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법률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돕는 자”

좋은 변호사를 찾아다닌다. 변호사 사회만큼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많은 집단도 드물 것 같다.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의장, 국무총리, 장관, 대법관 등 고위관직 출신들이 꽉 차 있다. 그럴듯해서 찾아가면 가짜인 경우도 많았다. 포장에 어울리는 내면이 아닌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되어서도 바늘 끝보다도 더 좁은 시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변호사로 개업해서 돈을 번 액수를 가지고 성공을 가늠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기주의가 판치는 삶 속에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해 돈을 번 변호사는 오히려 지탄을 받아야 할 대상이다. 좋은 변호사란 삶의 철학을 가진 조용하고 깊은 인간이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2012년 2월 6일 저녁 6시 30분 서초동 언덕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 로펌 ‘민주’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정해남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서다. 30명 가량의 변호사들이 일하는 중간규모의 법무법인이었다. 안내받은 상담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여직원이 노란 오렌지 주스가 담긴 투명한 유리잔을 앞에 가져다 놓으면서 말했다.
“지금 회의 중이신데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로펌이나 개인법률사무소를 찾아가면 먼저 기다리는 일이 중요했다.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직원들의 태도가 사무실마다 달랐다. 변호사들의 인품이 반영된 것 같기도 했다. 정해남 변호사는 오랜 세월 옆에서 인품을 지켜본 사람이다.
1978년 가을 우리는 입대 동기생이었다. 그해 겨울까지 광주 보병학교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함께 지냈었다. 상무대 벌판에서 먼지와 땀범벅이 되어 연병장을 뒹굴 때 그의 모습은 특이했다. 십 분간의 휴식시간이 되면 모두들 지쳐서 바닥에 널부러졌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그는 혼자 조금 떨어져 앉아 땀에 젖은 상의 포켓에서 뭔가를 꺼내 읽고 있었다. 살얼음이 끼는 초겨울이었다. 고된 훈련의 일과가 끝나면 모두가 물먹은 솜이 되어 잠 속에 빠져 들었다. 그 시각 그는 밖으로 나가 섬뜩한 얼음물로 몸을 씻고 좁은 자신의 매트리스로 돌아와 숨겨두었던 책 한 권을 꺼내 음미하듯 소중히 읽었다. 어느 날 혼자 내무반에 있을 때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가 책을 숨겨놓은 관물대 뒤쪽의 구석에서 그가 숨긴 책을 꺼냈다. 파란 표지의 성경해설서였다. 만만치 않은 영혼의 무게를 지닌 사람 같았다.
훈련을 마치고 장교로 임관이 된 다음해 그는 제19회 법시험에 합격했다. 법서가 아닌 성경이 그를 판사로 만든 것 같았다. 그후 그는 오랜 세월 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일하다가 변호사가 됐다. 잊을 만하면 이따금씩 그는 내게 향기나는 좋은 책을 보내왔다. 스스로 읽고 나서 좋다고 생각한 귀한 내용들이었다.
딱 한번 법정에서 재판장인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주변을 조용하고 성스러운 공기의 막이 둘러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가 훌륭한 재판관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인기척이 나면서 문이 열렸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내가 맛있는 저녁 살게 갑시다. 그 대신 다른 약속이 있어서 40분밖에 시간이 없어요.”
잠시 후 우리는 근처 스파게티 집으로 들어갔다. 거의 손님이 없는 한적한 레스토랑이었다. 구석에 가서 자리를 잡고 마주 앉았다.
“누룽지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해물 섞인 스파게티를 만드는 데 맛있어요. 한번 먹어봐요.”
그가 말하면서 다가온 종업원에서 음식을 주문했다.
“군대동기로 그냥 만나러 온 게 아니라 오늘은 인터뷰를 하러 왔어. 시간이 없다고 하니까 바로 좀 물어봅시다.”
그의 마음 속에는 아름다운 얘기들이 꽉 차 있을 게 틀림없었다.
“나 인터뷰 안 해. 쓰지 마, 정말.”
그가 완강하게 사양을 했다. 내용이 풍부한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이기도 했다. 빈 수레가 요란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인터뷰를 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찾아가 가슴 속에 품은 보물을 캐내는 게 나의 소명이었다. 그와 잠시의 실랑이를 벌였다. 그냥 질문을 시작했다.
