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 변호사
김예지 변호사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영웅이자 왕으로 미노타우루스를 죽이고 미궁에서 탈출하는 인물이다. 테세우스의 배 역설은 유명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코스에 의해 언급된 사고실험이다. 이 역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루스를 죽이고 아테네로 자신의 배를 타고 돌아온다. 그러나 워낙 긴 여정이라 배가 오랜 항해 과정에서 부품들이 하나씩 교체된다. 종국에 원래 존재하던 모든 부분들이 새로운 부품으로 대체되었을 때, 그 배가 여전히 기존의 '테세우스의 배'라고 불릴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여러가지로 중요한 철학적 문제를 다루는데,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할 때에도 자주 언급된다. 예를 들어 인체공학이 고도로 발달하여 인간의 장기와 몸을 기계로 차츰 대체한다면 언제까지 인간의 정체성이 존재한다고 인정해 줘야 하는가 등의 흥미로운 질문을 논의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생성형 챗봇의 기능이 그야말로 놀랍게 발전해 나가면서 텍스트 뿐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까지 생성형 AI의 창작 및 문서처리 능력은 숙련된 인간의 그것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인터넷에 업로드 되는 사진, 그림, 문서 등 모든 창작물에 대해 원작자가 인간인지 AI인지 이제 인간은 구별할 수 없다. 이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업을 대체할 수 있는지 따위의 질문은 식상하고 쓸모없는 질문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제는 인간이 인공지능과 어떻게 함께 일해야 하는 것인가, 가 유효한 질문일 것이다. 사내변호사는 그렇다면 이런 인공지능과 무슨 상관인가? 위에 언급한 테세우스의 배의 역설을 적용하자면 이제 사내변호사는 회사와 또는 법무팀 내에서 어디까지를 허용할 것인지의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즉 회사의 지원자가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한다면, 직원이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코딩이나 메일을 100% 작성한다면, 회사의 마케터가 생성형 인공지능으로만 마케팅 자료를 만든다면, 회사의 아트팀 직원이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이미지를 회사의 자료에 사용한다면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법무팀은 이러한 각 부서의 문의에 대해 법적으로 답변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또는 법무팀 내부적으로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을것인가 부터 시작해 회사가 업 위탁하는 수탁업체에서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납품하는 것에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더 나아가 회사의 인공지능에 대한 윤리적은 입장은 무엇인가? 이를 ESG와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물론 위 질문들은 사내변호사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종류의 것들은 아니다. 대부분 회사의 정책결정자들과 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질문들이다. 그러나 법무팀이라면 위 질문들에 대한 고민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이에 대해 준비하고 있지 않다면 먼저 회사 내부의 인공지능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테세우스의 배가 결국 테세우스의 소유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법적인 선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고 변호사라면 그 선을 판단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생성인공지능의 시대에 사내변호사는 회사가 그 선을 긋는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

/김예지 변호사
한국오라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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