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손해액 산정 등 원심 판결 확정

'구리 중개 회사' 세워 수익 내는 펀드 설계

10억원 내고 4억원 구리만 받아 '중개 차질'

"'입고 후 결제 방식' 따라 대금 지급했어야"

△ 사진: 게티이미지 뱅크
△ 사진: 게티이미지 뱅크

물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 매입 대금을 결제하기로 했던 자산운용사가 자재가 제대로 입고됐는지 확인하지 않고 선급금 지급을 승인해 투자자의 원금 손실을 초래했다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의무자의 직업, 사회적 지위에 따라 거래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투자자 A회사 등이 B자산운용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9다224238)에서 "B사는 선급금 지급을 승인하지 않았다면 보전했을 약 6억 원을 A사 등에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30일 확정했다.

B사는 2013년 1월 집합투자기구(펀드)를 만들었다. 이 펀드는 '구리 중개 회사'를 설립해 수익을 내는 구조로 설계됐다. 중개 회사는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는데, B사와 신탁계약을 맺은 모 은행이 이를 인수했다. 중개 회사는 사채 인수금으로 중개업을 하고, 여기서 난 수익으로 사채 원리금을 지급했다. A사 등은 이 펀드에 80억 원을 투자했다.

사채 인수계약에 따르면, B사는 보안업체가 구리 원자재 입고 물량을 확인하고, 회계법인의 지급 요청이 있는 경우에만 매입대금 결제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B사는 같은 해 9월 구리 중개 회사가 공급처에 선급금 10억 원을 지급하는 것을 승인했다. 하지만 공급처는 이에 훨씬 못 미치는 3억 9000만 원 상당의 구리만 보내왔다. 이에 중개 회사로부터 구리를 매입하던 기업이 2014년 1월 구리 중개 회사의 자산과 부채를 포괄적으로 인수했다. 또 구리 중개 회사의 사채 관련 채무도 인수함으로써 구리 중개 사업자가 됐지만, 수익 악화 등으로 2015년 사채 이자를 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A사 등은 2016년 임의경매 절차를 거쳐 약 1억 7400만 원의 펀드 일부 해지 상환금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10억 원 상당의 투자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이에 A사 등은 "B사가 구리 중개 회사의 선급금 지급을 승인하고, 재고 실사를 소홀히 하는 등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했다"며 소송을 냈다.

원심은 "B사가 펀드를 운용하면서 '입고 후 결제 방식'에 따라 구리 대금을 지급하도록 자금을 관리할 의무가 있음에도 선급금 지급을 승인해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했다"면서도 "A사 등이 주장하는 사정이나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B사가 구리 중개 사업자 변경 과정에서 재고 자산 실사 등을 게을리해 선관주의 의무 또는 충실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펀드 운용 과정에서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해 투자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액은 투자원금 미회수금 중 해당 선관주의의무 위반행위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부분"이라며 "B사가 선급금 지급을 승인하지 않았다면 약 6억 원 상당의 금원이 수입 계좌에 계속 보유됐을 것이므로 이 6억 원 상당이 선급금 사고에 대한 B사의 주의의무 위반과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사 등이 환매청구권을 조기 행사해 투자원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거나, 구리 가격의 하락이 새 구리 중개 회사의 사업 수익에 주된 악영향을 미쳤다는 사정은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책임 제한 사유로 고려될 요소"라면서도 "이를 B사의 선관주의의무 위반행위와 A사 등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단절하는 사유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맞다고 봤다. 

/권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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