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근 변호사
김원근 변호사

미국의 재판절차에서 가장 큰 특징은 절차의 진행은 대부분 당사자의 신청이 있어야 열린다. 변론을 열수 있는 권한을 판사가 아닌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는 증거의 수시제출 및 준비서면의 진술을 위하여 주기적으로 변론이 열리고 판사의 승인이 없으면 어떤 증거조사의 진행도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구조적인 차이점은 재판과정의 실무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소장과 답변서에 (“소답”) 관한 것이다. 변론을 주기적으로 열어주는 우리식 제도의 단점은 당사자들에게 주장과 증거제출을 계속해서 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점에 있다. 결국 주요한 주장과 증거방법을 변론종결 단계에서 제출하는 상황들이 만연해있고 심각한 재판지연의 원인이 되고 있다.

미국의 법정에서는 소장에 구체적인 사실관계의 주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거나 사실에 관한 주장은 충분하지만 법적으로 인용하기 어렵다고 보여지면 소장자체를 기각하고 소송을 종결한다. 답변서도 같다. 이런 경우 증거조사 절차로 들어가기 이전에 케이스가 종결되는 것이다. 당사자의 주장은 소답으로 확정하고 이후 새로운 주장을 하려면 법원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우리식으로 준비서면을 변론기일마다 제출하면서 새로운 주장을 하는 것은 미국식 재판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주장내용을 보충하고자 한다면 (예, 중요한 사실관계를 이후 증거조사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경우) 준비서면을 제출하는게 아니고 소답을 변경하는 신청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법정에 제출되는 답변서 중에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합니다. 자세한 답변 내용은 추후 제출하겠습니다’ 라는 내용을 제출하여도 문제가 안된다. 미국식의 재판제도에서는 이와 같은 경우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법적으로 판단되고 잘못하면 패소도 각오해야 한다. 법률요건에 맞지 않는 엉성한 내용의 소장도 제법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소권남용으로 보여지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런 잘못된 소답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계속해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재판에서 이와 같이 소답단계에서 케이스가 종결되는 경우는 대략 30% 정도는 되는 것으로 볼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소답단계에서 케이스를 종결시키는 절차가 없다.

차이점은 미국식에서는 소답에 문제가 있을 경우 이를 주장하는 당사자의 신청이 있으면 법원에서는 변론을 열어서 이를 심리하고 결정하는 구조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변론의 이슈는 소답자체로서 케이스를 기각할지 여부에만 한정되어 있어서 판사가 당사자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케이스를 종결할 수 있는게 가능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방식처럼 주기적으로 변론을 여는 경우 이렇게 특정된 이슈를 다루는게 아니기 때문에 케이스 종결이 불가능하고 변론은 계속 속행되는데 이는 지연의 결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소송법에도 변론준비절차 및 집중 증거조사제도가 도입되어 있고 증거조사를 마친뒤 집중 증거조사기일에 케이스를 종결할수 있다 (민소법 287조: 법원은 변론준비절차를 정상적으로 마친 경우에는 첫 변론기일을 거친 뒤 바로 변론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민사소송규칙 69조 3항에는 변론준비기일을 지정하고, 기간을 정해 당사자로 하여금 그 기간 내에 준비서면 등의 제출·교환과 증거신청을 하도록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사실관계다툼이 비교적 간단한 경우 당사자들은 증거조사를 통하여 현출된 사실관계만 가지고 판사의 법적인 판단을 신청하면 한번의 변론으로 케이스를 종결할수 있다.

위 좋은 제도는 우리나라 재판실무에서 이용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판사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식처럼 변론을 신청할수 있는 권한을 당사자에게 부여해주면 당사자들은 이런 절차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재판절차는 훨씬 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될 것임이 분명하다.

/김원근 변호사(사시 30회)

미국 버지니아·메릴랜드·D.C.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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