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의 거짓말 때문에 낭패를 본 적이 없는 변호사가 있을까. 거짓말의 종류도 다양하다.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빼놓고 말하지 않는 정도는 양반이다. 실제 일어난 일과 전혀 다른 사실 관계를 늘어놓고 상담을 해달라는 의뢰인도 종종 만나게 된다. 애초에 “만일 이랬다면 어떻게 되나요?”하는 식으로 자기 편하게 사실을 갖다 맞추려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런 말을 믿고 일을 하다간 망신을 당하기 딱 좋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모든 사실을 숨김없이 털어놓게 하기는 힘들다. “저한테는 무슨 말이든 하셔도 괜찮습니다. 불리한 사실이더라도 제가 알고 있어야 대비를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저를 선임하지 않으시더라도 상담 과정에서 나온 얘기를 제가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면 처벌을 받습니다.” 이런 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도대체 비싼 수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왜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의뢰인들은 정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는다. 특별히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데 가끔 비뇨기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누구도 비뇨기과 의사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의뢰인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할 때 변호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 가지 옵션이 있다.
첫째는 그대로 믿어주는 것이다.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오거나 상관하지 않고 맞장구를 쳐주는 것은 분명히 가장 편한 방법이다. 손님(?)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길을 택할 때에는 그 후유증이 너무나 크다. 상대방 변호사나 담당 재판부 혹은 주임 검사로부터 비웃음을 사는 일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스스로 들어도 말이 되지 않는 스토리를 가지고 의견서나 준비서면을 쓰려면 정말 그런 고역이 없다. 그런 식으로 일을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전혀 없는데 실망스러운 소식을 접한 의뢰인으로부터 원망을 듣는 것도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둘째, 날카로운 추궁으로 의뢰인의 주장을 논박하고 진실을 밝혀내는 방법이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가장 현명한 대응일 뿐만 아니라 법조윤리의 측면에서 볼 때도 바람직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할 경우, 자칫 의뢰인과의 신뢰가 깨지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의뢰인의 마음 속에 변호사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는 것은 업무 수행에 있어서도 넘기 어려운 장애물이 될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올바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당사자의 주장을 하나하나 따져 묻고 추궁하는 것이 얼마나 신뢰를 해칠 수 있는지는 피의자를 추궁하는 검사의 입장이 되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검사로 일하던 시절, 범행을 극구 부인하면서 앞뒤가 안 맞는 변명을 해대는 피의자를 끝까지 추궁해서 자백을 받아내고 나면 ‘아, 이 사람과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친구가 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숨기고 싶은 문제를 놓고 벌인 논쟁에서 자신을 이긴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의뢰인에게 ‘우리 편’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어야 할 변호사가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가장 효과를 본 방법은 맞장구를 치지도, 그렇다고 반박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다. 의뢰인이 아무리 오래 얘기를 해도 아직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거나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면 특별한 반응을 하지 않고 그대로 듣는다. 그러다보면 스스로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한 번에 안 되면 다음 번 약속을 해서 상담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당사자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럴 때는 비뇨기과 의사는 아니라도 심리치료사 정도는 된 듯한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언제나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당사자로부터 모든 얘기를 듣지 못한 채 검찰청이나 법정으로 가야할 때도 있고, 명백한 반대 증거를 보고서야 뒤통수를 맞은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실력이 뛰어난 변호사라면 진작 알아차렸을 모순을 뒤늦게 깨닫는 때도 많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변호사는 결국 의뢰인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직업이고, 그것은 의뢰인이 거짓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생각하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의뢰인이야말로 가장 변호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의뢰인의 거짓말을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변호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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