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상환 실적 있어야" 피싱범에 속아 계좌 대여… 송금된 돈 반복이체

명의대여자에 피해자 700만원 이체… 대한법률구조공단 통해 소송 제기

법원 "사기범행 방조, 210만원 배상"… 신분증 제공 등 피해자 과실 참작

△경북 김천에 있는 법률구조공단 본부 전경
△경북 김천에 있는 법률구조공단 본부 전경

피싱에 속아 은행 계좌 명의를 빌려주고 비정상 금융거래를 반복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과실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5일 대한법률구조공단(이사장 이종엽)에 따르면, 박민우 광주지법 판사는 메신저 피싱을 당한 B씨가 계좌 명의대여자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A씨는 B씨에게 21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급전이 필요했던 A씨는 2022년 10월 인터넷 대출 사이트에 번호를 남겼고, 카카오톡으로 피싱범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자신을 모 저축은행 상담사로 소개한 메신저피싱범은 “대출을 받으려면 신용등급을 올려야 하니 대출과 상환 실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카드론으로 300여만 원을 대출받고 가상계좌를 만들어 메신저피싱범이 지정한 은행계좌로 송금했다. 이어 이 금액을 입금 받으면 또다시 송금하는 일을 반복했다.

같은 시기에 B씨는 “휴대폰 액정이 깨져 보험처리 하는데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B씨는 이 문자를 딸이 보냈다고 착각하고, 신분증 사진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B씨 휴대폰에는 원격제어 어플리케이션이 설치되고 오픈뱅킹 계좌가 개설됐다. 곧이어 B씨 계좌에서 A씨 계좌로 700만 원이 이체됐다.

딸과의 통화로 사기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수사기관에 피해사실을 신고했으나 메신저피싱범은 잡히지 않았다. A씨 계좌로 송금된 700만 원도 메신저피싱범 지시에 의해 이미 제3의 계좌로 이체된 뒤였다. 경찰은 A씨를 피의자로 입건하지 않았다.

결국 B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은 A씨가 범죄 가담 의도는 없을지라도, 부주의로 범죄행위를 도운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에 B씨가 입은 피해금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A씨는 “나도 카드대출금 300만 원을 사기당했다”며 범죄와 무관함을 주장했다.

법원은 “A씨가 비정상적인 금융거래임을 인식할 수 있음에도 계좌정보를 제공했다”며 “또 사기 범죄단에게 돈이 전달되도록 과실로 사기 범행을 방조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B씨도 경솔하게 신분증 등을 제공한 과실을 참작해 A씨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B씨의 소송을 대리한 공단 소속 구태환(변호사시험 7회) 변호사는 “대출을 빌미로 계좌정보와 함께 이체 등을 요구하는 형태의 메신저피싱이 늘고 있다”며 “비정상 금융거래에 가담하면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고 이를 배상해야 하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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