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원 변호사
△ 김기원 변호사

올해 1월 대한변협 임시총회에 ‘대한변협 협회장 선거를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반드시 원격 전자투표로만 시행하도록 하는 회규 개정안’이 부결되었다. 현재 대한변협 회규는 협회장 선거를 현장투표 또는 전자투표로 실시할 수 있다고 재량을 주면서, 전자투표 시 ‘공신력 있는 기관’의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2021년 대한변협 협회장 선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비스를 이용한 전자투표로 이뤄졌다. 그런데 중앙선관위는 2021년 10월 온라인 투표 시스템의 민간기관 지원을 종료했다. 이후 일부 지방회 회장선거와 변협 대의원 선거는 민간기업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나, 대한변협회장 선거는 더 이상 ‘공신력 있는 전자투표시스템 제공 기관’이 없다는 판단하에 현장투표만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협회장 선거를 원격 전자투표로 진행하면 유권자가 투표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감소하므로 투표율이 높아진다. 그러나 원격 전자투표는 여러 문제가 있다. ① 작년 국정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이 가상의 해커가 선관위 전산망을 침투하는 시도를 해본 결과 중앙선관위 투·개표 관리 시스템은 해커가 침투할 수 있는 상태로 파악됐다. ② 해킹이나 관련자 개입 등이 있어도 현장투표처럼 감독자 등이 물리적으로 감시할 수 없다. ③ 부정선거 논란 시 재검표를 해볼 수 없다. ④ 원격전자투표는 구조적 문제점, 위헌성이 있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전자투표 소프트웨어 하자나 선거 조작 여부를 유권자가 알기 어렵다’며 전자 투개표 시스템 사용을 위헌 결정했다. 프랑스, 캐나다, 스위스, 스웨덴, 대만 등도 전자 투개표 시스템을 폐지하고 전면 수개표로 전환했다. ⑤ 이라크, 콩고, 엘살바도르, 볼리비아, 남아공, 벨라루스, 키르기기스탄 등의 부정선거에 국내 생산업체의 전자개표기가 이용되어, 조작 가능성을 보여줬다. ⑥ 투표율은 투표 참여 시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으로도 높일 수 있다. ⑦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해킹, 조작, 부정을 재검표로 확인할 수 없는 투표방식을 사용하자는 발상은 정당화될 수 없다. ⑧ 지난 대선 양 후보간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는데, 5000여 명의 출구조사만으로 개표 초기에 득표율을 거의 정확히 예측했다. 즉 투표율이 다소 낮아도 통계적 정확성에 의한 다수의 민의가 대표된다고 볼 수 있는 반면, 부정선거를 재검표할 수 없다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일각에서는 ‘설마 변협 협회장 선거에 누가 부정선거, 해킹을 하겠나’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해 협회장 선거에서 드러난 외부세력 개입, 거짓과 왜곡에 의한 비방 등을 고려하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보안 원칙은 ‘대비되지 않은 부분이 제도적으로 당연시되면 그 부분은 언젠가 무조건 뚫린다’는 것이다. 전국 교정기관은 매일 무작위로 쇠창살을 몇 개씩 흔들어본다. 아무도 쇠창살을 흔들어 보지 않으면 ‘쇠창살을 잘라 탈옥하는’ 일이 언젠가 일어난다는 것이 보안 원칙이기 때문이다.

원격 전자투표도 사람이 운영관리하는 일인 이상 부정부패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절대적인 해킹 보안을 갖췄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다수 인력이 현장에서 육안으로 감시하는 종래 방법 이상의 ‘공정한 투표관리에 대한 가시적 신뢰’를 전자투표 절차가 주지 못한다. 전자투표는 전기신호 배열로 투표숫자를 표시하는 것에 불과하고, 처리과정에 부정이나 해킹이 없었다고 가시적으로 담보하는 어떠한 구조도 없다.

부정이나 해킹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신뢰할만한 방안이 만들어지고, 독일연방헌법재판소도 전자투표가 위헌이라는 견해를 바꾸기 전까지는, 원격 전자투표 시행 대신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적절한 형태의 인센티브를 주는 쪽이 바람직할 것 같다.

/김기원 한국법조인협회 회장
법무법인 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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