“변호사란 뭐라고 생각하나요.”
그가 침착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항상 그런 모습이었다.
“의사가 육체적 고통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듯 변호사는 법률적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걸 돕는 직업이 아닐까?”
우물같이 깊은 그의 영혼 저쪽에서 난 결론 같았다.
“법률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라면 판사도 마찬가지인데 변호사가 다른 점은 뭐죠?”
“판사를 할 때 더러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변호사를 하면서도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죠. 판사 때 들은 감사는 변호사에 비하면 수박겉핥기에요. 변호사를 하면서야 ‘바로 이 맛이구나’하고 진한 감동을 받았죠.”
“바로 이 맛이구나 하는 게 어떤 맛이죠?”
“변호사는 고통 받는 의뢰인과 같이 동행을 하니까 한마음으로 행동하게 되죠. 같이 싸우다가 의뢰인이 고통에서 해방이 되어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하면 그 진한 감동이 그대로 찡하게 전달되는 겁니다. 배고픈 만큼 더 맛이 더 있는 것 같이 고통의 깊이만큼 그 감동이 더 진한 것 같아요.”
그는 직업관 자체부터 틀렸다. 의뢰인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는 스타일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대학을 다닐 때 법을 공부해도 도대체 맛이 없었어요. 딱딱한 호두를 껍데기 채 그냥 입에 넣고 사탕같이 빨아먹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냥 공부한 거죠. 판사를 할 때는 법의 묘미보다는 권한이 대단하다는 걸 실감했죠. 내 결정이 한 사람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감했죠. 판결에 미치는 나의 사고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어요. 그렇지만 법의 맛은 못 느꼈어요. 그러다가 변호사를 하면서야 호두껍질이 깨지고 그 속 알맹이를 씹는 맛을 알았죠. 이제야 법대에 가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가 추구하는 건 사랑과 감동이었다. 다른 판사들도 그럴까? 상당 수의 법관들은 높은 자리에 법복을 입고 근엄하게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 그 자체에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는 강한 권한에 쾌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권한 속에서 그는 고뇌하는 사람이었다.
“판사라는 직책이 어땠어요?”
“정말 어깨가 무거웠죠. 행동과 태도가 세상의 시선에 의해 제한되고 구속되는 삶이었어요. 판결문에 오탈자만 있어도 당장 비난이 쏟아져요. 얼마 전 원·피고 표시를 바꾸어 쓴 판사가 언론에서 혼이 나기도 했죠. 그만큼 기대가 크고 세상은 판사의 완전성을 요구합니다. 법원 내부적으로도 상급심의 재심사를 받는 입장이니까 항상 책임 있게 기록을 보고 판결문에 대해 설득력을 가지게 하려고 고민을 합니다. 그런 훈련과정이 존재한다는 게 판사의 좋은 점이고 변호사가 되어서도 그런 강도 높은 트레이닝들이 강점으로 작용하게 되는 거죠.”
“판사생활을 하면서 고민은 무엇이었죠?”
“인간적으로 행복하지 않았어요. 업무가 과중하고 이건 국민을 기만하고 당사자를 기만하는 게 아닌가 회의를 하기도 했죠. 재판을 받는 당사자들은 판사인 내가 자신들의 사건에 대해 적어도 이삼일은 고뇌할 줄로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니었어요. 환자가 많은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아픈 사람들을 하루에 백 명씩 보면서 기계적으로 처리하듯 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별적인 인간을 보지 못하고 획일적으로 유형에 따라 답을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그 사건만의 특수성이나 당사자의 아픔을 깊이 살펴줄 여유가 거의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사법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그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그가 계속했다.
“저는 어떤 기존의 틀로 사람을 규정지으면 그건 이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너는 딱 보니까 이런 유형이야 하고 즉석에서 답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죠. 법조인들의 머리가 그런 것 같아요. 재판을 받은 당사자들은 우선 거기서 도매급 취급을 받은 것 같아 불만이죠. 내가 무슨 대량으로 제조하는 초코파이 같은 물품이냐 이거죠. 존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인 판사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습니다. 앞에서는 권위에 승복하는 것 같아도 뒤에서는 아니죠. 그런 흐름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으니까 ‘부러진 화살’같이 사법부를 겨냥한 영화가 나오고, 그걸 보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겁니다. 대법원장은 사실관계를 떠나서 왜 영화관객이 그렇게 많은가 그 본질적인 이유를 알아야 할 겁니다.”
