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재 변호사
△최승재 변호사

미국드라마 <굿와이프>를 보면 등장인물중에 여성조사관 ‘칼린다’가 등장한다. 조사관이 종횡무진 사건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구체적인 증거들을 확보하고 사건 당시의 정황을 확인하여 ‘알리샤’가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 알리샤에게 칼린다는 어떤 법률데이타베이스도 제공하지 못하는 살아있는 현장의 날 것을 준다. 그 날 것들이 주는 생동감은 특히 형사법정에서 다른 결과로 드러난다.

로스쿨에서는 법리를 가르치는 것을 주로 한다. 아니 거의 100% 법리만을 가르치고 테스트한다. 그런데 실제 사건을 하는 실무변호사에게 법리를 알고 적용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증거를 통해서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건에서 법리와 증거의 비중을 정확히 나누어서 말할 수는 없으므로 어느 쪽이 더 중요한 것인지는 사건에 따라서 다르다. 그래서 변호사회가 사실을 확인하고 증거로 증명하는 것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이에 대한 권한을 확충하기 위한 제도정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작곡가는 악기를 연주할 필요가 없다고 누가 주장하면 동의할까. 통상 작곡전공을 하는 사람들은 피아노를 같이 한다. 피아노를 본업을 하지 않더라도. 물론 변호사일을 하게 되면 자연히 사실파악의 중요성을 깨닫고 방법론에 대해서 몸으로 배우게 된다. 몸으로 깨지면서 배우는 것이 원래 실무에서의 배움이고, 이런 배움이 전통적인 도제식 전수의 핵심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변호사일에서 증거가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건이 결코 적지 않은데 우리 법조의 전통적인 제도설계는 변호사의 일을 법원이나 검찰의 서류 중심 업무의 연장선으로 이해하고 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전통은 일본의 변호사가 대서사(代書士)와 대언사(代言士)를 합쳐서 생긴 연혁을 보면, 변호사가 무슨 발품을 팔아서 일을 하냐는 생각이 제도화되고 그 제도가 우리나라에 계수된 결과가 아닌가 싶기는 하다. 상급자격사로서의 배리스터(Barrister)나 변호사, 그리고 하급자격사들의 구성은 법리와 증거를 양분시키는 것이다. 배리스터는 정리된 사실관계를 서류를 통해서 확인하고 그 서류에 적힌 사실관계에 법을 적용하고 법정에서 이를 주장하는 그림. 이것이 일본을 통해서 우리가 전수한 법조의 모습이고 법정의 모습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 법조는 서면에 의한 재판, 서면에 의한 변론에 익숙하다. 그런데 24년의 법조경험에 비추어보면 사실 답은 현장에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관계가 첨예하게 다투어지는 형사사건이 아닌 법리가 주를 이룰 것 같은 행정사건에서도 실제 현장을 확인하고 법리를 구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법조의 현장은 강의실에서의 법리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땀내 나는 공간이다.

민사사건의 경우를 본다. 유조선 하자 사건을 한 일이 있다. 이 사건을 하면서 유조선의 하자를 현장에 실제로 가서 감정인과 같이 살펴보았던 경험이 있다. 유조선이 그렇게 높은 배인지 몰랐다. 현장에 간 날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다면 로프로 만들어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던 그날의 아찔한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다. 취사선택된 사진으로 보는 것과 현장에 직접 가서 보면서 쟁점이 되는 공간을 오감(五感)으로 느끼고 보고 오는 것은 그 사건의 이해와 이후 법리구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실적인 경험이 어렵다면 가상공간에서 가상으로 경험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일을 하기에는 우리나라의 법조현실에서 변호사 비용이 미국에 비해서 턱 없이 낮다. 우리는 많은 사건을 저렴한 비용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검사가 수사를 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멀어지게 되어 공소유지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는 것처럼, 변호사가 현장과 유리되어 버리면 법리적인 다툼이 주를 이루는 사건이 아닌 한 섬세한 증거에 의하여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사건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한계에 봉착한다. 그런데 국민들을 많은 경우 사실조사에 비용을 낼 생각이 없다. 그래서 사실조사를 의뢰인이 하고, 그 많은 낮은 비용으로 변호사의 법률서비스를 받는 것이 우리나라의 사법구조로 보인다. 그럼에도 국민은 사실관계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를 때 이런 사실관계에 기초한 법정에서의 결론에 대해서 수긍하지 못하고 불신을 가질 수 있다. 법리에 불복하는 것보다는 사실이 아닌데 다른 사실에 기해서 판단되는 결과에 국민들은 절망한다. 결국 법조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미국드라마를 좋아하는 의뢰인이었을까. 의뢰인 중에서 ‘왜 증거를 직접 모으지 않고 내게 증거를 가져다 달라고만 하냐’. ‘내가 사건을 맡겼으면 알아서 증거도 찾아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요구를 하는 것을 들어본 경험도 있다. 사실관계를 당사자 본인 이상으로 변호사가 어떻게 알 수 있나.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도 ‘셜록홈즈’와 같은 사립탐정이 있어서 증거를 모아서 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국민들이 하는 것이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증거부족으로 분명 의심이 가는 사건에서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는 경우를 보면 변호사 사무실에 이런 조사요원이 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거듭 말하지면 현실적인 문제는 비용이다. 변호사회가 고민하여야 할 문제라고 본다.

필자는 소위 ‘탐정법’이 논란이 되었을 때 독립적으로 탐정업을 둘 것이 아니라 퇴직경찰의 퇴직후 직무로 탐정을 하도록 하려면 변호사의 감독하에 ‘칼린다’와 같은 조사관으로 업무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그래야 변호사의 감독하에 법리전개와 사실증명을 위한 증거수집을 전체적인 사건을 보면서 진행하고 법률을 위반하지 않도록 준법통제도 하고 증거수집도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의뢰인이 비용부담을 하겠다고 하면 변호사에게 일을 맡긴 이상 증거수집까지 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법조의 전체적인 수준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변호사회의 과제 중의 하나라고 본다.

/최승재 변호사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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