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거장들

이병철 대한변협 사업이사ㆍ변호사


아담 스미스 (1723~1790)


『국부론』, 경제학의 독립선언서

1740년경 스코틀랜드 동해안의 작은 도시 커콜디, 어느 한 젊은이가 잠옷 차림으로 집 밖으로 나가더니 골똘히 생각에 잠겨 20여 km의 먼 길을 걷다가 문득 생각이 났던지 다시 집으로 황급히 돌아온다. 한번 생각에 몰두하면 만사를 잊어버리는 이 젊은이는 길을 가다 웅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차를 끓이다가 빵 조각을 집어넣고는 “누가 끓였는지 참 맛이 없는 차로군” 하고 투덜대기도 한다. 이 젊은이가 바로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Adam Smith)이다.

1759년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을 집필하여 당대의 사상가로 떠올랐다. 이후 10여 년간 유럽대륙 여행을 통해 데이비드 흄, 튀르고, 케네, 볼테르 등 당시 자유주의, 합리주의 사상의 대가들과 교류한 후 1776년 세상에 내놓은 책이 ‘성서 이래 가장 중요한 문헌’이라고 일컬어지는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 국가의 富의 성질 및 원인에 대한 연구)』이다.

1776년은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자유를 향한 독립전쟁이 발발하여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해이다. 『국부론』은 바로 그 석 달 전에 출간되었다. 아담 스미스는 신대륙의 신세계가 아니라 영국 땅에서 수립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자신의 경제이론을 통하여 신세계로 묘사하였다. 『국부론』은 경제학의 독립선언서이다.


이기심에 의한 훌륭한 신세계

아담 스미스가 경제학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국부론이 경제학의 바이블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9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 중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원적인 동력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바로 아담 스미스의 시대를 꿰뚫는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 또는 빵집 주인의 이타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덕택에 식사를 기대할 수 있다. 거지 이외에는 아무도 타인의 이타심에만 의존하려는 사람은 없다.”

천만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서울이나 뉴욕 같은 거대도시에서 아침이면 정해진 시각에 신문이 배달되고 신선한 우유를 먹을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상식이 된 것은 겨우 2백 년 내지 3백 년 전부터이다. 이와 같은 일상을 강제하는 봉건권력도 없고 구시대의 신분질서도 없으며 이를 계획하는 중앙정부의 계획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재화와 서비스가 돈을 지불하면 적절한 양으로 생산되고 적절한 가격으로 배분되며, 적절한 이윤으로 소득이 분배되는 시스템.

그 이면에는 개인의 ‘이기심’과 이기심에 따른 ‘경쟁’이 있고 이를 통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아닌 조화로운 신세계의 질서가 유지된다. 이러한 자연적 자유의 질서를 체계적으로 규명한 최초의 철학자가 바로 아담 스미스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신비, 자연적 자유의 질서

한비자는 “의원이 환자의 상처를 빨아 고름을 입에 담는 것은 환자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보고 하는 일”이라고 말했고 홉스 역시 국가권력이 없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이기심 때문에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홉스나 한비자는 인간의 이기심을 전제로 강력한 절대군주의 통치를 역설하였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는 시장의 자연적 질서의 위대함을 신뢰하고 그 결과 자유방임적인 작은 정부를 주장하였다. 개인의 이기심이 모두를 이롭게 하므로 정부는 시장에 간섭하지 말고 자유방임(laissez-faire)하라.

“사실상 기업주들이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일하는 것은 아니며,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는지 알지도 못한다. …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이득만을 추구하는데,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공적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다.”

『국부론』 중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부분에 ‘단 한 번(!)’ 등장하는 이 ‘보이지 않는 손’이란 표현은 경제학의 상징이 되었다.

위정자들은 언제나 숭고한 이념을 내세우며 사회를 조직하려 기도한다. 정의의 이름으로 평등의 이름으로. 혁명의 깃발로 개혁의 기치로. 그러나 아담 스미스는 사회를 자기 멋대로 요리할 수 있다고 믿은 군주들을 비웃었다.

“군주들은 장기판의 말들을 옮기는 것만큼 사회를 쉽게 생각한다. 장기판의 말은 손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지만 거대한 인간사회는 자신들의 독자적인 운동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군주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사회는 불행해진다.”

중앙계획 당국에 의해 또는 무오류의 당과 위대한 지도자 동지에 의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분배가 공평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은 사회주의 실험은 실패했다. 산업혁명의 태동기에 불과했던 18세기 중반에 씌여진 『국부론』에서 우리는 역사를 관통하는 스미스의 위대한 통찰을 발견한다.



카르텔의 위험성과 정부의 필요성

스미스가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였다고 하여 그를 기업가들의 대변자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는 기업가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도둑질하려고 한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같은 업종의 사업가들이 오락을 위해 모이는 경우조차 그들의 대화는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음모나 가격을 올리는 책략으로 귀결된다. … 사업가들의 이익은 어떤 면에서는 공공의 이익과 다르며 … 경쟁을 제한하는 것은 언제나 이들에게 이익이 된다. … 따라서 이들이 제출하는 새로운 법률이나 제안은 주의 깊게 검토되어야 한다.”

