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변호사 출신에 '과거 수임내역' 거론 문제제기 관행 늘어

선거철 마다 여론몰이식 비판 횡행… "누구든지 조력 받을 수 있어야"

'사건대리 이유로 비방금지' 변호사법 개정 주장도… "기본권 보호를"

△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오는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인재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변호사 출신에 대한 부적절한 비판이 관행처럼 이어져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에 맡은 수임내용 중 대중 정서를 자극하는 사례만 콕 집어 부각한 뒤 "왜 이런 흉악범을 변호했느냐"는 식이다. 

법조계에서는 "누구든지 변호인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헌법의 정신"이라며 "흉악범 등을 변론했다고 '나쁜 변호사' 프레임을 씌우는 건 지극히 반(反)법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성남FC 뇌물' 관련 1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성남FC 뇌물' 관련 1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최근 여러 언론에서는 모 정당에 영입된 A변호사가 '집단강간' 가해자를 변호한 적이 있다고 보도하며 "부적절한 인재영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A변호사는 "자발적으로 수임한 게 아닌 고용변호사로 근무하던 시절 배당받은 사건"이라며 "무리하게 변론하거나 부당한 감형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입장문을 올렸다.

논란은 사그라들었지만 이런 방식의 공격은 변호사 출신 인재에게 늘 따라붙는다. 법치주의에 따른 합리적 판단보다는, 특정 인사에 악의적 이미지를 덧씌워 '인민재판'을 유도하는 여론공작이 정치판에서 더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다.   

앞서 2021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사법시험 28회) 대표도 변호사 시절 '동거녀 살해 사건'을 변호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 사건은 가해자 B씨가 4년간 동거하던 씨를 경기도 성남구에 있는 C씨 집에서 농약을 마시라고 강요하고, 복부를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사건이다. C씨는 병원 치료 중 숨졌고, B씨는 징역 15년을 받았다.

논란이 일자 이 대표 측은 "동료변호사가 사건을 맡아서 했고 이 대표는 배석을 같이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았던 현근택 변호사는  "(변호사 시절 이재명 대표는) 민사, 형사사건을 합쳐 수천 건을 처리했을 것"이라며 "그중 한두 건으로 '살인 변호사'라고 비난한다면, 대한민국에서 변호사 출신은 정치인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20년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 추천위원으로 선정된 장성근(사시 24회) 변호사가 성범죄 피의자 변호를 맡았다는 논란 때문에 위원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n번방' 사건에서 조주빈 씨의 공범으로 알려진 C씨의 사건이었다. 사의 표명 후 장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글을 남겼다.

이러한 논란이 거듭되자 2021년 12월 대한변호사협회는 '살인자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성명을 내고, 변호사를 겨냥한 부당한 매도를 멈춰달라고 당부했다.  

변협은 성명을 통해 "모든 사건을 편견 없이 변호해야 하는 변호사가 여론에 부담을 느껴 사임을 하는 상황은 결국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변호사 역할은 실체적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고, 증거를 조작하여 흉악한 범죄자를 무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누구나 자신이 저지른 범죄만큼 처벌을 받게 하는, 특히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까지 처벌받지 않도록 국민을 돕는 것이 변호사의 의무이자 사명"이라며 "특정한 사건을 변호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점은, 결국 국민의 인권 침해와 기본권 보장을 목표로 한 변호사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변호사가 의뢰인이나 사건 내용을 보고 선별적으로 변호 활동을 하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한다"며 "변협은 선별적 변호를 징계 사유로까지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변호사 윤리규약 제16조 1항은 "변호사는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12조에는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 담겼다.

△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법조계 안팎에서는 변호사가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 사건을 수임했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되면 변호사들이 사건을 가려서 받게 되고, 국민들은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게 된다. 결국 사건에 대한 판단은 법원이 아니라 '여론 법정'에서 이뤄지며 실체적 진실과도 멀어진다는 지적이다.    

천주현(사시 48회) 형사법 전문변호사는 "변호사법에 '누구도 변호사가 누구를 변호했는지를 이유로 비방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면 이와 같은 문제는 종식될 것"이라며 "형사처벌규정을 신설하지 않아도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기사를 내면)명예훼손죄 등으로 처벌 받을 가능성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언론의 자유의 한계는 불분명하고 이 같은 변호사법 개정이 없어서 이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 같다"며 "변호사 조력권을 점차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민호(변호사시험 3회) 대한변협 제1공보이사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이고, 흉악범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상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며 "흉악범을 변호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변호사가 비난받거나 차별을 당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대가 흉악범, 파렴치한 성범죄자, 한 가정을 파탄 낸 사기범죄자라 하더라도 변호사는 그 사람을 위해 성실히 변론해야 하고 이는 우리 변호사들이 짊어져야 가는 숙명"이라며 "변호사들이 중대 범죄혐의를 받는 피의자나 피고인을 변호하기 꺼려 하는 세상이 온다면 그 불이익은 온전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헌법에 따라 정당하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았다고 조력을 한 변호인까지 비난하는 현재의 보도 행태가 성숙한 저널리즘의 태도인지 묻고 싶다"며 "헌법에서 언론의 자유를 규정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큰 힘을 부여한 만큼 그 힘을 사용할 때도 헌법적 가치, 즉 국민의 권리를 부디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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