이다. 곳곳에 절벽이나 눈사태의 위험이 있으므로, 가이드보다 앞서나가는 것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멀리서 보이는 눈 덮인 산은 보드라운 눈으로 가득 덮여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게 편안하지 않다. 햇볕에 노출된 눈은 한낮에는 녹고 밤중에는 얼어, 표면이 얼음으로 덮인 곳이 많다. 당연히 스키타기에 불편하다.
반면 파우더 스노로 덮인 부분은 보통 무릎까지, 깊으면 허리 부분까지 눈 속에 잠긴다. 다져진 눈에서만 타던 방법으로는 해결불능이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다 보면 허벅지에 불난 것 같이 힘들다. 어쩌다 넘어지면, 가루 눈 속에 스키와 몸이 파묻혀 일어나는 데에 힘이 다 소모된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듯, 가이드가 나무 숲 속으로 들어간다. 숲 속은 햇볕과 바람의 영향이 적어 눈 상태는 좋지만, 좁은 나무 사이를 빠져나가야 하고 때로는 2~3m짜리 절벽이 나타나도 물러날 수 없으니 뛰어내리는 길밖에는 없다.
숨은 턱에 차고, 스키복 안은 땀범벅이다. 그러나 저 아래에서 일행들과 헬기가 다음 런(run)을 위하여 기다리고 있으니, 달려 나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과정이 하루 종일 10여 차례 계속된다.
[왜 하나]
정신적 미덕의 차원에서, 산 오르기(등산)에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고, 산 내려오기(스키)에 필요한 것은 ‘용기’이다. 사람마다 등산과 스키를 즐겨하는 이유가 따로 있겠으나, 최소한 육체적 건강을 위하여만은 아닌 것 같다. 다들 살아온 과거 또는 살아갈 미래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없이는, 이러한 힘든 짓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고산등반가들이 흔히 듣는 질문 “죽으려고 그런 위험한 짓을 하느냐?”에 대한 대답은, “죽으려고 한다고? 천만에. 등반하면서 안 죽으려고 얼마나 애쓰는데…”였다.
나는 왜 그러한 짓을 할까? 법조인으로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견딜 수 있는 ‘인내력’을 기르려고”, 그리고 “해야 할 일,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때에, 할 수 있는 ‘용기’를 키우려고”라고 대답한다면, 견강부회일까?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적어도 그러한 바람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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