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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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지방선거 당시 저녁 자리에서 총괄실장이 팀 막내에게 처음으로 직접 경험해 본 선거의 중간 소회를 물었을 때 그가 “실장님 루소의 말이 참 맞습니다. 시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그 외에는 노예가 된다는”이라 답해 이르게 마쳤던 날을 기억한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대의제가 결코 민주주의와 어우러질 수 없다 지적한다. 그는 단절된 개인의 의사 표시인 투표는 결코 시민을 대표할 수 없다고 짚으면서, 민주주의와 대의제는 완전히 다른 개념임을 주장한다. 시민은 투표로서 자기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제도만을 위해 시민이기를 포기한 것이며, 이로 인해 대표됐어야 할 실제 시민과 대표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격차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대의제의 대안으로 추첨제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추첨제가 아닌 선출 대의제가 대표 선출 제도로 선택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은 자주 ‘남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남는다는 것은 때로는 변하지 않음을 의미하지만 그렇지 않은 용례로도 종종 사용되기에, 그 단어만으로는 상태의 변화가 있었는지를 판단하기에는 참 모호하다. 그렇다면 ‘변화’는 그 뜻이 명확할까. 물리학에서 엔트로피는 자발적인(힘이 개입되지 않은) 과정에서는 항상 증가하고, 가역적인 과정에서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열역학 제2 법칙이다. 물리학의 세계에선 가만히 있으면 변하고, 가만히 있지 않으면 변화하지 않는다.

다시 선거제 논의로 돌아가자. 매 선거마다 화두가 되는 ‘변화’라는 단어를 모두가 각각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자못 자명하다. 누구는 1이 2가 되는 것을 변화라 쓰겠지만, 누구는 1이 1로써 남아있는 것을 변화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모두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의 단어를 모두 다르게 해석하면서도 같은 술어를 사용한 문장에는 모두 동의하는 현상에서, 역설적이게도 대의제의 역할을 엿볼 수 있다. 대의제야말로 우리가 ‘제대로’ 불화(不和)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첨제가 공정한 대표 선택의 결과에 집중한다면, 선출제는 시민과 대표 사이의 불화의 정도를 가늠해 보고 다음 4년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투표의 결과로 4년간 선출된 자와 선출한 자는 지속적인 불화를 경험했다. 그 안에서 두 당사자는 간극을 좁히고자 했을 것이며, 얼마나 좁혀졌는지를 확인하는 날이 돌아오고 있다. 누구는 남고 어떤 아젠다는 남지 못할 것이며, 대부분은 변화하고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국정감사를 마치고 선거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는 강박에 한 달간 16개의 점심 약속과 20개의 저녁 약속을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자주 들었던 질문에 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번 글을 썼다. 어느 정도 답이 되었다면 나도 그들에게 묻고 싶다. 선거는 과정일까, 결과일까.

/국고은 변호사
국회의원실 선임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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