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 꿈꾸는 청년당 비례대표 1번

국회의원 총선을 보름쯤 앞둔 2012년 3월 26일이다. 꽃샘추위의 서늘한 공기가 합정동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골목 끝 자그마한 빌딩 5층의 사무실은 청년들의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새로 탄생한 청년당의 선거사무소 겸 본부였다. 사무실 한쪽에는 작은북을 치는 음악패도 있었고 또 다른 쪽에는 몇 명이 둘러서서 늦은 점심으로 피자를 나눠 먹고 있었다. 유리로 된 벽에 ‘1만 명이 모이면 현실이 됩니다’라는 글씨가 보였다. 청년당의 표어는 ‘가진 것도 없지만 못할 것도 없습니다’였다. 안철수 교수의 청춘콘서트에 참여했던 청년들이 만든 당이다. 청년당을 이끌어 가고 있는 주축의 한 인물이 여성변호사 강연재다. 대변인이자 비례대표 1번인 강 변호사를 만났다.
“청년들의 문제를 압축시킨다면 뭘까요?”
요즈음 그들의 고민이 궁금했다.
“돈이 없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3포 시대죠.”
“어떤 분들이 청년당의 깃발 아래 모이셨나요?”
“대학생, 웹디자이너, 동시통역사, 약사, 박사 연구원들이 있던 직장을 다 버리고 나왔고 그 외 커밍아웃한 사람들, 양심적 집총거부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이 일에 뛰어든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겁니까?”
“경쟁하고 물어 뜯는 세상이 싫습니다. 힘이 센 사람에게 그저 맹목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현실도 사양하고 싶습니다. 또 이념으로 극한대결을 하는 사회도 거부합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청년들을 보면 등록금이 너무 비싸 대학을 다닐 수가 없습니다.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연애도 포기해야 합니다. 기존 정치권의 구태의연한 행태를 보면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청년들을 구원하기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 우리사회에 필요하다는 걸 공감하고 독자적으로 창당을 한 거죠. 기성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바람을 불게 하고 싶은 겁니다.”
청년층의 신선한 감각과 요구를 정치에 그대로 투영하겠다는 것이다.
“세상에 잘 알려져 갑니까?”
“신생정당이라 다들 몸으로 때우고 돈 드는 홍보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입장입니다. 홍보 분야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심한 걸 현실에서 느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어떤 거죠?”
“박근혜 위원장이 시장만 가도 모든 언론이 떠들어댑니다. 그렇지만 우리 청년당이 어떤 일을 해도 관심조차 기울여 주지 않아요. 그게 현실입니다.”
“강 변호사는 어떤 입장에서 청년당에 뛰어들었죠?”
“한 아이를 키우는 삼십대 중반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변호사로서 수입을 포기하고 왔죠. 요즈음은 돈을 주변에서 꾸어 쓰기도 하고 가족들의 도움을 얻기도 하는 형편입니다. 친정어머니는 꼭 정치를 해야 하냐? 왜 지금이냐? 해도 왜 구태여 신생 정당이냐? 라고 하시며 답답해하시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가 정치출사표를 낸 건 사회적 목숨을 걸고 미지의 세계에 한걸음 내디딘 것 같았다.
“왜 정치를 하려고 합니까?”
“대한변협 사무차장으로 있으면서 국회 업무를 했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니까 법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허술한 점도 많았습니다. 의원 한두 명이 법을 만들어 통과시키면 그게 온 국민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죠. 그걸 보면서 세상을 바꾸려면 법을 만드는 게 가장 강력한 정치라고 깨닫게 된 거죠.”
“이미 국회에도 법률가 출신들이 많지 않나요?”
“법률가라고 해도 지금까지는 출세지향적인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의 행태를 보면 세상을 바로 끌고 나가려고 하는 것보다는 당리당략에 법지식과 말재주를 보태줘서 주요 당직을 차지하기에만 급급한 것 같습니다. 당 내부만 겁을 내고 국민을 두려워 하지 않는 거죠. 그렇게 정쟁에만 앞장서면 요직은 차지할지 몰라도 민심을 얻기는 불가능합니다. 정말 법률가라면 헌법의 가치를 국회에 반영하고 당론이라도 그게 옳지 않다는 말을 정면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한다고 입지가 좁아지지 않아요.”
