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용근 변호사
△ 손용근 변호사

「사법의 정치화」, 이 말은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 사법 불신의 상징어구가 되었다. 올해 4월의 총선을 앞두고 어느 때 보다 많은 법조인들이 출마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지금 사법 정치화의 그림자가 다시 어른거린다. 현직에 있는 판사·검사들이 총선으로 직행한다는 보도는 매우 염려되는 소식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에 타격을 가하는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직에 있는 동안에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자기금도(自己禁道)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오늘은 이 자기금도부터 글을 시작하려 한다.

법조인의 자기금도를 생각할 때마다 늘 기억되는 어구 하나가 있으니,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자두나무 아래에서 관을 고쳐쓰지 않다는 뜻이다. 자두나무 아래에서 관을 고쳐 쓰면 엉뚱한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남의 의심을 살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하겠다. 필자가 이 말을 처음으로 뜻을 새겨 깊게 들은 것은 1975년 사법연수원 그 시절 초반이었다. 그 당시 교수님을 비롯한 사법부의 여러 어른들로부터 늘 사법관은 시비곡직을 가리는 공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니 특별히 공정성을 의심 받을 만한 행동을 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을 누차 가르침 받곤 했었다. 그 당시 동기생 58명 모두가 그 말에 공감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이후 판사나 검사로 임관한 동기들 모두 그러한 마음으로 공직에 나아 갔고 감당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백발이 된 동기들의 삶의 궤적 또한 거기에서 크게 벗어난 경우를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사법신뢰와 관련하여 「이하부정관」이라는 글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현직에 있는 판사나 검사가 그 본업인 재판과 수사보다는 정치의 냄새가 어른 거리는 언행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금년 4월 총선을 앞두고는 아예 현직에 있는 검사들이 출마 선언을 하는 것도 목도하게 되었다. 물론 시대가 변하였고 선거문화도 변하였으며 판사·검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선거에서 국민 이벤트적 문화가 침투한 것이나 많은 판사·검사 출신 법조인들이 총선에 출마하는 것, 이것들도 시대조류일 것이다. 소수 법조인 시대가 끝나고 대중법조인 시대가 도래한 지금의 현실에서 법조인 직역확대적 측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떻든 보도에 따르면 금년 4월 총선에 출마하려는 사람들 중 전직 판사 출신이 20여 명, 전직 검사 출신이 40명 이상이다. 전직 경찰 간부 출신 법조인까지를 더하면, 도합 80여명이나 된다. 여기에 애초부터 변호사로 출발한 법조인 출마자를 포함하면 전국 253개 선거구 가운데 적어도 3분의 1이상, 많게는 5분의 2 정도의 많은 선거구에 법조인이 출마할 것 같다. 가히 법조인 출마 전성시대라고나 할까?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법조인들이 정치에 참여하여 선거직을 담당하여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 자체가 우려할 일은 아니다. 「헌법과 법치주의」를 배운 사람들로 법과 제도에 보다 익숙한 강점이 있을 수 있다. 소위 선진국의 의회에 법조인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현상도 그러한 강점의 소산일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이 점에서 필자도 법조인들이 국회에 많이 진출하여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현직 판사·검사의 총선직행에는 사법의 공정성과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어찌 필자 뿐이겠는가?

근간 검찰총장의 질타와 관련된 사례를 보자. 지난 해 추석 현직에 있으면서 총선출마를 시사하는 문자를 보낸 일로 감찰을 받은 일이 있던 K부장검사는 근간에 검찰총장의 경고와 좌천성 인사에도 불구하고 모 정당에 입당하고 총선예비후보자로 등록하였다. 검사장을 지낸 S, L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들도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마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몇 년 전까지 기억을 되돌리면 정치적 성향의 언행으로 눈총을 받던 사람들이 사직을 하고 얼마 뒤 바로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던가?

결국 논란의 핵심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한 신뢰성 문제이다. 공직에 있는 동안 출마 준비를 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고 그럴 경우 판사나 검사로서 내린 사법적 판단에 정치적 편향이 포함되었다고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당선을 위하여 그런 편향 행위를 암묵적으로 행하였을 가능성은 비판 이상의 실재로 존재했던 일들이 아닐까? 그런 이야기를 왕왕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이것은 「정직성」, 「공정성」, 「중립성」이 생명인 사법 신뢰의 중대한 훼손이 될 수 있다. 공무원으로서도 금해야 될 일이고 더구나 사법업무를 담당하는 특별한 공무원인 판사나 검사로서는 더욱 금해야 할 일인 것이다.

