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통해 인생의 자유 깨달아”

이병주 변호사는 혁명가 출신이다. 서울대학 물리학과 시절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빠진 운동권 핵심이었다. 그는 관념론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인천의 대우자동차 부품공장에 취직해 조직적 노동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됐었다. 그게 신문에 대서특필 됐던 ‘반제동맹’ 사건이었다.
그는 공포의 상징이던 대공 분실의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하면서 그는 더 강한 투쟁의지를 불태웠다. 만기석방 후 그는 지방으로 내려가 거점을 확보하고 한겨레신문 지국장 신분으로 지역운동을 했다. 1991년 강경대 분신 사건 때 그는 대전지역 시위의 선전 책임자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사라졌다. 서울로 올라가 대학도서관에 다니면서 고시생이 됐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2년 후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명단에 ‘이병주’란 이름이 올라 있었다. 단시간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한 그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시절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대학입학 학력고사에서 전국 이과부분 차석이었다. 총점 1점 차이로 수석을 놓쳤다. 마음만 먹으면 그는 사법시험뿐 아니라 어떤 것도 자신이 있었다. 3차 면접시험장에서였다. 부장검사 출신이 그의 전력이 적힌 카드를 보면서 질문했다.
“검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검찰이요? 경찰 대공 분실에서는 많이 얻어맞았는데 검찰에서는 때리지 않아서 감사하게 생각하죠.”
그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면접관은 그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 후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그는 대형로펌인 ‘세종’에 들어갔다. 그 후 그는 하버드 로스쿨로 유학을 갔다.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돌아왔다. 그는 이번에는 사뭇 다른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이십대 혁명의 열정이 목숨을 건 예수의 검은 사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운동권에 있을 때 같이 예수를 알리고 있다. 변호사는 주의 진리를 전달하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일 뿐인 것 같다.
그는 늦게까지 일하고 집으로 들어가 새벽까지 성경을 읽는다. 예수파 변호사들을 조직하고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 그는 기독법률가 모임의 주요 멤버이기도 하다. 민중의 아편이라고 치지도외시 하던 종교를 그는 영혼의 기둥으로 삼고 목숨을 바치는 도시의 순교자로 변신한 것이다.
근원적인 변신의 배경을 알고 싶었다. 2011년 8월 9일 오후 4시경 그가 근무하는 로펌 ‘세종’을 찾아갔다. 그는 이미 로펌의 파트너 위치였다. 미녀 여직원이 화려한 콘퍼런스 룸으로 안내했다. 현대식 인테리어의 고급스런 방 구석에는 각종 음료가 들어있는 냉장고도 보였다. 잠시 후 싱글거리며 이병주 변호사가 나타났다. 그의 경력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겁먹고 놀라 두리번거리는 듯한 동그란 눈에 전형적인 맘좋은 모범생의 얼굴이다. 주름져 있는 두툼한 턱살은 고생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대기실이 아주 좋네요.”
내가 화려한 콘퍼런스 룸을 두고 말했다.
“비까번쩍해야 변호사 장사가 잘 되죠. 자본주의 돌아가는 걸 알아보기 위해 처음에는 이 로펌으로 왔었죠. 저는 지금 수임료 협상에서 돈을 많이 요구하는 편이에요. 처음에는 돈 많이 받으면 도둑질 같았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변호사가 열심히 일해 섞여있는 진실을 찾아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죠. 일한 만큼 충분히 돈을 받는 편이 의뢰인에게도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파트너로서 실적이 좋으면 당당해지고 실적이 떨어지면 주눅이 들어요.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죠. 파트너에게 칭찬을 받으면 신나는 거죠. 생각보다 인생살이가 조금 치사하지만, 각자 강한 마음을 먹고 현실을 이겨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미 자본주의 논리 자체가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혁명가가 자본주의의 첨병 소리를 듣는 변호사가 된 이유가 뭔가 궁금합니다. 이번에도 위장 잠입한 건 아니죠?”
내가 농담같이 되물었다.
“1990년 경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서 운동의 현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변호사 자격을 얻어서 인권활동이나 노동운동에 도움을 주는 변호사가 되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서울로 올라와 도서관에 다니면서 공부를 했죠. 처음으로 민법, 형법 같은 법서를 잡았었는데 그걸 읽어보니까 이기적인 인간관을 바탕으로 한 게 법이더라구요. 민법의 상린관계 규정만 봐도 그렇게 법으로 중간에서 이익을 조절해 주지 않으면 이웃끼리 물이나 땅 때문에 서로 찔러죽이는 거 아니겠어요? 법을 공부하면서 법이 이해하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주의 운동이 이해하는 인간의 본성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회주의가 명분은 좋은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자신이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이란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성선설적인 존재가 아니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성악설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산권이 무너진 게 저는 그들의 사상이 인간에 대한 지나친 신뢰 때문이라고 봅니다. 마르크스 레닌이나 모택동은 당과 당원이 공동선을 위해서 이상적이고 완전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기대했지만, 당과 당원도 일반적인 인간의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기본전제가 잘못 되었던 셈이지요.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저는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일단 이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공부하자는 생각으로 로펌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처절하게 몸으로 경험한 귀중한 인생결론이었다.
화제를 변호사 쪽으로 돌릴 때가 됐다.