이미 그녀는 남이 보지 못한 어떤 세계에 눈이 뜨여있었다. 판·검사를 마치고 국회로 가는 출세주의자들은 가진 자가 더 가지려고 하는 형상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민초사이에서 커리어를 쌓고 국회로 가려는 가난한 변호사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모습이다. 그녀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알고 싶었다.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알려줄래요?”
“아버지는 대나무가 많은 담양에서 참빗을 만드는 장인이었죠. 제가 어렸을 때 대구로 이주해 거기서 참빗을 만들어 팔았어요. 손바닥만한 작은 한옥집 구석방에서 온가족이 대나무를 자르고 잘라 가는 살로 만들고 실로 그걸 엮고 염색을 하는 작업을 했어요. 저는 대구 신명여고를 졸업하고 영남대 중문학과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1남4녀의 가난한 집안 막내딸인 저는 등록금을 제대로 낼 처지가 못 됐죠. 집안분위기는 딸인 제가 공부보다는 한푼이라도 벌어서 보탰으면 하는 거였으니까요. 대학을 좀 다니다가 때려치웠어요. 앞으로 뭘 할까 고심하면서 서점에 가서 국가고시 안내서를 뒤적이다가 이왕하려면 사법시험을 치러야겠다고 마음먹었죠. 합격만 하면 단번에 출세도 하고 돈도 벌어서 가족들을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거의 독학으로 일 년 만에 일차에 합격하니까 주위에서 모두 놀라더라고요. 그 다음은 신림동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돈이 없어 공부기간을 오래 끌 수 없는 형편이었죠.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점원도 하고 주유소에서 차가 오면 닦아주기도 했습니다. 빨리 합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죠. 하늘이 도왔는지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은 사법연수원 시절 서울시립대학교에 새로 들어가서 졸업했습니다.”
그녀는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바로 로펌의 변호사가 됐다.
“로펌의 변호사로 일하니까 어땠습니까?”
“처음에는 억울한 의뢰인의 사정을 들으면 스스로 몰입이 되어 정신없이 일에 빠져들었죠. 월급도 받고 승부를 거는 소송에서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차츰 현실과 마주치게 된 겁니다. 로펌의 고용변호사가 지신이 하고 싶은 사건만 할 수는 없다는 현실이 마음을 힘들게 했습니다. 이겨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강했죠. 그런데 양심과 어긋나는 일들이 닥쳤습니다. 의뢰인 중에 남에게 돈줄 게 있는 게 그걸 안 주려고 소송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변호사비로 몇 푼 던져주고 줄 돈 몇 억을 안 주면 이익이라고 계산하는 파렴치한 인간들이죠. 그런 의뢰인들이 말도 안 되는 사유를 대면서 소송에서 트집을 잡아달라고 합니다. 또 로펌 입장에서는 어떤 의뢰인이건 다 고객이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법률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입장이죠. 상대 당사자를 비난하거나 조정에서 무작정 떼를 써주기를 원하는 의뢰인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녀의 괴로움을 짐작할 것 같았다. 그래도 의뢰인의 요구대로 해주라는 로펌들이 존재한다. 그녀가 계속했다.
“형사사건은 더 했습니다. 정말 나쁜 범죄인인데 돈을 받았다고 해서 어떻게든지 정상참작 사유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게 피곤했습니다. ‘이렇게 살려고 변호사가 됐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회의가 들었습니다.”
현실을 대변하는 솔직한 대답이었다.
“로펌의 다른 변호사들은 어땠습니까?”
“‘변호사가 아니었더라면 차라리 더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차라리 불쌍해 보였어요. 특히 대형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은 워크홀릭에 걸리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였어요. 일만 하고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고 잘난 척은 하지만 삶에서 정작 중요한 건 놓치며 살기도 합니다. 그 물에 젖어버리니까 거기서 벗어나는 데 대한 두려움들이 있는 것 같았어요. 인간성이나 개성이 실종되는 것도 봤어요. 많은 변호사들이 차라리 평범한 직장에 다니거나 공익활동의 비중을 높여간다면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래도 수입 때문에 그렇게 일 중독이 되는 게 아닙니까?”
