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절차를 없애면 빨라진다 1-

△ 김원근 변호사
△ 김원근 변호사

미국의 법조인이 우리나라 재판절차를 알게 된다면 재판지연의 해결과 관련해서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권할만 한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소장 답변서 단계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기각해버리는 절차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재판절차에서는 소장에서 주장된 내용이 (모두 사실인 것으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법률적으로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당사자의 주장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소장 기각신청-Motion to Dismiss-이라고 한다) 판사의 법률적인 판단으로 소장 자체를 기각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판절차에서는 위와 같이 소장기각과 관련된 변론절차가 따로 있는게 아니고 본격적인 심리를 위한 변론으로 먼저 시작한다. 문제는 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도 살아남아서 변론절차를 진행하기 때문에 법원의 업무자체에 많은 부하가 걸리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미국의 소장과 답변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청구취지가 중요시되는 되는데 반하여) 사실관계를 충분하고 구체적으로 담아야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생략된채 결론적인 사실관계주장을 하는 것 역시 기각사유가 된다. 시효주장 처럼 케이스를 조기 종결할 수있는 결정적인 주장을 소장 답변서에서 누락하게 되면 이후 추가 주장을 통하여 보충하는게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장자체로 문제가 있어도 여러번의 변론을 열고 재판이 끝까지 진행된다. 따라서 법률적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소장 답변서를 준비서면으로 보충하고 계속 같은 주장을 반복하거나 심지어는 변론종결 무렵에 새로운 변호사를 선임하여 종결을 미루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이는 신속한 재판의 진행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장 큰 장애로 보여진다.

미국의 재판제도에서는 소장 답변서로서 주장을 확정한다. 이후 주장을 변경하기 위하여는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경우에 한정된다. 우리나라에서 처럼 주요한 주장을 미루고 있다가 변론의 후반기에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소장 답변서 이후 새로운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이유로 새로운 주장을 하는 것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

필자가 만나본 미국의 법조인들에게 우리나라 재판절차에서 주장을 변론종결시까지 계속하는게 허용된다는 것을 설명하면 모두 놀란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우리나라 재판절차는 긴장감이 없고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소장의 주장내용을 언제든 변경하고 다른 주장을 사실상 무기한 할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바는 (디스커버리의 도입이후에도) 이런 식의 변론이 계속 허용된다면 효율적인 재판진행이 불가능하고 때문에 디스커버리가 정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재판지연의 술책으로 자주 이용되는 즉시항고에 관한 것이다.

최근 있었던 문서제출명령에 대한 즉시항고 (2018스 34) 케이스에서 원심결정부터 대법원판결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다. 미국에서도 중간결정에 관하여 (최종결정이 아님에도) 항소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를 항고 (Interrogatory Appeal ) 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차이점은 모든 항고는 먼저 일심에서 항고를 하는 이유에 관하여 별도의 변론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일심에서 변론을 하기 위하여는 항고를 하여야 하는 법률적 이유가 충분함을 주장 및 변론하여야 하는데 일심 법원의 판단으로 항고를 못하게 할 수 있다. 즉 항고를 한다고 해서 바로 항소심으로 케이스가 올라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즉시항고 신청을 하게 되면 자동으로 항소심으로 케이스가 넘어가게 되어 시간끌기의 중요한 책략으로 이용되고 있고 이 때문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유명한 격언에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 미국에서는 시간을 끌기 위한 지연작전으로 항고를 하는 경우 잘못하면 상대방의 변호사 비용까지 모두 물어주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문서제출명령신청에 대하여 답변을 거부함으로 인하여 즉시항고하는 경우는 미국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디스커버리 과정에서 불복이 있는 경우 과태료가 부과되기 이전에 보호명령신청을 (Motion for Protective Order) 통하여 법률적으로 해당문서의 제출을 거부할 근거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김원근 변호사(사시 30회)
미국 버지니아·메릴랜드·D.C.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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