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살고 부지런히 일하다가 가난하게 죽어야”

김용준 변호사는 히말라야 연봉 14좌를 정복하듯 법조계 최정상을 다 오른 인물이다.
대법관을 하고 헌법재판소장을 지냈다. 더구나 그는 몸이 불편한 장애를 극복하고 그 자리까지 간 상징적 존재다. 그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훌륭한 법관의 모습보다 몇십 배 더 깊고 넓은 내면을 가지고 있다.
몇 년 전 실크로드의 돈황을 향하는 초원길에서 우연히 그와 동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들판을 달려가는 바람 같은 존재였다. 위구르인 악사 옆에서 어린애같이 좋아할 때의 그는 희랍인 조르바 같은 자유인이었다. 오랫동안 법관을 했으면서도 그는 틀에 잡혀 있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는 세상의 이치에 통달한 현대판 도인(道人)이라고 할까. 평생 법리 속에서 살았으면서도 그의 영혼은 법의 그물을 벗어나 있었다.
대법원 판례에 대한 그의 얘기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몇 달만 지나도 세상이 바뀌는데 법쟁이들은 대법원 판례의 틀 안에서 끙끙거린다는 것이다. 강을 건너고도 배를 버리지 못하고 끙끙대며 들고 다닌다는 불교의 일화가 떠오르는 말이었다. 평생 법관이고 도인이면서도 그는 세속과 부드럽게 어울렸다. 노자는 그걸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고 했다.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던 2011년 8월 5일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근처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다섯평 정도의 소박한 방 책상 앞에 앉은 그의 모습은 도시 속의 은둔자였다. 헐렁한 도포와 주장자 대신 모니터 앞에 양복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대머리와 흰 눈썹은 신선의 숨은 그림자 같았다.
“인터뷰 좀 하죠.” 내가 불쑥 말했다.
“인터뷰는 무슨? 내가 뭘 잘난 게 있다구. 그런 거 절대 안 해. 실크로드에서 같이 여행을 했던 그 얘기나 하자구. 그때 같이 갔던 정대훈 변호사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 떠났어.”
그가 혀를 끌끌 찼다. 인터뷰를 접어야 할 것 같았다. 그냥 그와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내가 느낀 감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것을 쓰건 나의 자유고 필요할 경우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변호사를 해보니까 어떠세요? 전관예우 좀 받으셨어요?” 내가 물었다.
“전관예우는커녕 전관 엿이나 먹이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 헌법재판소장 끝나고 헌재에 위임장 한장 낸 적도 없고 전화 한번 한 적이 없어.”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만큼 꾸미지 않는 인품이었다.
“그럼 변호사로서 사건은 하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사무실에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 며칠 전에도 행정소송을 제기했어. 세무서 측이 말도 안되는 처분을 하길래 한마디 했지. 그랬더니 소송담당 9급 공무원이 나보고 뭐라고 그런지 알아? 현란한 말로 공무원을 우롱한대. 나 원 참. 국민의 공복이면 그냥 있어야 하잖아?”
신선이 세파에 시달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투에 어떤 미움이나 일그러진 감정은 없는 것 같았다. 그가 재야에 내려와 느낀 게 있는지 이렇게 덧붙였다.
“앞으로는 잘못된 행정처분을 하는 공무원이나 오판을 하는 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우선은 승소를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그게 꼭 될거야.”
판사를 오래한 사람들은 변론주의가 법원을 면피시켜주는 제도라고 했다. 그걸 타파해야 바른 법질서가 나온다고도 했다. 어떤 경우에도 판사는 무오류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법이 휠 수도 있다. 조직에 대한 이기주의나 편애를 넘어 현실을 직시한 사법부 원로의 깊은 의견이었다. 그는 사법현실에서 남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듣지 못하는 걸 듣는 선견자이기도 하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가 뜬끔 없이 또 한마디 했다.
“새로 바뀐 행정소송법도 진짜 웃기더라고. 이거 봐”
갑자기 그가 책상 구석에 있는 법전을 끌어당겨 펼친다. 평생 법관을 지낸 분이라 법전이 몸의 일부인 것 같아 보였다. 그가 법조문을 내게 밀어 보여주며 말했다.
“행정소송을 바로 제기할 수 있다고 하면서 다른 법률에 행정심판에 관한 규정이 있으면 그렇지 않다는 거야. 세상에 이런 법조문이 어디 있어? 백성이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자기들만 알지.”
입법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그의 시각은 법적 관점을 넘어 국민의 입장이었다. 그의 비판이 이번에는 법원으로 향했다.
“오늘 신문을 보니까 군사기밀을 누설한 사십 개가 넘는 사건이 모두 집행유예더라구. 군사기밀이 안 된다고 무죄를 선고하면 몰라도 기밀누설자를 모두 봐준다는 거야 뭐야? 이런 나라가 어디 있어?”
판사를 오래 한 사람만 알 수 있는 철학이다. 그가 계속했다.
“약식명령에 대해 정식재판 청구하는 경우가 많아. 이럴 때 당사자가 빡빡 우기면 그래도 억울한 뭐가 있는 거야. 그러면 판사가 벌금이라도 좀 깎아줘야 하는데 너무 팍팍한 것 같아.”
