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헌재 국선대리인이 전하는 글-

김철 변호사
김철 변호사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지는 꽤 됐다. 게을러서 일수도 있겠지만, 주제넘는 것은 아닌지 자문(自問)도 해보았다. 선배님도 가만히 계시는데 후배인 사람이 그것도 헌법재판을 말하는 글이라니...

필자는 올해 헌법재판소 국선대리인에 운좋게 선정되었다. 국선대리인 예정자 명부 등재가 좀 더 맞는 표현이긴 하다. 국선대리인 선정은 구체화된 사건이 있어야 가능한 개념이기 때문이다(헌법재판소 제70조 및 헌법재판소국선대리인의 선임 및 보수에 관한 규칙 제7조 제5항 등 참조). 매년 10월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국선대리인 신청을 받는다. 매번 지원했건만, 2023년 되어서야 처음 그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 사건을 수행하는 변호사는 그리 많지 않다. 돈벌이가 안 된다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겠지만(아니라고 단정짓기는 쉽지 않다), 구체적인 사건이 아닌 법령의 관념적인 위헌논쟁이 많아 사건당사자의 니즈(needs)를 맞춰주기는 어렵다는 이유가 클 것 같다. 사건 의뢰인 중에서도 변호사에게 먼저 “헌법재판 해보자”고 요청한 경우는 잘 못 봤다.

헌법은 무엇이고, 헌법재판은 무엇일까. 전자는 ‘사랑은 무엇일까’ 정도로 어려운 질문이지만, 후자에 대한 답은 해볼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국선대리인에게 「헌법재판실무제요」책을 나눠 준다(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 3쪽을 보면, 헌법재판을 이렇게 정의한다. “헌법재판은 헌법적 분쟁 또는 헌법 침해의 문제를 헌법규범을 기준으로 유권적으로 심판함으로써 헌법질서를 유지·수호하는 국가작용을 일컫는다. (중략) 특히 헌법재판제도는 국가권력의 기본권 기속과 국가권력 행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능적 권력통제의 핵심적인 수단으로 이해되면서 권력분립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헌법규범은 대한민국 헌법을 비롯한 헌법질서를 일컫는다. 헌법적 분쟁 또는 헌법 침해의 문제는 법령의 관념적인 위헌논쟁에 그치지 않는다. 헌법재판의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헌법재판소법 제67, 75조). 대통령, 국무위원의 탄핵심판을 비롯하여 기소유예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은 당사자 개개인의 법률관계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형성력을 가지고 사건관계인을 구속하는 효력을 가진다. 주문(主文)만 봐도, “...를 파면한다. ...처분을 취소한다”고 나온다. 헌법재판은 법률적 쟁송에서 가장 핵심을 관할하는 재판으로 정의내릴 수 있지, 구체적이냐 추상적이냐를 말하는 것은 헌법재판의 본질을 오해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정독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 개개 사건별로 헌법재판관의 치열한 논쟁이 묻어난다. 다들 아는 유명한 사건도 있겠지만, 과거 수행했던 사건을 떠올려 본다.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사건을 여러건 수임했던 터라, 관련 헌법적 쟁점을 많이 다뤄봤다. 사회복무요원이 선거운동을 할 경우 경고처분 및 연장복무를 하게 하는 병역법 제33조 제2항 제2호 중 공직선거법 제58조 제1항의 선거운동에 관한 부분이 사회복무요원인 청구인의 선거운동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를 판단한 사건이 있다(헌재 2016. 10. 27. 2016헌마252). 6:3으로 합헌 결정이 나왔지만, 지금도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안창호, 재판관 강일원의 반대의견이 옳다고 생각한다.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당해 선거운동을 허용함으로 인하여 선거의 공정성이 훼손될 위험이 인정되어야 한다. 사회복무요원은 행정업무 및 사회서비스업무 등을 ‘지원’하는 단순하고 기능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직무집행에 있어 재량을 갖는 경우가 드물고, 직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에 접근할 기회도 매우 적으므로, 자신의 지위와 권한을 선거운동을 위하여 남용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중략) 따라서 사회복무요원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일부 허용하더라도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일괄적으로 이들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것은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 보충역의 일종인 전문연구요원 등의 경우에는 선거운동이 허용되는데, 사회복지시설에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도 민간 영역에서 근무하고 직무의 성질상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모든 사회복무요원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것은 형평에 반한다. (중략)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사회복무요원의 선거운동의 자유를 침해한다.”

소수의견이 계속 소수의견일 수 없고, 법정의견이 언제나 법정의견일 수는 없다. 헌법재판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생각의 다름을 인정한다. 과거 결정례도 중요하지만, 헌법질서 및 기본권에 대한 인식, 인문학적 소양 그리고 폭넓은 사고 없이는 헌법재판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헌법재판관 사무실에 법률서적보다는 인문, 사회,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이 많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헌법재판은 법률적 쟁송의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다. 앞선 2016헌마252 결정도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다. 그것이 헌법재판이다.

며칠 전 국선대리인으로 온 사건의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재밌는 사건이다. 내용을 말할 수는 없지만, 청구인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읽을 수 있었다. 최근 다녀온 국선대리인 연수 중 우수 국선대리인 사례 교육 시간이 생각난다. 해외 입법례, 여론조사 등 풍부한 자료 및 탁월한 논증방식은 국선이냐 사선이냐를 무의미하게 한다. 헌법과 헌법재판을 보는 시각 그리고 헌법재판에서 법률가의 생각과 의지가 중요할 뿐이다.

국선대리인이 되기 전에도, 민사, 상사. 형사, 행정재판에서 헌법 이론을 다양하게 활용해왔다. 요행히 받아들여져 무죄, 대법원 파기환송도 다수 이끌어냈다. 서면에 헌법을 녹일 수 있다면, 법률서면의 깊이도 한층 넓어진다. 과거 “대법원 파기환송의 비법(2020. 9. 14.자)”글에서 사실관계를 확정해줄 만한 증거가 탄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헌법이 더해진다면 미슐랭가이드 별 5개 정도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AI가 법률시장을 장악한다고 다들 걱정하지만, 적어도 헌법재판만큼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법률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헌법재판을 많이 활용해보길 권한다. 기회가 되면 국선대리인이 되보길 권한다. 헌법과 헌법재판을 보는 눈이 넓어진다. 헌법질서 수호의 현장에서 일해볼 기회를 놓치지 말자. 필자가 매년 국선대리인 지원신청을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김철 변호사
법무법인 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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