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용근 변호사
손용근 변호사

강남역 사거리는 아주 큰 길이 교차하는 사거리이다. 왕복 8차선인 테헤란로와 강남대로가 교차하고 있다. 하루 종일 차량과 인파가 복작거린다. 필자가 근무하는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수 많은 차량과 인파가 넘쳐 나는 것을 본다. 그 사거리 지하에는 지하철 2호선 순환선과 신분당선이 지나고 있다. 강남역은 하루의 이용승객이 전국에서 최고인 역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거기에 있는 지하상가 통로도 미로처럼 얽혀져 있다. 출입구번호를 기준 삼지 아니하면 가끔은 길을 잃을 정도이다. 한마디로 인산인해의 거리이다.

그 사거리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그냥 일반 현수막이 아니고 규모가 큰 현수막이다. 현수막에 쓰여 있는 글귀 중 눈에 단박 들어오는 것이 ‘사법부사망’이다. 무슨 이유로 사법부가 사망했다는 현수막을 내걸었을까? 다른 현수막을 보면 바로 짐작이 간다. 곁에 있는 다른 현수막에는 정치판사 유00 (실명이 적혀 있으나, 적지 않는다) 이라는 큰 글씨와 함께 작은 글씨로 ‘정치하냐?ㅋㅋㅋ’, ‘공천하나 받게?’라는 내용도 적혀 있다. 심지어는 유판사의 얼굴이 그대로 프린트 되어 있기까지 하다. 왜 이렇게 매우 과도한 내용의 현수막까지 걸리게 되었을까? 짐작컨대, 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사건의 담당판사였던 유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이에 대한 항의 이상의 분노를 정치적으로 표현하려고 그런 것 같다.

이 현수막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다닌지 상당기간이 지났다. 법률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국민들이 정말로 유00판사가 정치판사인 것으로 믿게되고 그에 더하여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사망하였다고 생각하지나 않을까? 여러 가지 이유로 매우 염려가 된다. 이러한 염려에 더하여 오랫동안 법률가로 살아온 필자로서는 도저히 그 기재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

그리하여 오늘은 그 현수막에 대한 글을 쓴다. 주제를 넘어가는 과도한 느낌이 있으나, 강행하는 입장, 이해 바라겠다. 참고로 적자면 필자는 더 이상 정치적 진보나 보수에 빠지기 어려운 나이든 변호사이다. 법률가로서 ‘헌법과 법치주의’를 사회적 평화수단으로 믿고 있다. 아울러 이것이 홉스(Thomas Hobbes)가 말했던‘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해결하는 경험주의적 최선의 방책이라고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선한 것과 악한 것이 혼재되어 있는 본성을 갖는 인간들의 집단적 감성과 재화에 대한 무한의 욕정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완전한 평화적 해결방책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불완전한 방책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한 현실적 방책을 찾을 수 없기에 ‘최선의 사회적 방책’이 ‘헌법과 법치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 현수막의 내용이 왜 헌법과 법치주의에 절대적으로 어그러지는지 부족한 필재에 의지하여 설파해 보려고 한다.

사실 야당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의 기각은 의외였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난하는 글도 여럿이다. 심지어는 여과 없는 분노에 억측근거를 끼워 놓은 글도 있다. ‘이재명 선거법위반 사건을 뒤집어 주고......화천대유의 고문까지 지낸 권00(역시 실명이 있으나, 적지 않는다)의 대전고 후배가 유00판사’라는 글은 억측에 근거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이 차이가 많은 재야변호사가 현직 영장담당 판사의 고등학교 선배라는 이유로 영장기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나? 그런 상상을 연결시키는 것, 이런 과장된 추론은 악의의 정도가 상상력 이상임을 알아야 한다. 영장기각 사유에 관하여 법률가들의 비판도 상당히 있었다.

Y변호사의 글도 그중 하나로 생각된다. 정말 Y변호사가 쓴 글인가 의심도 했었다. ‘정치거물 앞의 무력한 판사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그의 글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대통령 후보였던 이재명 후보의 거짓말이 대법원의 심판대에 올랐었다. 정치생명이 걸린 문제였다. 대법원에서 그를 위한 독특한 이론이 탄생했다. 적극적인 거짓말이 아니고 소극적인 거짓말이면 괜찮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나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사건을 담당했던 대법관은 그후 대장동 개발 사건을 지원하는 오십억 클럽의 일원이 됐다.” 이 부분은 앞의 권00에 대한 언급으로 생각된다.