“지난 15년 동안 경험한 변호사는 어떤 겁니까?” 내가 물었다.
“운동권에 있는 때는 추상적인 이념을 팔았는데 변호사는 구체적으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게 좋더라구요. 의뢰인들과 실질적이고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도 있구요.
민, 형사 분쟁에 휘말린 당사자들은 인생과 영혼의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됩니다. 의사가 환자의 병을 고쳐주듯이 변호사는 민, 형사 분쟁에 처한 의뢰인의 마음의 병을 고쳐줄 수 있는 직업입니다. 변호사 직업의 가장 좋은 점은 추상적이지 않고 지극히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성이라는 게 변호사의 또 다른 장점이었다.
“어떻게 독실한 크리스천이 됐죠?”
내가 물었다.
“연애할 무렵 아내의 마음을 얻으려고 믿지 않으면서도 교회를 따라 나갔습니다. 미모전도법에 걸려든거지요(웃음). 성경을 읽어보니까 사상서적보다 훨씬 내공이 강하다는 느낌이 들어왔어요. 교회에 나가서 설교도 들어봤죠. 운동을 그만둔 후 나 자신이 이미 꺾인 상태니까 전과는 다르게 메시지가 스며 들어오는 것 같았어요. 인간의 한계를 알고 있으니까 절대자인 하나님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죄인이라거나 예수를 통해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직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01년 하버드 로스쿨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공부를 마칠 무렵 갑자기 얼굴과 몸의 피부가 여러 군데 벗겨지는 희귀한 병에 걸렸어요. 의학용어로는 ‘자가면역성수포질환’이라는 피부병인데 삼십 년 전만 해도 치사율이 50%였대요. 갑자기 얼굴과 가슴에 피부가 하루에 열 군데씩 막 벗겨지는 거예요. 갑자기 인생이 투병 모드로 바뀌게 되니까 답답하고 막막했습니다. 이제 겨우 30대 중후반인데, 앞으로의 내 인생에는 아무 낙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왜 내가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지 답답하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가 앞에 놓인 물로 입술을 축인 후 얘기를 계속했다.
“갈 데도 없고 할 일도 없었죠. 그렇다고 귀국하기도 싫었어요. 병에 걸린 보스턴은 신물이 났구요. 주위의 모든 것이 의미를 상실한 겁니다. 화를 풀려고 한 달간 차를 몰아 대륙을 횡단했어요. 이십대에는 세상을 바꾸려고 했는데 삼십대 미국에 와서는 나 한 사람의 초라한 영혼조차 어쩌지 못하는 입장이 된 거예요. 절망하니까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었어요.”
상황이 변화되면서 사람이 그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사고의 변화였다. 그가 얘기를 이었다.
“보스턴에서 LA까지 가서 친구가 소개한 UCLA 대학교회에 다니면서 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 성령이 사람의 인생을 가이드하고 ‘move’해 준다는 설명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을 내 힘으로 끌고 갈 능력도 비전도 없으니까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조용하게 얘기했습니다.
그 직후 목사님이 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는데 그 순간 머리에서 등까지 강한 전류가 관통하는 거예요. 뜨거웠죠. ‘Sometimes you think you are not understood by anyone around you, but I know you(너는 때때로 주변의 누구로부터도 이해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너를 안다)’라고 목사님이 말하는 거예요. 나중에 보니까 성령의 말씀이 목사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거예요. 그때 평화가 마음속으로 밀려 들어왔어요.”
그는 물리학을 전공하는 과학도였다. 그런 그가 성경 속의 기적 같은 얘기를 내게 하고 있었다. 얼핏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날 때부터 수십 년을 믿어온 사람들에게도 그런 현상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계속했다.
“특이한 것은 그 후 집에서 성경을 읽을 때 몸이 굽어지고 진동현상이 왔어요. 새벽에 기도해도 몸이 떨렸죠. 그 떨리는 기운이 입 쪽으로 가면 근육을 움직여 방언이 튀어나오는 겁니다. 물리적으로 측정을 못할 뿐이지 분명히 하나님의 물리적인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았어요. 제가 과학도 출신이니까 그렇게 물리적으로 보여줘야 내가 믿을 것 같았나 봐요. 아픈 자리도 내가 기도하면서 손을 대면 반응이 왔죠.
저는 성경에 나오는 기적 같은 치유를 이제 이해해요. 그리고는 제가 물리학을 통해서 알고 싶었던 궁극적인 진리를 이제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미련이 깨끗하게 없어졌습니다.”
그는 성경 속의 도마와 같이 직접 눈으로 몸으로 체험을 했다. 거기서부터 그의 인생행로가 달라졌다. 그는 예정된 어떤 항구 쪽으로 좌표를 변경한 것이다. 그가 덧붙였다.
“변호사가 인생의 목적은 아니었어요. 그동안 뭔가 찾아봐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인생의 목적을 찾은 거죠. 사상도, 세상의 출세도, 돈도 아닌 자유를 얻게 된 거죠. 인생의 고민들이 다 사라졌어요.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가 우리 인생의 모든 갈증을 충족해 주는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는 변호사로서의 직업이나 성공보다 더 좋은 것이 있지요. 이것을 알게 되니까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오히려 변호사 일을 더욱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변호사를 하는 사도가 됐다.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일 수 있는 치열한 기업들의 이권전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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