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13일 원고 일부승소 판결… "인과관계 추정"

가습기살균제 사건서 '피해구제특별법' 첫 근거법으로 적용

대리인 "특별법, 인과관계 추정 규정 있어 의미 커… 선진적"

폐질환 이어 천식도… 피해자들 민사배상 가능성 증대 전망

사진: 서울중앙지법
사진: 서울중앙지법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후 천식이 악화된 피해자에게 제조·판매사 등이 위자료를 물어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폐 질환이 아닌 천식에 대해서도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등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첫 사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재판장 서보민 부장판사)는 피해자 가족 A씨가 △제조·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납품업체인 한빛화학 △관리 책임자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22가합554637)에서 "옥시와 한빛화학은 공동해 2000만 원을 배상하라"며 13일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다만 정부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4조 1항에 따라 옥시 등은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후 기존 천식 질환이 악화됐고, 가습기 살균제 노출과 천식 사이에 역학적 상관관계가 있음이 확인된다"며 "옥시 등은 다른 원인으로 피해가 발생한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어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천식 질환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판시했다.

특별법 제4조는 가습기 살균제 사업자의 '피해 배상 의무'를, 제5조 1항은 '인과관계의 추정'을 규정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사실 △가습기 살균제 노출 이후 질환이 발생했거나 기존 질환이 악화됐다는 사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사·연구에 따라 제1호의 가습기 살균제 노출과 제2호의 질환 간에 역학적 상관관계가 있음이 확인된 사실이 모두 증명되면 독성 화학물질을 함유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생명 또는 건강상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업자가 다른 원인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경우에는 추정되지 않는다.

A씨의 소송 대리를 맡은 김성주(사법시험 49회) 의료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변호사들은 통상 제조물 책임법이나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근거법으로 제시한다"며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서는 특별법이 가장 직접적인 법이라고 생각해 함께 근거법으로 제시했다"고 했다.

이어 "법원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특별법을 근거법으로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며 "특별법에는 다른 법에는 없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관지 질환인 천식에 대해서 배상 책임이 인정된 첫 사례라는 점도 의미가 크다"며 "다른 천식 피해자들의 소송에서도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6년생인 피해자는 병원에서 2009년 12월 천식 의증을, 2010년 7월 천식을 진단 받았다.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았으나 증상이 악화돼 2014년 2월에는 폐 절제술을 받았다. 피해자는 2009년 4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옥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는 2018년 12월 환경부 산하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로부터 천식으로 피해 인정을 받아 구제 급여를 받기 시작했지만, 옥시 등이 정신적 피해 배상을 하지 않자 A씨는 "6억 원을 배상하라"며 2019년 12월 소송을 냈다.

다만 재판부는 △천식 진단 전, 천식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천식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발병했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점 △피해자의 기저질환이 천식 악화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가 1억 2000만 원가량의 구제 급여를 지급받았고 이후에도 매월 일정액의 급여를 받는 점 △구제 급여 재원을 옥시가 상당 부분 부담한 점 등을 고려해 2000만 원으로 위자료액을 산정했다.

/권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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