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논쟁의 중심에 서라”

사법개혁, 그 중에서도 특히 대법원의 개혁이 문제로 되는 경우 이에 대한 처방은 양 극단으로 나누어진다. 재야 법조계의 거의 대부분은 ‘권리구제기능’의 부족함을 지적하면서 대법관 수의 대폭적인 증원을 요구한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 스스로는 ‘정책법원’으로서의 기능과 ‘법령해석통일’을 위한 one-bench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증원에 극력 반대한다. 더하여, 대법원은 본질적으로 구체적 권리구제를 담당하는 곳이 아니므로 대법원 심리사건의 대폭적인 감경방안이 절실하다고 요구한다.

대법원의 이상형이 위와 같다면 우리의 대법원이 어떠한 모습을 가져야 할지 살펴보자.
첫째, 대법원은 국가적 주요 의제에 대하여, 정면대결을 피하지 말고, 과감하게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 격렬한 토론을 벌여 우리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교사의 체벌 허용여부’, ‘양심적 병역거부’, ‘전면적 무상급식’ 등 뜨거운 감자에 해당하는 논점들은 수없이 많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러한 문제의 거의 대부분이 정치권에서 또는 언론의 도마 위에서 논의되고 따라서 정치적이거나 비법률적인 방식으로 처리된다. 이렇게 되어서는 우리사회에 법치가 뿌리를 내릴 기회가 없다. 물론 이러한 문제에 법원이, 특히 대법원이 끼어들었다가는 자칫 뭇매를 맞고 험한 격랑에 휩쓸릴 위험이 있다. 그러나 안이함만을 추구하다가는 결코 우리사회의 등대가 될 수 없다. 우리 대법원의 지난 수십 년간을 돌이켜 보면, 현재의 대법원의 위상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통감하여야 한다. 논쟁의 중심에 서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아니 된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법원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자. 1년에 100여 건의 사건만을 심리하면서, 5대4의 비율로 의견이 나누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주요한 논점에 위와 같이 견해가 나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둘째, 대법원이 권리구제기능을 담당하는 곳이 아님은 원론적으로 옳다. 그리고 현재의 실정이 개개의 대법관이 상상을 초월하는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맞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법원은 현실적으로는 죽을 고생을 하면서 수많은 개개사건의 구체적 타당성을 찾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대법원이 진정으로 정책법원, 법령해석통일법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현재의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그 주장과 같이 ‘바람직한 모습을 보이는 판결들을 쏟아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우리 대법원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사건을 대폭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 주어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한다. 즉 ‘사건을 줄여주면 잘 하겠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먼저 잘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우선이다. 형사재판의 예를 들어 보면, 사건의 진상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피고인 본인이다. 그 다음으로 진실에 근접해 있는 사람은 변호인이다. 진실에 가까울 수 있는 다음 사람은 검사이다. 진실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은 판사이다. 그런데 사건의 결론을 내는 사람은 (진상에서 가장 먼) 판사이다. 그리고 그 결론을 적용받는 사람은 (진상을 가장 잘 아는) 피고인이다. 어마어마한 역설이지만, 이것이 재판제도의 현실이다. 최고법원의 법관이 사실관계만을 토대로 한 구체적 권리구제에 나서는 한 당사자로부터 절대로 존경받을 수 없다. 대법원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보편적 가치판단만을 하는 것이다.

대법원의 정책법원화에 우리의 법관들은 숙달돼 있지 않다. 우리의 사법사(司法史)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이제부터라도 내공을 키우는 데에 각고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 길이 결코 쉽지가 않아 보인다. 사법부 인접영역의 어느 누구도 이를 달가와 할 리가 없다. 최고통지권자가 강력하고 독립된 사법부를 내심으로 좋아할 것 같지 않고, 헌법재판소와는 경쟁관계이며, 검찰권이 사법부를 존중해 줄 풍토도 아니고, 언론계 역시 여론 주도의 기득권을 양보해 줄 리가 없다. 명심해야 할 일은 ‘국민 대중은 결코 싸구려가 아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본질은 싸구려일지 몰라도, 절대로 싸구려로 취급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국민 대중은 그들을 무시하는 사람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법원이 해야 할 일은 ‘국민 대중의 뜻을 읽고 이를 실현’해 주는 것이고, 해서는 아니 될 일은 ‘시대의 변화에 무임승차’하는 것이다. 현재는 과거의 그림자이고 미래는 현재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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