얼마 전 대법원은 영화는 단지 예술적 허구일 뿐이라고 성명을 통해 비난했다. 국민이 요구하는 게 뭔지를 그는 알고 있었다.
“변호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를 말씀해 보세요.”
내가 물었다. 그는 변호사 윤리 자체인 인물이다.
“시작할 때 마음으로 정한 몇 가지 원칙이 있어요. 첫째는 의뢰인을 속이지 말자는 거였고, 둘째는 죄 없는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지 말자는 겁니다. 예를 들면 판사에게 로비한다고 돈을 뜯어내는 변호사들을 보면 죄 없는 판사에게 누명을 씌우는 겁니다. 그런 짓을 하지 말자는 거죠. 마지막으로 사건수임에 연연하지 말자고 했죠. 사건이 없으면 그 시간에 취미생활을 하고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는 돈이 없어도 행복할 줄 알고 많아도 그걸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그만의 변호사 비결을 뽑아낼 때가 됐다.
“의뢰인들을 대할 때 어떻게 했어요?”
“다시 없는 귀중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찾아온 고객을 감동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성악가들이 무대에 올라가는 심정으로 사람들을 대했어요. 작은 행동이지만 구속된 형사 피고인에게는 만날 때 좋은 책 한 권씩을 전해 주었죠. 민사사건 의뢰인에게도 책을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실형이 선고된 피고인은 선고된 지 3일 이내에 꼭 찾아갔습니다. 한 여자 분이 사기죄로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다 살고 나서 나를 찾아 왔더라고요. 저에 대해 원망을 하지 않고 수고하셨다고 하면서 내가 넣어준 법정스님의 무소유란 책을 감옥 안에서 열 번이나 읽었다면서 정말 큰 힘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면서 책 한 권이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는구나 하는 것도 알았죠.”
“어떤 사건을 맡았어요?”
“얼마 전 여자도 종중의 회원으로 인정해 달라고 부탁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돌려보냈습니다. 내가 판사라면 기각시킬 것 같았기 때문이죠. 그러다 후회했습니다. 판례는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는 현재의 판례에 반하더라도 보다 넓게 생각해야 합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도 현실의 벽에 도전해 보는 게 변호사의 보람이라고 생각해요. 욕심이 있다면 앞으로 사회를 바꿀만한 사건을 맡아서 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서명운동을 한다. 그들의 땀과 노력을 먹고 법이 탄생하기도 하고 변하기도 한다. 법의 한 형태가 판례다. 판례는 세상을 살아가는 현실적 기준을 제시하는 삶의 매뉴얼이다. 그걸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변호사다.
“법정에서 변호사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
“법정에서 변호사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어차피 수동적인 입장이니까요. 올림픽 예선에 나오는 축구선수나 감독의 심정으로 재판진행을 변호사인 내가 리드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했습니다. 한 기일 한 기일을 그런 마음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변호사와 돈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제가 월급쟁이로 있었으면 집 한 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집도 있고 친구들 저녁 사줄 정도의 돈이 있으니까 행복합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뭘까요?”
“뭔가 성취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구체적으로는 공부를 더 하고 싶죠. 최근에 미국의 공정거래법에 관련된 해설서를 보는데 수식이나 도표가 많습니다. 수학을 모르면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런 걸 보통사람들도 알 수 있게 설명하는 방법을 연구했으면 합니다. 얼마 전 미국 의학자가 세포 내 분자의 움직임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설명하는 걸 봤어요. 과학적 이론을 보통사람의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하는 거죠. 그걸 보면서 나도 법제도의 구조나 모순을 저런 동영상이나 모형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이 법조계의 모순을 영상으로 만들어 국민이 박수치게 했듯이 법제도를 이해시킬 그런 걸 만들어 봤으면 합니다.”
그다운 발상이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자식 두 명이 연수원과 로스쿨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있다. 겸손한 그가 자기를 드러내는 걸 꺼려도 나는 그를 세상에 나타나도록 해야 할 소명이 있다. 그런 빛이 되는 사람이 어둠을 몰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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