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연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인터뷰

"증거개시(開示) 제도, '증거 캐기'로 해석하면 직관적"

기업 비밀 유출 우려에 "민감 정보 비공개 장치 갖춰"

"증언녹취 절차에 법원공무원 참여하면 경직될 수도"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은 판사의 과중한 부담도 낮춰"

"변호사 '증거 캐기' 역량 필수 역량 될 것… 대비해야"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할 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증거를 확보하는 일입니다. 특히 환경·의료·제조물 등 전문 분야에서는 증거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면 이같은 정보 편재(偏在) 현상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국회에서 '디스커버리 전도사'로 불리는 류호연(변호사시험 1회) 입법조사관의 말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국회의원이 요청하는 입법 관련 사항을 조사·연구해 회답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조사관들은 고유한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으며, 입법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법제사법팀 소속인 류 조사관은 변호사로서의 장기를 살려 다양한 법 분야에 대한 리서치를 통해 입법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조력하고 있다.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는 입법 과정에서 전체적인 법체계의 정합성을 고려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진다"며 "정책 효과 뿐 아니라 입법의 합헌성과 위임 입법의 타당성, 법논리적 체계의 완결성을 고루 살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류 조사관은 강조했다.  

최근 그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다. 법원의 개입 없이 당사자 간 소송 관련 정보를 서로 공개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경하지만 커먼로(common law) 중심의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달 13일에는 국회입법조사처와 대한변협이 공동주최한 민사소송 선진화 방안 세미나에서 지정 토론자로 나서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디스커버리 제도를 '증거개시(開示)'라고 번역 하는데, 사실 '증거 캐기'로 부르는 게 더 직관적입니다. 즉, 디스커버리 제도는 법원의 개입 없이 당사자와 변호사가 서로의 증거를 '캐는' 절차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대륙법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 사법시스템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디스커버리 제도를 구성하는 △준비회합 △의무공개 △증언녹취 △자백요구 등은 공판 전 절차와 공판 절차가 엄밀하게 구분돼 있는 미국 소송에서나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류 조사관은 "변론 전 절차와 변론절차의 구분이 엄밀하게 나뉘어 있지 않아서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어렵다는 주장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발언"이라며 "변론 전 절차와 변론절차의 구분은 디스커버리 제도의 결과로서 나타난 현상이며, 우리나라도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당사자가 주도하는 변론 전 절차와 판사가 주재하는 변론절차의 구분이 확실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비밀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당사자의 증거수집은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관련성과 비례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데다, 민감 정보에 대한 비공개 장치도 갖추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현재 국내에서는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다. 2021년 대법원은 자체적으로 '디스커버리 연구반'을 꾸렸으며, 지난해 10월 제23차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 등 도입 검토' 안건을 논의하고 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지난 4월 국회에서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를 충분히 고민해 볼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다만 류 조사관은 법원의 디스커버리 연구반 보고서와 관련해 일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소송 취하 촉진 등 디스커버리 제도의 장점을 온전히 살리지 못 했다는 지적이다. 법원은 진실의무·증언녹취·문서제출명령 등은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소제기 전 증거조사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디스커버리 연구반이 제시한 증언녹취 절차는 법원공무원이 참관합니다. 증언녹취(deposition) 제도는 본래 당사자들이 법원 외 장소에서 증인신문 등을 판사의 개입 없이 하는 것입니다. 증언녹취 절차에는 당사자와 변호사만 참가합니다. 무제한의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실한 증언이나 증거의 현출(顯出)이 발생해 화해나 취하를 촉진시키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법원공무원이 참관한다면 판사 앞에서의 증인신문과 같이 경직된 분위기가 형성되고, 정제된 발언만 나올 수 있어 실체적 진실 발견과 멀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류 조사관은 디스커버리 제도가 판사의 과중한 부담을 덜어주고, 양질의 '좋은 재판'을 가능하게 만드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민사소송은 당사자주의가 원칙이지만, 실제로는 직권주의적 재판이 자주 이뤄집니다. 이는 법관의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굳이 통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판사의 사건 수와 업무량은 충분히 과중한데, 디스커버리 연구반의 개정안은 사건 수 감소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디스커버리 단계에서 화해나 취하로 사건 수를 조절하는 것이 양질의 재판을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지난 9월 입법조사처 조사관들은 미국으로 출장을 떠나 현직 판사와 변호사, 법학교수 등을 직접 면담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류 조사관은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디스커버리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판사와 변호사 간 협조와 신뢰가 반드시 구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디스커버리 절차에서도 판사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습니다. 미국 판사와 변호사들은 디스커버리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습니다. 어떤 판사는 귀찮을 정도로 변호사들이 판사에게 연락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연방 법원 판사든 주(州) 법원 판사든 모두 디스커버리 절차를 주도하는 변호사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결과 역시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디스커버리 제도의 성패(成敗)는 판사와 변호사의 협조와 신뢰에 달려있습니다. 판사가 변호사를 신뢰하며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제도 도입과 정착이 순조롭게 이어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류 조사관은 변호사들이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에 대비해 관련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남겼다.

"디스커버리 절차를 통해 당사자주의가 실현되면 변호사에게 정당한 역할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변호사의 이른바 '증거캐기' 능력은 매우 중요한 역량이 될 것이고, 변론 외 영역에서도 의뢰인의 충실한 대리인이 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 디스커버리 연구반의 민사소송법 개정안은 비록 미흡한 면이 있지만, 증언녹취 제도 도입이라는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빠른 시일 내에 입법 성과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오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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