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섭 변호사
△ 정진섭 변호사

책 읽기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최상의 취미다. 어쩌다가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책을 만나면, 마치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이 맑은 물가에서 나 자신을 비춰보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얼마 전, 좋은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제목은 ‘에움길(도서출판 좋은땅 刊·우측 사진)’이다. 저자 추호경 변호사는 나와 1980년대 초 초임 검사 시절부터 40여 년 동안 기나긴 검찰과 재야 법조 생활 동안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거듭해 왔으며, 후배인 나로서는 항상 배울 점이 많아 멘토이자 자상한 형님으로 여겨 오던 분이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를 핑계로 한동안 만남이 뜸하다 보니까 이렇게 좋은 책으로 나에게 잔잔한 미소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려는 모양이다.

문득 ‘사람이 글보다 아름다워’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내가 아는 추호경 변호사는 글솜씨가 워낙 뛰어난 분이지만, 사실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랫말처럼, 글보다 훨씬 아름다운 인품의 보유자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철학이 깊은 모범 공직자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가족사랑과 이웃사랑이 넘치는 인생 3막을 여유롭게 보내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심플한 장정의 표지에 저자 이름이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다. 그보다는 조금 큰 글씨로 ‘변호사 같은 검사, 검사 같은 변호사의 세상 사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이 책에 담긴 내용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모두 다섯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책을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아침 편한 시간에 한편씩 읽기에 알맞다. 그냥 목차를 보다가 눈에 띄는 소제목이 있으면 그 페이지를 열어서 읽으면 된다.

저자는 검사 시절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전혀 날카롭지 않고 수더분한 시골 외삼촌 같은 인상 때문에 살인 사건 피의자들도 곧잘 자백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담담하게 써놓았다(‘화광동진’). 또 40년이 지난 지금 초임 검사 때 구속 기소한 오토바이 절도범에 대하여 너무 냉엄하지 않았나 하고 자기 반성을 하기도 한다(‘청소를 하다가 문득’). 그렇다면 ‘변호사 같은 검사’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의뢰인이 사리에 맞지 않는 요청을 하면 단호히 수임을 거절하거나(‘원하는 것과 옳은 것’), 마을변호사로서 무료 법률상담을 하다가도 민원인이 오히려 범법을 저지른 것이 확실하다 싶을 때는 바로 그 자리에서 지적을 하는 것을 보면(‘당황과 황당 사이’) 검사 같은 변호사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또 요즘 법원의 판결이 너무 법관 개인의 신념에만 따르는 경향이 있음을 걱정하며(‘잣대’), 특출나고 엽기적이어서 세인의 관심을 끌기보다는 평범하더라도 당사자와 사건관계인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설득력 있는 판결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콜럼버스의 달걀’). 이런 모습을 보면 아직도 강직함과 정의감이 펄펄 살아 있는 분임에 틀림없다.

이 책에는 법조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왕성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다가 3년쯤 전부터 양평의 전원주택으로 들어가 재택근무를 주로 하면서 유명화가인 사모님과 정답게 사는 모습이 곳곳에 담겨 있다. 집안일을 아내 혼자 도맡아 하는 것에 미안해서 도와주며 느낀 생각들(‘톱 우먼’ ‘청소를 하다가 문득’), 손님맞이를 하다가 문득 깨달은 바가 있다거나(‘손님’), 오래된 승용차를 바꾸지 않고 고집하는 아내와의 갈등 아닌 갈등(‘19년째 타는 자동차’), 사랑스러운 손자·손녀와 도란도란 지내는 이야기(‘살기 좋은 곳’ ‘애국가’) 등에서 저자의 인품이 오롯이 느껴지며 우리에게 소소한 것까지 많은 가르침을 준다.

책 제목을 ‘에움길’로 정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라도 맨 마지막 글은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의 인생 경험은 저자에 비해 여전히 일천한 편이고,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에움길’이라는 말조차도 몰랐으며, 젊은 시절 내내 ‘지름길’로만 달리고 싶어 하던 사람이지만, 이제는 나도 ‘에우면서’ 살아가는 게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지내고 싶다. 이분은 나에게 사랑과 정의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준, 참다운 거울이다. 글 솜씨가 서툰 내가 흔쾌하게 서평을 써보겠다고 나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분은 분명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글도 아름답다. 지혜의 도서관일 수 있는 이 책에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느냐하는 것은 순전히 독자 몫이다. 직접 만나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이 책의 일독을 강력 추천한다.

​ △ 에움길(추호경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좋은땅, 2023. 11.)
​ △ 에움길(추호경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좋은땅, 2023. 11.)

/정진섭 변호사
전 경희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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