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견가능한 재판절차 -

김원근 변호사
김원근 변호사

미국의 재판절차에서는 재판이 지연되지 않는다. 재판지연이 일어나지 않는 재판절차의 특징과 관련하여 주장을 소장답변서에서 확정하고 (우리나라는 재판종결시까지 계속 새로운 주장을 할수 있는 방식) 증거를 최종재판에 한꺼번에 제출하는 (우리나라는 증거수시제출 가능) 앞선 글에서 소개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재판진행에 관한 진행표(scheduling order) 에 관한 것이다.

얼마전 재판절자 지연의 해결을 모색해보는 공개토론회에서 주제발표한 내용중 인상적인게 있었는데 유달리 우리나라의 재판절차는 언제 종결되지 예상할수 없이 한 없이 진행된다고 하는 외국의 대기업임원의 말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미국의 재판에서는 소장과 답변서가 제출되면 예외없이 재판의 진행에 관한 일정표를 만들어 판사가 사인해서 양 당사자에게 이를 지키도록 한다. 이와 같은 일정표에 의하면 최종재판일은 언제이고 증거조사 (Discovery) 는 최종재판일의 30일까지는 종결하여야 한다는 내용 및 최종재판일에 제출하여야 하는 증인과 증거서류의 목록은 최종재판일의 20일전에 상대방과 교환하여야 하고 만약 이를 위반하면 해당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하고 있다. 또한 증거조사 (Discovery)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최종재판에서 제출할 증거서류와 증인의 증언 내용을 모두 받아볼수 있기 때문에 최종재판에서 갑자기 나오게 되는 증거는 없다. 이렇게 정해진 최종재판일은 당사자 혹은 변호사가 병으로 인하여 출석하지 못하는 등의 아주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켜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원의 사정 (예 인사이동이나 판사의 사직) 으로 인하여 재판일정이 변경 혹은 지연되는 경우가 있지만 미국의 경우는 일단 일정이 정해지면 법원의 사정으로 인하여 최종재판이 변경되는 일은 절대 없다. 미국의 재판제도에서는 최종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는 법원 자체적으로 풀제로 (pool)운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법원에서도 판사의 인사이동이 있기는 하지만 정해진 재판일정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결국 우리나라 법원의 운영이 국민중심이 아닌 법원 위주로 운영되는 것이라는 의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요소가 되고 있다.

또 하나 미국의 법원에서는 최종재판일에 모든 증거를 모아서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방식으로 재판을 운영하고 (우리나라식으로 처음부터 같은 재판부가 케이스를 배당받아서 처리하는게 아닌) 케이스에 관하여 예단이 없는 판사가 최종재판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풀제로 운영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최종재판을 주재한 판사는 어떤 경우에도 최종선고까지 마침으로써 해당케이스를 마무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보는 변론종결과 선고시의 사정변경으로 변론을 재개하거나 선고가 지연되는 경우 역시 발생하지 않는다.

필자의 판단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위와 같은 미국식의 재판절차를 운영하는게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나라 소송법에도 변론준비절차 및 집중 증거조사제도가 도입되어 있고 증거조사를 마친뒤 집중 증거조사기일에 케이스를 종결할수 있다 (민소법 287조: 법원은 변론준비절차를 정상적으로 마친 경우에는 첫 변론기일을 거친 뒤 바로 변론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민사소송규칙 69조 3항에는 변론준비기일을 지정하고, 기간을 정해 당사자로 하여금 그 기간 내에 준비서면 등의 제출·교환과 증거신청을 하도록 할 수도 있다.

아쉽게도 위와 같은 소송법의 규정들은 거의 사문화되어 있는데 좋은 제도를 만들어 놓고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제부터라도 위 제도를 이용하여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제도를 운영하였으면 한다.

/김원근 변호사(사시 30회)

미국 버지니아·메릴랜드·D.C.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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