“저는 변호사 8년차지만 지금까지 제가 겪어보고 또 만나본 변호사님들을 보면, 변호사는 절대 돈 버는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돈 버는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 같더라고요. 변호사라고 있는 체하지 말고 돈 없는 변호사라고 차라리 주변에 솔직히 말하고 다니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할 겁니다. 그렇지만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언젠가는 돈이 벌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큰돈이 들어올 수도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능력을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사용하는 게 더 보람이 있을 것 같아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M&A전문기업으로 이적해 상무로 일선에서 직접 뛰기도 했었다. 투자전문의 경영인으로 변신하려고 노력을 기울인 흔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대한변협의 사무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한변협에서 일했는데 그때 느낀 점을 얘기해 볼래요.”
“변호사 사회를 보니까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없어요. 1만2000명의 지식인 전문가단체라면 이 나라와 사회를 위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변호사들이 국민이나 사회에 대한 소명의식이 약했습니다. 안타까우면서 저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죠. 그냥 각자 돈벌이 하는 사람을 모아놓은 단체일 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전수해 주는 것도 없고 후배들은 선배들을 거칠게 비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변호사회끼리 물고 뜯게 되거나 사심(私心)이 많은 회무가 될 수밖에 없죠. 못 배운 사람들도 피켓을 들고 세상에 대해 자기 권리를 부르짖는 세상입니다. 또 인터넷을 통해서도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용감히 발표합니다. 그런데 변호사회를 보면 위원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전체이익을 위해야 할 텐데 한명 한명이 자기 이해관계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녀는 물론 사명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변호사들도 많았다는 점을 빼놓지 않았다.
“사무차장으로 있으면서 어떤 변협을 만들고 싶었죠?”
“저는 변호사는 양날의 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세상을 향한 긍정적 파괴력도 발휘할 수 있고 그 반대로 자신의 인생까지 망칠 수도 있는 불필요한 자격증일 수도 있죠. 그리고 변협은 국민 앞에서 해결사의 역할을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요. 변호사 한사람 한사람이 어떻게든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변협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너무들 겁이 많은 거예요. 계산이 많고 너무 재죠. 변호사들의 단점을 말씀드리면 어떤 문제에 대한 장애사유나 부작용 분석에는 변호사들이 가히 천재적입니다. 그러면서 뚫고 나가는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주저하는 편입니다. 분석을 해놓고 해결방안을 강구할 때면 ‘다음에 또다시 검토합시다’로 끝났어요. 저는 ‘다음에 검토합시다’라면서 현실을 외면하는 그런 행태가 너무 싫었습니다. 계산하지 말고 행동으로 뚫고 나가야 세상이 변할텐데 말이죠.”
그녀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변협 업무의 특성상, 법무부와도 연락을 하고 일을 했었습니다. 정부도 제각각 부처이기주의가 강했습니다. 자기 부서에 유리한 것만 하고 나머지는 몸을 사리는 모습이었어요. 변협에 대해서도 아쉬울 때는 성명서를 내달라고 부탁했다가 정작 변론권 침해나 변협의 대국민 사업 추진에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어요.”
그녀는 한창 에너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세상의 문제점이 그대로 눈에 들어오고 그걸 고치고 싶은 것이다.
“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면 좋겠습니까?”
“있는 사람은 갈수록 더 가지고 없는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인 현실입니다. 사회 저변에는 그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 같아요. 못났으면 밟혀야 한다는 거죠. 이렇게 약육강식을 인정하는 세상은 사람 사는 사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청년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모인 사람들 자체도 다 물고 뜯는 세상에서 피해자인지도 몰라요. 없어도 그냥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그런 사회, 함께 살고 나누는 그런 인간이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우리끼리 모여야 구태의연한 정치권에 이용당하지 않고 한마디라도 제대로 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무리 경쟁이 싫더라도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유한킴벌리를 일으킨 문국현 사장의 일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회사가 어려우면 조건반사처럼 직원부터 자르고 보는 수많은 대기업과는 달랐죠. 근로시간을 단축시켜서 모두가 같이 계속 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힘이 들수록 사람을 키웠습니다. 한번 더 깊이 보면 옳은 방법이 보이더라는 거죠. 우리사회도 무조건 능력 없다고 바닥으로 추락시키지 말고 사람을 존중하고 키우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고뇌를 대강은 알 것 같았다. 한 세대 위인 우리들의 가난은 모두가 겪은 가난이었다. 상대적 박탈감이 없었고 열심히 뛰면 부자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청년세대는 구조적으로 정착된 빈부의 차이 속에 질식하고 있었다. 그녀가 대변하는 청년당은 기득권층의 끝없는 탐욕과 이기주의에 대해 어떤 실망과 분노를 하고 있을까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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