스미스는 공정거래법에서 규제하고 있는 기업들의 카르텔 형성과 이에 따른 시장의 실패가능성에 대하여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정부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정부의 불필요한 시장간섭을 경계한 것이지 경쟁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까지 부정한 것은 결코 아니다.



국가는 어떻게 부유해지는가?

스미스가 규명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과연 ‘훌륭한 신세계’인가? 그가 살았던 18세기 중반의 영국에는 ‘보이지 않는 손’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었다.

당시 약 1천2백만의 영국 인구 중 약 1백50만 명이 빈민이었다. 모직산업의 발전으로 지주들은 농지에 울타리를 치고 양들을 키우고자 농민들을 몰아내었다. 소위 엔클로저운동의 결과 도시로 밀려든 농민들, 기계의 발명으로 인하여 일자리를 잃어버린 수공업자들은 도시의 뒷골목에서 실업자와 빈민으로 전락하였다.

산업혁명의 동력원인 탄광에서는 반나체의 남녀와 열 살 미만의 어린이까지 일했고, 막장 안에서 임산부가 해산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구성원들의 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 한 그 사회는 결코 행복하거나 번영하는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소수는 점점 부유해지고 다수의 가난한 사람이 고통받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현실에 스미스는 가슴 아파했다. 그러나 그는 노동의 분업화로 인한 생산력의 발전, 지역 간 교역과 국가 간 자유무역이 대중을 빈곤으로부터 구해낼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잘 사는 나라의 원천, 분업과 자유무역

산업혁명이 있기 이전까지 인류의 경제사 전체를 고찰해 볼 때 경제성장률은 거의 0%에 가까웠다. 산업혁명 초기의 영국 경제현장을 목도한 스미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이전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생산성을 낳는 비밀을 분업(division of labour)에 있다고 분석했다. 『국부론』의 첫 장은 그 유명한 핀 공장의 예로 시작된다.

“나는 작은 핀 공장을 본 일이 있다. 한 사람은 철사를 자르고, 한 사람은 철사를 뾰족하게 하고, 한 사람은 철사의 끝을 간다. … 한 사람은 핀 머리를 붙이고 한 사람은 핀을 희게 갈고 한 사람은 핀을 종이에 포장한다. 이렇게 하여 열 사람이 하루에 4만8천 개, 한 사람당 4천8백 개의 핀을 제조하고 있었다. 직공 혼자서라면 아마 하루에 20개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며, 어쩌면 단 하나도 만들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분업에 의해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새로운 기계가 발명됨으로써 또 다시 경제는 발전을 반복한다. 지방과 국가들 사이의 분업과 전문화, 교역의 확대와 자유무역을 통해 확대된 시장은 더욱 큰 경제적 이익과 소득의 증대를 가져다 준다. 시장의 교역과 자유무역을 가로막는 규제는 철폐되어야 한다. 증대된 국부를 통해 빈곤층의 생활수준은 이전에 비하여 현저히 향상되는 것이다.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결국은 가장 빈곤한 사람들에게까지 자유방임시장의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아담 스미스의 통찰이었다.

“오늘날 문명국의 최하층 빈민의 의식주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부호들에 비하면 너무나 조촐하게 보이겠지만, 이 역시 수천 명의 분업과 협업에 의해 제공된 것이다. 한 농부의 생활수준은 당연히 부호의 생활수준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이 평범한 농부의 생활수준은 수많은 미개인들의 자유와 생명을 한 손에 쥐고 군림하는 아프리카 제왕의 생활수준보다도 사실상 훨씬 더 높은 것이다.”



위대한 경제학자들과 우리 시대의 과제

2009년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쟁점인 양극화 문제, 성장과 분배에 관한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 한미FTA에 대한 논쟁 등은 이미 스미스의 고뇌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본질적인 과제는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1723~1790)의 천재성도 그가 처한 역사적 상황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그의 훌륭한 신세계는 계급투쟁이 본격화된 19세기에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라는 위대한 철학자에 의해 도전을 받는다.

20세기 독점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주기적 공황의 위기에 직면한 자본주의는 존 메이나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라는 유쾌한 천재를 만나게 된다. (마르크스가 사망한 해에 케인즈가 태어났다! 운명처럼…)

21세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아담 스미스는 다시 세계를 지배하는 사상적 영도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세계자본주의는 케인즈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경제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들 세 명의 철학자와 이들을 사상적 원류로 하여 등장한 거장들의 고뇌를 추적해 보면 현재 세계자본주의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시대적 문제들을 해결할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그것이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경제학자 및 철학자들의 아이디어의 힘은 옳고 그름을 떠나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다. 세계는 그 아이디어들이 움직여 나간다.” (John Maynard Key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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