그의 시원한 전방위 비판이 이번에는 변호사 업계로 옮겨졌다.
“요새 로펌이 다 법조계를 망치는 것 같아. 공익소송을 많이 하라고 권해도 시간이 없다는 거야. 돈을 많이 주는 사건만 받고 작은 건 보지도 않으려고 해.”
변호사에 대한 말을 구하러 왔다. 본론으로 들어갈 때가 됐다.
“변호사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그가 책상 귀퉁이에서 부스럭 거리며 비닐커버에 들어있는 서류를 꺼냈다. 평생 증거나 근거를 찾아 제시하는 몸에 붙은 그의 습관인 것 같았다. 그가 그걸 보면서 입을 열었다.
“천국마을과 지옥마을 사이 담장이 부서졌지. 수리비용을 어느 쪽에서 물 것인지를 놓고 소송이 붙었는데 천국마을이 졌어. 왜냐 변호사들이 다 지옥마을에 있으니까. 이거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미국변호사들을 두고 한 농담이야. 변호사가 물에 빠지면 상어도 안 먹는다는 얘기가 있지. 피차 사람을 뜯어먹고 사니까 말이야. 이거 봐.”
그가 자료 중 줄친 부분을 내게 보여주었다. 내용은 이랬다.
‘법률지식을 잔재주로 삼아 사회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인간들에게 접근하여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고 이들 살인자와 암살자들이 법에 의한 정의의 처벌을 회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장 돈을 많이 주겠다는 사람에게라면 가리지 않고 서비스를 팔아 심지어 가장 불의한 행위조차도 변호하고 거기서 승소하기 위해서라면 명예도 체면도 희생시킬 정도로 썩었다.’
영혼을 팔아버린 변호사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었다. 그는 우회해서 할 말을 다 하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미국의 링컨이 철도회사 고문변호사를 한 것에 대해서도 평가가 갈려.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철도회사의 앞잡이가 됐다고 하고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주민들의 권리를 보호했다고 하기도 하지. 링컨은 이렇게 말했어. 정직한 변호사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변호사가 되지 못하더라도 정직한 인간이 되라고 했어. 또 법이라는 직역을 택하기 위해 교활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다른 직업을 택하라고 했지. 내 생각에 변호사는 피스메이커가 돼야 해. 자꾸만 분쟁을 일으키게 하고 가압류 가처분을 하라고 해서는 안 돼. 우리 사회 공동체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 같아. 변호사가 사회에 좀 기여했으면 좋겠어. 한국이 앞으로 10년을 준비하면서 체질을 강화하려면 먼저 뭘 해야 하겠어? 해답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아. 법과 질서의 회복이지.”
“미국은 어떻게 법치주의를 실현해 왔죠?”
내가 물었다.
“미국의 경우 개척생활에서 이질적이고 독립적인 개개인을 묶어 놓을 수 있는 사회적 규범은 서로 합의해서 도출한 법률밖에 없다는 결론이었지. 그래서 미국인은 일단 규율을 세우면 그것을 지키는 준법의 습관을 익혀갔어. 미국 부모들은 아이들이 운전면허를 따면 경찰에 절대복종하라는 것부터 가르치지. 미국의 경우 사소한 교통법규 위반도 종류에 따라 75달러에서 400달러의 벌금이 부과돼. 거기에 일정비율의 징벌적 가산금이 붙고 이듬해에는 보험료가 뛰고, 여기에 불복하려면 소송비용과 변호사비까지 감당해야지. 운전기록에 전과를 남기기 싫으면 교통학교에 들어가 일정시간 교육도 받아야 해. 일년내내 단속과 처벌이 전국에서 이루어지는 거야. 선진국민의 질서의식과 준법정신은 이런 환경에 오래 살면서 자연스럽게 배 나오는 거지.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알아?”
그가 싱긋 웃으면서 자료를 보면서 물었다.
“뭔데요?”
“유리창이 깨진 건물을 방치하면 취객들이 소변을 보고 범죄의 소굴이 된다는 거야. 반면에 건물을 깨끗하게 관리하면 취객들도 감히 소변을 볼 생각을 못하지. 작은 허점이 큰 범죄로 연결된다는 범죄학 이론이야. 줄리아니 뉴욕시장이 취임할 당시 뉴욕은 버려진 도시 같았대. 건물과 지하철은 낙서 투성이였고 범죄가 만연했다고 하지. 그는 취임 후 전 경찰력을 동원해 지하철 무임승차를 막았어. 사람들은 시큰둥했지. 하지만 이삼년 후 뉴욕에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어. 살인사건이 십분의 일로 줄어든 거야. 사소한 허점이 큰 범죄로 연결될 수 있지만 사소한 조치로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거야.”
“그러면 우리사회 법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겠어요? 또 다른 독특한 방법이 없을까요?” 내가 물었다.
“곤장제도같이 다시 태형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어. 싱가포르나 영연방 같은 곳은 아직도 태형제도가 있다니까. 질서 위반을 하는 놈들은 좀 정신이 나도록 맞아야 해.”
그는 법관시절부터 태형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변호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최선의 법률가는 바르게 살고 부지런히 일하다가 가난하게 죽는다 그거지. 그것만 지키면 꿀릴 게 없어. 다니엘 웹스터의 말이야.”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