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21대 국회 법률안 발의 건수는 2만 5097건(12일 기준)에 달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16대 국회의 법률안 발의 건수가 2507건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회에서 생산하는 법안 규모가 20년만에 90% 넘게 폭증한 셈이다. 이중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의원 입법안으로, 전체 법안의 92.1%인 2만 3135건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발의된 법안 중 68.5%인 1만 7202건의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 급증한 숫자만큼 법안의 품질과 실용성이 정밀하게 담보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사전에 규제영향평가를 하도록 되어 있는 정부 입법안과 달리, 현재 의원안은 별도의 입법영향분석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법률안의 완성도와 정합성 측면에서 정부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반대로 EU 등 해외 주요국들은, 입법 과정에서 전문적인 도움을 주기 위하여 입법영향분석 제도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사례가 많다.

입법영향분석 제도는 법률안이 시행될 경우 예상되는 제반 효과에 대해 객관적·과학적으로 예측·분석해 법률안 심사 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사전에 법률안 시행에 따른 사회경제적 효과를 입체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또 다른 법률과 충돌하거나 중복되지는 않는지 면밀히 살펴볼 수 있어, 체계 정합성에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대폭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입법영향분석 제도가 도입되면 실적 쌓기용 ‘묻지마 발의’나 품질이 떨어지는 부실 입법안 발의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입법영향분석 제도 도입은 여전히 요원하다. 이번 국회에서만 7건이 넘는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번번이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국회의원의 입법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지적 때문이다. 또 자칫하면 입법영향분석 결과에 종속되어, 입법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입법영향분석은 정량화된 데이터를 근거로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적극적으로 조력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양질의 법률안을 만드는 데 기여 하는 구조이므로 실질적으로는 의원들의 입법권을 한층 강화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의원들이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입법영향분석의 실효성에 주목하여 2023년 12월 12일 국회 입법조사처와 부속협정을 맺고 △입법영향분석 제도화 및 고도화를 위한 공동 노력 △입법영향분석 전문성 강화를 위한 협정기관 간 견해 교류 등의 업무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입법영향분석 제도가 도입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입법이 이뤄질 수 있다.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객관적인 영향 분석이 진행되어 예견 가능한 리스크는 줄이고, 긍정적인 효과는 높일 수 있다. 국회가 서둘러 입법영향분석 제도를 도입·시행하여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입법기관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