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쫓겨 책 읽을 시간을 좀처럼 내지 못하는 내가 비록 동화책이긴 하지만 밥벌이와 관계없는 책을 매일 한두 권씩이라도 읽고 사는 건, 잠자기 전에 책을 한 권 이상 읽어야만 하는 우리 둘째 덕분이다.
오늘은 ‘책 만드는 마법사 고양이’라는 책을 골라왔다. ‘책 먹는 여우’가 좋아서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읽어 달라고 해 결국 녀석이나 나나 그 책을 거의 외울 지경이 되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 책도 같은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나온 책 같았다. 녀석도 ‘책 먹는 여우’의 재미난 기억을 떠올리는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누워있다.
어떤 마을에 모든 문제를 척척 해결해주는 마법책이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 책에 의지하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책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순간 경찰은 마을의 의심스러운 이 집 저 집을 찾아가 마법책을 훔친 범인과 마법책을 다시 찾아내기 위해 수사를 하기 시작한다. “엄마, 마법책을 훔쳐가지 않은 사람한테도 경찰이 찾아올 수 있어요?” 다소 공포감이 묻어나는 아이의 질문이다. “으응, 평소에 행동을 잘못해서 마법책을 훔칠 것 같은 오해를 받은 사람이라서 그런 거야. 평소에 항상 바르게 행동한 사람한테는 경찰이 찾아가지 않겠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사람들은 일제히 마법사 고양이가 마법책을 훔친 범인일 거라고 의심을 한다. 왜냐하면 평소 이 고양이는 뭔가 특별한 것을 발명하기 위해 연구실에서 고군분투해 오면서 엉터리 발명품만 만들어 온데다, 최근에는 마법책을 만들겠다고 떠들고 다녔던 것! 결국 마을사람들과 경찰이 고양이의 발명연구소를 덮치고 마법책을 훔치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고양이를 체포한다. 고양이를 밧줄에 꽁꽁 묶어서 끌고 오면서 경찰관은 상상한다. “고양이를 데리고 가서 물고문 등 고문을 해야지, 흐흐” 하면서 흥분한다.
이 장면을 읽어주면서 뭔가 아이가 읽기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살짝 들 무렵이었다. “엄마, 책 먹는 여우는 서점에서 책을 훔쳐서 감옥에 갔었는데, 마법사 고양이는 왜 마법책을 훔치지도 않았는데 잡혀가요? 진짜 잘못을 하지 않아도 오해를 받으면 감옥에 갈 수도 있나요? 너무 억울하잖아요!”
오해를 받아 밧줄에 묶여 경찰서로 끌려가고 경찰에 가서 고문까지 당할 것 같은 스토리 전개에 아이가 공포감을 느낀 듯했다. 뭐 동화니까 위기가 있으면 반전이 있어서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는 나와 달리 녀석은 매우 심각했다. 평소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를 경찰로 알고 경비실 앞을 지나갈 때면 다소곳해지는 우리 둘째가 아니던가? 행여 말썽부리다 들키면 경비 아저씨가 잡아가서 감옥에 가둔다고 생각하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에게 이 책은 매우 공포스러운 동화로 기억될 것 같았다.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난 후에도 한참을 걱정스러운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는 “우리 나라에도 이런 경찰이 있느냐?”고 다시 물어봤다. 아이는 “아니, 없어. 동화책이라서 재미있게 하려고 그런 거야”라는 나의 궁색한 대답을 듣고서야 안심하고 잠을 잔다.
무심코 읽은 동화책 속에 등장하는 경찰의 모습이 어린 아이들의 상상력 속에서 경찰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 같은 것을 심어줄 수 있겠다 싶었다. 어쩌면 ‘고문’하는 ‘경찰’의 모습을 당연시하는 우리네 어른들의 상상력이 동화 속에서 뭔가 오류를 빚고 있는 것은 아닐지? 적어도 동화책 속에서는 아이들 눈높이에서 볼 때 공정한 경찰관, 아이들 생각에 억울하지 않은 수사를 하는 경찰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경찰관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자의로 때로는 타의로 공정하지 않은 법집행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지만 있을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은 머리가 더 자란 뒤에 깨달아도 늦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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