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감각이 서서히 마비되어간다. 강한 주사약 때문인지 의식이 몽롱해지며 반쯤 잠이 든다. 수술 준비를 하는 간호사들이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깔깔거리는 소리가 아득히 멀어질 때쯤 담당의사가 들어오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녹색천 아래에서 무언가 빠르게 진행되는 듯한 느낌과 함께 한동안 배가 흔들리고 무시무시한 석션 소리가 난다.
잠시 후, “아가야 안녕? 어머 예쁘다” 라는 의사 선생님의 호들갑스런 목소리에 이어 내 아이의 첫 울음소리가 들린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린다. 간호사가 포대기에 쌓인 아기를 보여주며 “엄마, 예쁜 우리 아가 나왔어요, 눈 떠 보세요” 라고 나를 깨운다. 나를 보는 듯, 혹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 듯 신비로운 눈빛을 하고 있는 아주 조그만 생명이 눈앞에 있다.
그토록 가슴 설레며 기다려온 얼굴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매순간 완벽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던 10개월간의 놀라운 동거가 끝났다는 사실이 아쉽고, 우리가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만나게 된 걸까 감격스럽기만 하다. 아이의 보드랍기 그지없는 볼에 뽀뽀를 하고 젖을 한번 물린 뒤, 나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자연스러운 출산을 바라며 요가와 호흡법을 열심히 익히고 있었지만, 아이를 낳는 일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닌 듯했다.
예정일이 다가와도 아이의 머리가 아래쪽을 향하지 않아 결국 제왕절개를 준비해야 했다. 생전 처음 수술대에 오르는 것도 무서웠지만, 갑자기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 아이가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스마트폰을 뒤적이며 수많은 출산 경험담을 찾아 읽었다. 출산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 엄마들은 서로에게 누구보다 다정한 벗이고 조력자였다. 아프고 감동적인 이야기에 눈물을 찔금거리며 곧 닥칠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조마조마 기다렸다.
드디어 출산 당일, 병원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철부지 남편은 출산기념 셀카 찍기에 여념이 없다. 좋은 생각만 하며 긴장을 풀어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병원 복도를 걸어갈 때 들리던 산모들의 고통에 찬 비명 소리, 의료진의 다급한 목소리, 갓난아기들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에 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허리가 끊어지고 하늘이 노래지는 고통을 겪고 있는 엄마들의 모습에 출산이 얼마나 아프고 힘든 일인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모든 엄마들은 진정 위대하다.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났다. 여기저기 수없이 쑤셔넣는 주사바늘이 많이 아팠지만 참을 만했다. 그러나 마취가 풀림과 동시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생살을 찢어 놓은 수술 부위 통증과 함께 임신 기간동안 늘어났던 자궁이 본래의 크기로 수축하면서 고통스러운 훗배앓이가 시작되었다. 몸을 일으키는 것도, 코앞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것도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아야 했다. 무엇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젖몸살 때문에 며칠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엄마되기가 눈물겹게 어려운 일임을 새삼 곱씹었다.
산후조리원에 들어가면 좀 편해지겠지…그러나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모유 수유를 위해 아이가 깰 때마다 수시로 신생아실에 불려다녀야 했다. 또 젖몸살이 나지 않도록 3시간마다 유축을 해야 했다. 제대로 잠을 잘 시간은 거의 없었다.
목도 못 가누는 아이와 씨름하며 서툴게 젖을 물리느라 손목은 시큰거렸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피폐해진 몰골로 새벽까지 젖을 물리며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밤이면 여기저기 통증이 심해져 진통제로 버티곤 했다. 그렇게 초보 엄마는 2주간의 혹독한 훈련까지 받고서야 비로소 육아의 전장에 나갈 수 있었다.
그때부터가 고되디 고된 육아전쟁의 시작이었다. 아직 밤낮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는 밤이면 심하게 잠투정을 하며 보채었다. 어르고 달래 겨우 재웠다 싶었더니 아기 침대에 눕히자마자 다시 눈을 번쩍 뜬다. 요즘 아기들은 등에 센서를 붙이고 태어난다더니 사실인가 보다. 뱃속에서부터 손을 타고 나온 것 같다. 밤마다 젖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보듬어 안고 재워주다 보면 환하게 날이 밝아온다. 잠고문이 따로 없다. 엄마된 자의 고단함이란…
그래도 어디에 있다 나타난 것인지, 사랑스럽기만 한 내 새끼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 모든 고통의 시간들이 가물가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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