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변호사 /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김주영 변호사 /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연초부터 증시가 영 맥을 못 추고 있다. 새해 첫날 2,655로 시작했던 코스피 지수는 연일 하락하여 지난 16일 2500선이 붕괴했고 17일에는 2,435까지 내려가서 새해 첫 거래일 종가 대비 무려 8.3%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신년 랠리를 기대했던 투자자들은 실망을 넘어서서 패닉에 빠졌다. 이런 국내 증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 바로 이웃 나라 일본의 증시다. 16년 만에 가장 높은 하락률을 보인 우리 증시와는 달리 일본증시는 약 3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닛케이225지수는 지난 15일 기준 3만 5901.79를 기록했는데 이는 버블경제 시기인 1990년 2월 이후 33년 11개월 만의 최고치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에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추진하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러한 선언이 무색하게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점점 더 심화되는 형국이다.

한국 증시가 죽을 쑤고 있는 원인으로는 실적이나 환율, 지정학적 요인 등 다양한 요인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코스피 지수 종목들의 평균 주가-장부가 비율(PBR)이 만성적으로 1에 못 미치는 현실은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10월 기준 코스피 921개 종목 중 PBR 1 미만의 기업은 531개로 전체 종목의 57.65%를 차지했다. 즉 우리나라 유가증권시장 종목 중 절반 이상이 청산가치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자본시장의 발전은 우리 경제의 발전에 꼭 필요하다. 자본시장은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효율적인 메커니즘을, 투자자들에게는 다양한 투자기회를 제공하며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리스크를 분산시켜 경제의 안정성을 증진한다. 그런데 기업의 주가가 청산가치에도 못 미친다면 자본시장은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우리 기업들의 자금조달비용을 높이고 모험적인 기업들의 출현을 저해하며, 국민들의 재산증식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최근 정부는 증시부양을 위해 연일 파격적인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투자자에 대한 세제지원 강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제도의 확대, 자사주나 배당제도의 개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관하여 최근 영국의 대표적인 연기금 허미스(HERMES)가 발간한 보고서의 내용은 뼈 아플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허미스의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가 작성한 이 보고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수준 이하의 법률과 규정 덕분에 한국 대주주들은 자기 자신에게 많은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 반면에 소수주주들을 부당하게 취급(mistreat)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자본시장을 공정하게 작동시키는 법치주의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대주주들이 회사 이익을 마음대로 가져가는 방법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대주주들이 고율의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고 자신이 지배하는 회사의 주가를 낮게 유지할 유인이 있기에 일부러 배당을 적게 하며, 대신 특수관계인과의 거래를 통해 현금을 빼내어 가며,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사서 소각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거나 우호적인 자에게 매각하여 경영권을 방어하고, 급기야는 주식교환이나, 교부금합병, 소수주주강제매도를 통해 소수주주들로 하여금 대주주에게 주식을 싸게 팔도록 강제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사회가 주주들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담하지 않기에 대주주만 높은 경영권프리미엄을 독차지하고 일반주주들은 오히려 주가하락을 감수해야 하는 지배권 매각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자본시장의 발전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를 위해 세제개혁 등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자본시장에서 공정과 상식이 통할 수 있도록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사들의 전체 주주들에 대한 충실의무를 상법에 명문화할 필요가 있으며, 소액주주들이 헐값에 축출당하지 않도록 주식교환, 합병, 소수주식 강제매수시 소수주주들이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반영하는 공정가격으로 보상받도록 할 필요가 있고, 물적분할 후 중복상장하는 것과 같은 행태가 없어지도록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상법과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의 개정도 필요하지만 회사가 일방적으로 실시한 주식교환으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소수주주의 제소적격이 상실된다고 본 대법원판결이나 1만대 1 주식병합을 통해 소수주주를 축출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본 대법원 판결처럼 소수주주들의 권익침해를 용인하고 경영진을 과보호하는 판례들도 바뀔 필요가 있다.

/김주영 변호사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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