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과정에서 아이폰 성능을 고의로 저하시켰다는 의혹을 받는 애플이 항소심에서 일부 패소했다. 

6일 서울고법은 아이폰 사용자들이 애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애플은 원고들에게 7만 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했다. 앞서 애플의 손을 들어줬던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이날 재판부는 설명자료를 배포하며 "원고들로서는 운영체제인 iOS 업데이트가 일반적으로 아이폰의 성능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며 "업데이트가 아이폰에 탑재된 프로세서 칩의 최대 성능을 제한하거나 이로 인해 앱 실행이 지연되는 등의 현상이 수반될 것이라고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연한 지적이다. 업데이트의 사전적 정의는 '기존의 정보를 최신 정보로 바꾼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러 기능을 떨어뜨리는 업데이트는 마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개념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차라리 '다운데이트'라고 했으면 모를까, 업데이트를 해준다며 되레 성능을 저하시켰다면 이는 소비자의 무지와 무관심을 이용한 궤변에 가깝다. 

과학 기술이 점차 고도화되면서 첨단 기술 분야는 일반 소비자의 보편적 인식과 이해 범위를 한참 벗어나고 있다. 정보와 기술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진 기업들은, 이러한 초(超)격차를 이용해 각종 법적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만일 불리한 구간으로 진입하면 복잡한 수식과 방대한 분석 의견서를 밀어넣고 그 뒤로 숨어버린다. "해볼테면 해봐라"는 식이다. 이래서는 사법정의를 바로세우기 어렵다. 

이번 소송에서 소비자들을 대리한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선고 직후 "거대 기업이 증거를 독점하면서 소송에서 우위를 점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재판 시작 전 당사자들이 보유한 관련 증거를 서로 공개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활용하면 정보의 치우침 현상이 줄어들어 개인과 소비자도 대기업을 상대로 공정한 승부를 펼칠 기회를 얻게 된다. 현재 국회에서도 디스커버리 도입을 골자로 하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더이상 디스커버리 도입을 미뤄서는 안 된다.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 발생한 초격차는 현재의 사법 테두리 안에서 해소할 수 없다. 간극이 점점 벌어질수록 기술지배 현상이 강화돼 소비자들은 아무리 큰 피해를 입어도 정당한 보상을 받기 어려워진다. 적어도 공정한 승부를 벌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제도적 뒷받침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법조신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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