이어서 Y변호사는 적었다. “사십년 가까이 해 온 변호사의 시각에서 보면 그 영장기각의 결정문은 어떻게 하면 구덩이에 빠진 여우가 살아나올 수 있는지 그 법기술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잘못했어도 끝까지 부인하며 버티라는 암시가 들어있는 것 같다. …정치권의 거물이니까 이 순간만 지나면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결정문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글을 읽고 나니 몇 가지 질문이 대번 떠올랐다. 제일 먼저 “영장기각이 무죄판결인가요?”-이런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영장이 기각되었거나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았음에도 실형이 선고된 사건도 많이 있는 것이 재판현실이지 않는가? 세상의 주목을 많이 받았던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들 사건’이나, ‘윤미향의원의 사건’도 그런 사건이 아니었는지? 불구속 재판이었으나, 결국 그 사건들은 실형이 선고되었다.

영장기각 = 무죄판결의 인식이 기저에 있는 주장들은 이런 맹점을 지적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무죄추정의 원칙(presumption of innocence: 헌법 제27조 제4항)이나 불구속 수사의 원칙(형사소송법 제198조 제1항)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모두 오랜 형사사법의 경험과 헌법적 역사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한 원칙에 비추어 보면 영장기각은 오히려 원칙적 재판인 불구속상태의 재판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또 이재명 대표는 영장기각 이후 다시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하나더 받아야 할 처지가 되지 않았나? 아주 엄밀한 법적 관점에서만 말하자면, 영장청구인지, 영장신청인지부터 논란해야 한다. 아울러 정확히 지적하자면, Y변호사의 글은 증거법상 ‘증명’과 ‘소명’의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였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영장기각=무죄라는 인식에는 헌법정신을 탐구해온 법률가의 인식을 판단기준 삼아 필자부터 단호히 반대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야당대표에 대한 영장기각으로 사법부가 사망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사실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 논리나 추리의 대단한 비약이고 위헌이며 위법인 인식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사법부가 국민의 기대에 전부 부합하는 정도의 완전체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독재시대를 통과하면서 정의와 인권 수호에 기여하였던 빛나는 전통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능적 책임수행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판단을 필자는 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치적 편향이나 사건적체 등의 문제가 있다고 하나, 묵묵히 자기 본분을 다하는 판사들이 대부분일 것으로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나라의 사법부는 건전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오늘까지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모두에게 알려 주고 싶다.

여기 쯤에서 사법부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사례 하나를 꼭 지적하고 싶다. 근래 윤대통령의 장모에 대한 징역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2심에서 법정구속을 당하였고 형을 그대로 살게 된 것이다. 사법부가 사망하였으면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장모는 그 신분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2심에서 실형과 함께 법정구속을 당하였고,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법부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징표 아닌가?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본 보기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운동가로 오래 살아오신 어떤 목사님이 “대통령 장모님이 징역살게 되었다니 뿌듯하다”라는 글을 쓰지 않았을까? 그 글의 일부를 옮겨 본다.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다. 대통령의 장모님이 대법원에서 징역1년이 확정되었다. 이 소식을 접하고 야당은 예상대로 대통령은 사과하라고 난리법석이다. 특검까지도 하겠단다. 그런데 내 생각은 정 반대다. 이 뉴스를 북한 주민들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김정은의 장모가 감옥가는 일이 있을 수 있나? 북한 주민들은 이 세상에 이런 나라도 있는가 하며 크게 놀랄 것이다. 그리고 법이 만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부러울까?”, “지방법원에서 대법원까지 모든 판사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판결해 준 것도 너무 고맙다. 대통령실이 대통령 장모님의 징역형 언도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이라며 일체 언급하지 않는 모습도 너무 좋았다. 그래야 한다. 대통령 장모에 대한 징역형 언도로 대한민국은 어떤 특권도 허용되지 않는 법치국가임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사법부 사망’이란 이 현수막, 법치주의와 헌법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철거되어야 한다. 상당기간 설치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 야당대표에 대한 영장기각을 비난하고자 하는 정치적 선전은 목적 이상의 각인효과가 이미 달성되었다고 본다. 가능하다면 설치를 요청한 쪽에서 자진철거를 하였으면 한다. 그래야만 설치한 쪽이 그나마 일정한 사회적 명분과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지 않을까? 특히 판사가 아무리 공인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명예를 그렇게 공공적으로 무참하게 훼손하는 것은 인권의 측면에서 정말로 가혹한 일이다. 이 점은 인간적으로도 호소 드린다.

사무실에서 창밖을 보니 오늘도 그 현수막이 그대로 보인다. 법률가인 나는 오늘도 불편하다. 법치주의자의 필연적 운명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말씀드린다. “극한 표현의 그 현수막, 이제 그만 내리십시오. 자진철거를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 편집자 주 : 이 글은 현수막의 철거 전에 완성된 글입니다. 그대로 싣는다는 점을 적어 둡니다.

/손용근 변호사
前 사법연수원장·법학박사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