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의연 변호사
△ 임의연 변호사

얼마 전 저는 모 중고거래 플랫폼에 괜찮은 브랜드의 새 구두 한 켤레 판매글을 올렸습니다. 구매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올린 터라 재빠르게 구매 의사를 밝히는 구매자가 있어, 약속을 정하고 바로 만났습니다. 약속 장소에는 은발에 블랙 롱 코트를 입은 멋진 60대 여자분이 서 계셨습니다. 저는 무심결에 그 분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잠시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 분에게 혹시 구두 때문에 기다리고 계시냐고 여쭤봤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나이가 어린 저에게도 깍듯하고 정중하게, 제게 저렴하게 좋은 물건을 구하게 되어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그 분은 한참 그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즐거운 마음으로 헤어졌습니다. 저는 만나기 전, 무심결에 아무래도 당연히 저보다 나이가 적거나 비슷한 나이일 것이라고, 구두의 브랜드나 디자인이, 60대가 신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꼰대’는 은어로 ‘늙은이’나 ‘선생님’을 말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꼰대’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 경험 만을 내세우는 발전 없는 사람으로 느껴진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지표체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960년 6.0명이던 것이 1970년 4.5명에서 급격하게 감소하여 1983년 2.06명이 되더니, 2000년 1.48, 2010년 1.23, 2022년 0.78로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나이에 무엇을 하여야 한다는 생애주기적 기준을 내세우는 것은 변화하는 사회의 인구 구조나 시대문화를 잘 반영한 것일지 의문입니다.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이상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는데,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에 대한 여러 고민이 함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왜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지, 또는 나이가 들고 있는 사회에는 어떻게 진화해야 할지요? 최재천 교수는 생존을 하려면 서로 평화롭게 공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회가, 문화가, 시스템이 변한다면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여 함께 변화하고, 또 서로 평화롭게 공생하여야 생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 어떻게 꼰대가 되지 않을지 생각해보아야 할 순간입니다. 저 또한 변화에 적응해 가면서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이 아닌, 멋진 사람으로서 나이 들고 싶습니다.

/임의연 변호사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