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비롯해 다수의 젊은 KBS 기자와 PD 등이 속해있는 언론노조 KBS 본부는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말 현재 파업 중입니다. 회사 내부 문제와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입니다. 파업으로 지금은 취재현장에서 잠시 물러나 있지만 제 경우 평소에는 주로 법원 기자실에 머물면서 한 달에 2`~3번 회사 내 근무를 섭니다. 업무의 태반은 각종 제보와 일반인의 하소연 전화를 받는 일입니다. 간혹 잘 듣다보면 얘기되는 제보를 건지기도 하지만 보통은 사기치고 도망간 사람을 방송해달라는 것부터 경찰도 판·검사도 믿을 수 없다며 경찰 신고도 안 한 형사 사건까지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 많습니다.
하루에 수십 통씩 걸려오는 민원성 전화를 받다보면 어느새 제 말투에는 짜증이 묻어나고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습니다. 어려운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기자가 되겠다던 강한 다짐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결국 경찰에 신고하거나 법적 소송으로 해결하라는 딱딱한 조언으로 전화를 끊으려 할 때 들려오는 한마디. “수신료 받는 공영방송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수신료와 공영방송, 이 두 단어만 나오면 마치 약점 잡힌 사람들처럼 저희는 일단 멈칫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박자 쉬고 이어지는 저의 반격. “선생님, 수신료 2500원 받아서 이 세상 모든 억울한 사람들 사연 다 방송할 수는 없잖아요?” 결국 민원인은 “그럼 수신료 한 푼도 못내”라며 불만을 쏟아내고 전화를 끊습니다.
저 역시 전화를 끊으며 “겨우 2500원 내면서 치사해서 못하겠네”라는 혼잣말로 분을 삭이다 문득 “과연 나는 한 가구당 2500원의 가치를 충분히 하고 있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가졌던 사명감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일단은 귀찮음, 그 다음은 기사로 딱 떨어지기 어려운 이야기들은 인정사정없이 잘라내고 보는 냉혹함만 커진 것은 아닌지 깊은 반성에 빠졌습니다.
법원 역시 제가 처한 상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온갖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사정을 하염없이 호소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입니다. 판사 한 사람에게 배당되는 사건이 워낙 많다보니 일일이 그 사람들이 이야기를 다 들어줄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해 보입니다. 재판을 방청해보면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은 이야기들까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사람들도 많아 판사들도 참 피곤하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최근 불거진 법원의 위기는 하루아침에 생긴 일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일부 판사들의 고압적인 태도도 문제였겠지만 법원에서조차 내 얘기를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다는 오랜 불신이 쌓인 결과라 생각합니다. 저 같은 공영방송 기자는 국민들이 낸 수신료를, 판사들은 나라의 녹을 먹고 사니 그런 비판은 마땅히 받아들여야겠지요. 그런 점에서 법원이 최근 국민과의 소통자리를 마련하고, 저희 회사 직원들이 파업 기간 국민을 직접 만나는 거리 선전전에 나선 것은 같은 맥락에 있는 일일 겁니다.
그렇다면 변호사들은 어떻습니까? 국민의 의무적인 세금이 아닌 의뢰인 개인의 선택에 따라 수임료를 받으니 사정이 다른가요? 잠깐 언론에도 보도됐던 서울중앙지법 사건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다 친척들과도 연락이 끊긴 한 20대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후 친척들의 실종 신고로 이 남성은 사실상 사망자가 됐고, 십여 년을 숨진 사람으로 살면서 교도소를 들락날락 했습니다. 이번에도 단순 절도죄로 법정에 서게 됐는데 수도 없이 절도를 저지른 이유가 죽은 사람으로 돼 있어서 일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연을 들은 재판장과 변호인, 검사는 유무죄를 따지기 전에 이 사람의 신분을 복원시켜주는 일이 우선이라는 데 뜻을 같이 했고, 결국 이 사람은 십여 년 만에 새 삶을 얻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나선 사람이 변호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소송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기느냐, 지느냐는 문제겠죠. 그러나 수임료의 절반 정도는 변호인이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뒤 법정에서 최선을 다해 입장을 대변해 달라는, 그렇게 해서 속이라도 시원하도록 해달라고 지불하는 대가일 것입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살리는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더라도 진심으로 소송 당사자의 편이 돼주고 사정을 들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의뢰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자도 판사도 변호사도 신이 아닌지라 얼토당토않아 보이는 이야기에도 모두 귀를 열고 잘 듣는 일,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쉬운 일이 아닌 만큼 노력과 내공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파업 기간을 공영 방송 기자로서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단련하는 계기로 삼으려 합니다. 다시 취재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민초들의 절박한 사연을 마음으로 담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판사도 변호사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각자 역할은 달라도 우리에게는 민초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 바로 그들로부터 주어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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