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2023년 장애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

'시외이동권 소송' 관련한 차별구제소송 경과 발표 '주목'

"구제 조치의 판단 범위와 기준에 대한 의문이 던져져야"

출처 : 픽사베이 
출처 : 픽사베이 

"계속 부딪혀 좋은 하급심 판례를 많이 만들어내고 그것들로 흐름을 만들어 내면서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31일 열린 '2023년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에서 윤정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이같이 말했다. 

이날 '시외이동권 소송으로 바라본 장애인차별구제청구소송의 흐름'을 주제로 토론에 나선 윤 변호사는 2014년 3월부터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한 차별구제소송의 경과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2명, 계단이용이 불편한 장애인 1명,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영유아동반자 1명, 64세의 노인 1명으로 구성된 원고들은 "교통 약자의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해 저상버스를 도입하라"며 정부와 지자체 및 시외버스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른바 '시외이동권 소송'이다. 

"장애인만으로 원고를 구성하지 않은 이유는, 바꾸고자 하는 것이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라는 점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윤 변호사는 강조했다. 

윤 변호사가 공개한 소송 준비서면 내용 일부를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원고들은 그동안 광역버스와 시외버스를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가깝고도 편리한 교통수단을 놔두고 지하철이나 기차를 이용하기 위해 멀리 돌아가는 일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장애인들이 처음 지하철을 이용하고자 역사에 엘레베이터를 설치해달라고 했을 때, 관련 기관들은 새로 엘레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과도한 예산이 소요된다고 반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승강기 리프트를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리프트에서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장애인들이 목숨을 건 싸움을 거친 뒤, 지하철역에 엘레베이터가 설치되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역마다 엘레베이터가 설치되었습니다. 비슷한 과정을 거쳐 아직은 부족하지만 저상버스가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시외이동권 소송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단체가 힘을 모아 진행한 기획소송이었다. 하지만 소송 결과는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1심은 버스회사의 휠체어 승강설비 등 승하차 편의시설 제공 의무 부분을 인정했다. 2심도 버스회사의 휠체어 승강설비 제공 의무를 인정해 일부 승소했지만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이 파기환송됐다. 현재는 파기환송 2심이 진행 중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닌데, 이 사건 소송은 이제 거의 10년 가까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소송이 계속되던 와중에 경기도에서 2층 저상형 광역버스를 도입했고, 일부 구간에서 운행을 했습니다. 이 소송의 영향인지 모르겠으나, 긍정적인 변화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2층 저상형 광역버스도 휠체어 전용공간을 제대로 설치하지는 않았다. 결국 이 부분에 대해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해 2021년 "휠체어 전용공간을 제대로 설치하라"는 확정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상 구제조치청구를 인정한 첫 사례다. 

윤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7년 제정돼 2008년 시행된 법인데, 아직까지 법원에서는 이 법이 생소하다"며 "구제조치의 판단 범위와 기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던져지고, 이 질문들은 소극적 판단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이어 "다만,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있는 편의점 범위를 넓힌 판결처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해 기존 법령의 위헌·위법성을 명확히 지적하고, 장애인 차별을 구제한 긍정적 판결도 존재한다"며 "시외이동권 소송에서 대법원은 원고청구 인용부분을 파기하기는 했지만 '법원은 구체적인 사안별로 여로 사정을 종합하여 위와 같은 분쟁이 존재하는지를 판단하되, 비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인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판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사장 김성재)가 주최한 '2023년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는 31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열렸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영훈), 보건복지부(장관 조규홍), 법무법인 태평양(대표변호사 서동우), 재단법인 동천(이사장 강용현)이 후원했다.

이날 강송욱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가 '2023년도 장애 인권 디딤돌 판결'을, 변재원 장애인권활동가가 '2023년도 장애 인권 걸림돌 판결'을,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가 '2023년도 장애 인권 주목할 판결'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어 이소아 변호사와 배광렬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 등이 지정토론을 했다.   

/오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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