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재 변호사
최승재 변호사

이번에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새내기 법조인이 보고 싶다는 연락을 했다. 주중에는 바빠서 주말에 식사를 같이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앞으로 변호사로서의 커리어에 대해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사내변호사로서 삼성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로펌변호사로서 김·장법률사무소에서 일을 했고,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로스쿨 교수로서 경력을 가지고 있고 개인법률사무소도 경영을 해 본 다양한 법조계에서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변호사로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길래 질문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쓴 ‘변호사전’이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하였다.

‘변호사전’은 내가 법률신문에 50회 분량(실제로는 몇 회 덜 게재되었다)으로 연재하였던 원고들과 별도로 작성한 원고들은 모아서 10년 쯤 전에 쓴 책이다. 이 책에 나는 사회적 신뢰 자본으로서의 변호사의 가치를 포함하여 변호사가 왜 프라이드를 가지고 일해야 하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직역인지에 대해서 적었다.

그러다가 변호사연수 중 어떤 일을 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다고 답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새내기 법조인에게 변호사에게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고 하면서 내가 경험한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 해주었다. 헌법재판소에서 국선대리인으로 한 일이었다.

어느 날 헌법재판소의 국선대리인지정결정을 받았다. 헌법재판소 국선대리인으로 선정되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해서 국선대리를 하게 된다. 사건은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변호사의 첫 일은 기록을 검토하고 의뢰인을 만나서 기록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일이다. 그래서 기록을 보고 의뢰인과의 미팅을 잡았다. 사무실에 찾아온 분은 할머니 한 분이었다. 할머니는 폐지 등을 주워서 이를 모아 판매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날도 할머니는 어김없이 리어카(rear car)를 끌고 폐지를 모아서 판매하기 위해서 동네를 돌았다. 날은 덥고, 폐지를 끄는 할머니의 리어카는 무거워져 갔다. 그러다가 까만 봉지에 담긴 무언가가 누군가의 집 앞에 버려진 것을 발견하였고, 할머니는 봉지를 리어카에 담았다. 그리고 리어카를 끌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늘 폐지 등을 모아서 분류하는 동네의 공터로 향했다. 모아온 폐지 등을 내려놓고 팔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류를 하던 중 누군가가 두리번 거리며 할머니에게 왔다. 할머니를 보더니 검정 봉지에 담긴 것을 확인하고는 돌려달라고 했고, 할머니는 돌려주었다. 아주머니는 실수로 버리면 안되는 것을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왔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경찰은 범죄신고가 들어왔다고 할머니를 조사하고는 점유이탈물횡령죄로 기소의견을 검찰에 보냈다. 담당검사는 할머니의 사정을 감안해서 기소유예를 했다. 할머니는 검사의 이 기소유예에 대해 헌법소원신청을 했다.

처음 사건기록을 보고 검사의 결정이 위헌이라고 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성요건해당성은 있고, 할머니가 초범이고 고령이고 폐지수집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경제적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기소유예를 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고령이고 공무원을 할 것도 아니고 기소유예를 한다고 해도 받게 되는 당장의 불이익은 크지 않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였다. 통상 말하는 객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자신은 평생 어렵게는 살았지만 범죄를 저지르고 남의 것을 훔치고 살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기소유예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호소하였다.

변호사에게 무서운 것은 단정이다. 물론 법조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하면 나름의 감이 생긴다. 그렇지만 변호사가 사건을 단정할 것은 아니다. 할머니는 자신은 검정 봉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랐고, 늘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버린 것을 주워서 공터에서 분류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돌려달라고 해서 돌려주었을 뿐인데 벌을 받는 것이 억울하다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그것만으로 기소유예 처분이 위헌이라고 보기는 부족했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당일의 상황을 재현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실의 대형모니터에 거리뷰를 띄우고 당일의 일정을 정리해서 이동한 곳들을 리어카를 끌고 한바퀴를 도는 시간을 고려하면 할머니가 검은 봉지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고의가 있으려면 인식과 의욕이 있어야 할 것인데, 인식이 없다면 범죄로 나아가려고 하는 의욕이 있을 수 없다.

할머니의 살아온 태도에 대한 성격증거(character evidence)와 반복적으로 해온 일상에서의 행동패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무죄로 보아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감사하게도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위헌으로 판단을 했다. 할머니에게 중요한 사건의 결론은 할머니의 나머지 삶에 긍정적인 시그널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사건을 보면 의뢰인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건은 없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할머니의 헌법소원은 불필요한 행동을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할머니는 자신의 삶에서 정직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지킨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법조인으로 일해야 할까. 새내기 법조인에게 전해준 이 일화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사건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으면 한다.

/최승재 변호사
법무법인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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