공무원이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 법에도 정해져 있다(국가공무원법 제65조, 지방공무원법 제57조). 국가정책의 안정적이고 능률적인 집행을 위하여서는 직업공무원제도가 정착되어야 하고 그 정착에 필요한 필수적인 요소가 정치적 중립인 것은 문명국가의 일반적 헌법원리이기도 하다. 물론 공무원이라고 하여 선거권·피선거권이 완전박탈 되는 것은 아니고 정치적 중립성과 선거 관련 권리의 조화적 해석·적용이 필요한 것 또한 또다른 헌법원리이기도 하다. 그 조화원리에 따르자면 공무원은 그 중립성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때 선거에 출마하면 된다.

공직을 떠나 일정한 기간이 지난 다음에야 출마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거직에 나가려면 적어도 90일 전에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공직선거법 제53조 제11항). 그러한 「일정 기간」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특히 판사나 검사의 경우 그 준수 여부가 엄격히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 기간을 지키지 아니한 것도 큰 문제지만, 더 나아가 재판을 하거나 수사업무를 수행하면서 사전선거운동으로 보이는 언행을 하게 된다면 이것은 곧바로 시비곡직을 가려야 하는 사법업무의 「정직성」, 「공정성」, 「중립성」을 훼손하는 직격탄이 될 것이 아닌가?

근간의 사법의 정치화 논란은 지난 수년간 현직에 있는 판·검사의 정치적 언행과 사직 직후의 국회진출 현상과 관련이 있고 그에 따라 사법 신뢰 저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자 판단이다. 금년 4월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현직 판사·검사나 경찰 간부가 계신다면 맡은 업무의 정직성, 중립성, 공정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이하부정관」까지는 아니어도 좋다. 최소한 「법에 정해진 그대로」의 휴지기를 가져 주시기 바란다. 그것이 사법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국민적 인정을 받는 바른 길일 것이다. 잃어버린 존경을 회복하는 첫걸음일 수도 있다. 필자가 굳이 아주 오래전 「이하부정관」의 기억을 글 서두에 꺼내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사법의 정치화 논란은 지난 수년간
현직에 있는 판·검사의 정치적 언행과
사직 직후의 국회진출 현상과 관련 있고

그에 따라 사법 신뢰 저하에 상당한 영향 미쳐

끝으로 「법에 정해진 그대로」와 관련하여 판례 하나 적어둔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으나 판사·검사의 총선직행 물꼬를 튼 것 같아 유감을 표해 두려는 뜻이다. 경찰간부직을 유지한 채 출마해 당선된 H의원의 손을 들어준 판례(대법원 2021. 4. 29. 선고 2020수6304판결)로서, 당선인과 관련한 여러 논란이 많았다. 지금도 H의원은 형사재판을 받고 있고 해당 판례는 여전히 정치권과 언론에서 논란중이다. 이 판례에 따르면 「공직선거법상」 기한 내에 사직원을 제출하면 수리 여부와 관계 없이 수리된 것으로 간주되어 정당 가입과 후보자등록을 할 수 있게 된다.

즉, 사직원 제출=사직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법규충돌과 입법 불완전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런 법해석이 가능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 판례의 정치적 응용 가능성 때문에 사법의 정치화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했다는 느낌을 갖는 법조인들도 많을 것이다. 그 판단을 최종적으로 하신 분들, 「이하부정관」의 마음은 없었을 것 같다. 그 분들의 젊은 날, 법조 윤리 강의에는 그런 언급이 없었나? 아니면 알면서도 굳이 눈을 감은 것인가? 논란의 종지부를 찍기 위하여서는 법을 정확하게 정비하든지, 그 판례를 변경하든지, 두 가지 중 하나는 꼭 해야 할 것 같다. 현직 판사·검사의 총선직행으로 사법 신뢰가 저하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소망을 글 끝에 다시 적는다. 나이든 변호사의 간절함이 부디 젊은 법조인들 가슴에 조그만 물결이라도 일으키기를 기대하면서.

/손용근 변호사
前 사법연수원장·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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