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현 변호사
한주현 변호사

뉴스를 보면 사회가 지옥 같다. 잔혹한 범죄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댓글창은 더 가관이다. 혐오가 범벅인 댓글이 주르륵 달려있다. 묻지마 칼부림 사건까지 종종 발생하는 지경이니 이런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

나는 임신 초기에 이런 두려움이 매우 컸다. 임산부라는 이유로 대중교통에서 공격과 조롱을 당했다는 이야기, 아기는 민폐를 끼치는 존재이니 밖에 데리고 나오면 안 된다는 식의 이야기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기에 임신과 육아기간을 무탈히 지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현실은 우려와는 달랐다. 임산부 배지를 착용하고 다닌 이후에는 자주 대중교통에서 자리를 양보받았다. 양보해준 이는 남녀노소를 가릴 수 없었다. 만삭일 때 카페에서 물을 쏟아서 닦으려고 일어났다가 종업원이 달려와서 신속히 닦아주며 “몸 숙이면 힘드시잖아요”라고 다정히 말해주었던 것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런 경험들은 출산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아기 부모라면 누구나 아기와 외출했을 때 어디선가 번개처럼 나타나 아기와 눈 맞추며 웃어주시는 중년의 어르신들을 만나봤을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기를 싫어한다는데(사실 내가 그랬다. 나 같은 사람 만날까 무서운 게 진실이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아기와 함께 학생무리를 지나가며 들은 건 “아기 귀엽다!”라는 예쁜 말뿐이었다(그렇게 말하는 학생들이 더 귀여웠다).

우리는 가장 강한 혐오의 목소리, 가장 심각한 범죄 사례들만을 자꾸 접하다 보니 서로서로 경계를 늦추지 못하는 고슴도치들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누군가는 ‘내 존재 자체가 민폐가 되어 욕을 먹지 않을까’ 걱정하고 다른 누군가는 ‘저들이 과도한 권리를 요구하며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하며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다정하다. 긴장 와중에 누군가가 먼저 해사하게 웃으면 바로 풀어지는 그런 허약한 경계를 하고 있을 뿐이다. 현실은 다정하다.

/한주현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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