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되었다. 허나 떨칠 수가 없구나.” 요즘 항간에서 여심을 흔들며 인기몰이를 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왕세자 훤의 명품 대사 중의 하나이다. 인간을 설레게 하여 미혹시키는 물건으로 인류가 만들어낸 것들 중 하나를 말하라고 한다면, 향수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고대에는 풀이나 향료를 태워서 향기를 만들어 살균이나 질병치료 등의 마법의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여인들은 향기를 사용하여 남편을 곁에 붙잡아 두거나 연인을 매혹하기도 하였다. 이집트와 로마에서 행해진 최초의 화장은 향이 나는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향수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아라비아와 인도로 향한 ‘향수와 향료의 길’이 열리면서 서양세계에 고무, 방향성 송진, 향료와 향기 나는 식물들이 전파되었다. 동물의 향기도 전파되었는데, 히말라야 산맥의 사향노루 복부에서 나는 사향, 인도양에 서식하는 향유고래의 창자에서 나는 용연향이 그것이다.
1370년 파리에서 알코올을 주성분으로 하여 제조된 최초의 향수가 등장하였다. ‘헝가리 물’이라는 이름의 이 향수는 서양삼목과 로즈마리, 테레빈으로 만들어졌고 샤를 5세에게 바쳐졌다.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할 때 사람들은 병을 전염시키는 것으로 여겨지던 물을 멀리하고 향수를 온몸에 뿌리고 다녔다. 르네상스 시대에 향기는 더욱 세련되어졌다. 장미와 오렌지나무 꽃, 몰약과 월하향, 육두구, 재스민 향이 나는 크림을 손과 얼굴에 발랐다. 19세기 파리의 살롱문화는 꽃향기 속에 파묻혔다. 당시 사람들은 다양한 꽃향기 속에 여러 가지 의미를 숨겨놓고 남몰래 소통했다. 아카시아향에는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재스민향에는 “나의 사랑을 확신하시나요?” 라일락향에는 “다시 오세요, 그러면 내가 거기 있을 거예요”가 숨어 있었다.
질병 등의 전파를 이유로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경원시했던 17세기의 서양에서는 자극적이고 강한 향수가 유행한 반면, 목욕의 지위와 역할이 복권된 18세기에는 향수의 향이 옅어지고 세련되어지면서 다양하고 풍부해졌다. 19세기 말 화학산업의 발달로 합성 향수가 탄생하면서 드디어 향수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20세기에 이르러서는 페로몬의 발견으로 사향에 성적매력을 증강하는 역할이 있음이 증명되었고, 또한 향기가 기력회복제, 진정제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이 입증되어 질병치유적 기능이 강조되기도 하였다. 인류 역사를 주사위 말판놀이에 비유한다면 향수의 지위는 출발점으로 되돌아 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향수에 대한 놀라운 상상력을 펼친 텍스트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장편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손꼽을 수 있다.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생선시장 악취 속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역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에서 악명 높은 천재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천재적인 후각을 소유하여 세상만물을 냄새만으로 파악하고 분석하고 구별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의 존재였지만, 정작 자기자신에게는 자신만의 체취가 없어 사람들 세상에 섞일 수 없고 배척당할 수밖에 없음에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향수제조인의 도제가 되어 향수제조법을 익히게 된 그루누이는 자신이 극히 한정된 재료만 가지고서도 타고난 천재성을 이용하여 인간의 냄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루누이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활력이 넘치는 냄새, 그 냄새를 맡은 사람은 누구나 그 냄새의 주인을 마음속 깊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천사의 냄새’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루누이는 그러한 냄새를 가진 향수를 만들어 자신을 경원시하고 두려워하며 배척하는 사람들을 자신 앞에 무릎 꿇게 하여 복종시키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천사의 냄새를 가진 향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사람들의 체취였다. 그루누이는 특별하게 사랑스러운 스물 다섯 명의 어린 소녀들을 제물로 희생시켜 천사의 냄새를 가진 향수를 만들어 그 주인이 되고 만다. 잔혹한 살인을 대가로 만들어진 특별한 향수 몇 방울을 자신의 몸에 바르고 세상사람들을 미혹시켜 자신 눈앞에서 세상사람들을 다시 떠올리기도 수치스런 광란의 세계로 몰아넣어버리고 만다.
그루누이는 자신이 만든 치명적인 향수의 위력으로 세상을 미혹시켜 왕이 될 수도 메시아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지만, 향수는 향수일 뿐 정작 자신의 체취가 될 수는 없음을 깨닫고 공허감에 빠져 죽음을 결심한다. 자신의 출생지인 악취가 진동하는 생선시장으로 원점 회귀하여 나머지 향수를 모두 몸에 쏟아 붓고 악귀 같은 시장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을 희생시킨다. 허공인줄 알면서도 붙잡으려 했던 혐오스런 천재의 갈망의 웅크림이 허공 속에서 한줌의 빛과 같이 명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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