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3. 7. 17. 선고 2018스34 전원합의체 결정

이수현 변호사
이수현 변호사

1. 사실관계

가. 이혼소송의 피고(반소원고, 이하 ‘피고’라고만 합니다)가 전기통신사업법이 정한 전기통신사업자인 위반자에게, 원고(반소피고, 이하 ‘원고’라고만 합니다)의 휴대전화번호에 대한 1년간의 통화내역을 제출하도록 명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하였고, 1심 법원이 피고의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받아들여 전기통신사업자인 위반자에게 문서제출명령을 하였다.

나. 위반자는 ‘통화내역 제공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본문에 위반자의 협조의무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1심 법원에 통화내역 제출을 거부하였다.

다. 제1심 법원은 위반자가 문서제출명령에 따르지 않았음을 이유로 과태료를 부과하였고, 이에 대해 위반자가 원심에 즉시항고하였다.

라. 원심은 통신사실 확인자료는 문서제출명령의 대상이 된다는 이유로 위반자의 즉시항고를 기각하였고, 위반자는 1심 법원에 제출한 거부 사유와 같이 전기통신사업자인 위반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본문을 이유로 그 자료의 제출을 거부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원심 결정에 대하여 대법원에 재항고하였는데, 대법원 다수의견은 통신비밀보호법에서 정한 통신사실확인자료는 민사소송법상 문서제출명령의 대상이 되고, 위반자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본문을 들어 제출을 거부하는 것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판시하며 원심의 결정을 지지하였다.

2. 쟁점

민사소송법은 법원이 소송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도 문서의 제출을 명할 수 있고(제347조), 제3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 응하지 않은 때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제351조, 제318조, 제311조 제1항).

그리고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본문은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위 규정에는 민사소송법을 열거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전기통신사업자는 빈번하게, 통신사실 확인자료의 제출을 명하는 민사소송법상 문서제출명령에 대하여 전기통신사업자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본문의 규정을 들어 그 제출을 거부하여 왔고, 이에 실무상 전기통신사업자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본문에 민사소송법이 규정되어 있지 않음에도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3. 평석

이 사건의 다수의견은, 법원은 민사소송법 제344조 이하의 규정을 근거로 통신사실확인자료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을 할 수 있고 전기통신사업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며,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은 제출 거부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다수의견은, 통신비밀보호법과 민사소송법은 그 입법목적, 규정사항 및 적용범위 등을 고려할 때 각각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입법취지를 가지는 법률이어서,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민사소송법이 정한 문서제출명령에 의하여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더라도 민사소송법상 증거에 관한 규정이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는 점,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본문에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이 추가된 2001. 1. 29. 개정 이후인 2002. 1. 26. 전부 개정된 민사소송법이 제344조 제2항에서 문서제출의무를 확대하면서 통신비밀보호법이 정한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출의무의 예외로 규정하지 않은 점, 통신비밀보호법 제13조의2는 민사소송법 제294조에서 정한 ‘조사의 촉탁’의 방법에 따른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통신사실확인자료가 문서제출명령의 대상이 된다고 해석해도 통신비밀보호법의 입법목적에 반한다거나 법 문언의 가능한 범위를 넘는 확장해석이라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들어, 원심의 판단을 지지하였다.

이에 대하여 별개의견은, 위반자가 문서제출명령에 대하여 즉시항고로 다툴 수 있었음에도 즉시항고를 하지 않아 문서제출명령이 그대로 확정되었고, 이미 발령된 문서제출명령의 의무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절차인 과태료 재판에서 문서제출명령 자체의 적법성을 다툴 수는 없으므로, 적법하게 확정된 문서제출명령에 불응하였음을 이유로 과태료를 부과한 제1심 결정을 유지한 원심결정은 적법하다는 의견을 내었다.

반면 반대의견은, 법원은 민사소송법상 규정을 근거로 통신사실확인자료에 대하여 문서제출명령을 할 수 없고, 법원이 설령 문서제출명령을 하더라도 전기통신사업자는 통신비밀보호법을 들어 문서제출명령의 대상이 된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출을 거부할 수 있으며, 법원은 그 부제출을 이유로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즉 반대의견은, 통신비밀보호법은 전기통신사업자에게 법률에서 정한 예외에 해당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제공할 수 없도록 하는 강한 일반적 금지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예외적으로 법원에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조사·송부의 촉탁에 관한 민사소송법 제294조를 특정하고 있을 뿐 (민사소송법 제351조를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이에 관한 전기통신사업자의 협조의무를 정하지도 않았으므로 민사소송법이 적용되는 소송에서 조사·송부의 촉탁을 받은 상대방인 전기통신사업자가 그에 응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통신비밀보호법과 민사소송법의 충돌 상황은 특별법인 통신비밀보호법을 우선함으로써 해소되어야 하므로 원심 결정은 파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견이 설시한 것처럼,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본문에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이 추가된 것은 2001. 1. 29. 개정으로 인한 것이고, 그 이전에는 휴대전화의 사용이 지금처럼 일상화되지 않아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 자체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음은 물론, 위 개정 당시까지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의 범위나 그 중요성 혹은 심각성을 제대로 알 수 없었기에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에 민사소송법이 규정되지 않은 것이 입법적 불비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후 개정된 민사소송법 제344조가 획기적으로 일반적인 제출의무를 규정하고 그 의무의 범위를 확장하면서도 통신비밀보호법이 정한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출의무의 예외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입법자가 통신비밀보호법과 민사소송법을 별개로 보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기통신사업자의 주장과 달리 법원은 문서제출명령이 신청되더라도 그 제출명령의 채택 여부 및 그 범위를 신중히 판단하고 있어, 법원이 이미 민사소송법상 문서제출명령에 대한 규정과 통신비밀보호법상 예외규정을 조화시키고 있다.

특히, 법원이 민사소송법상 문서제출명령에 따라 제출받을 수 있는 통신사실확인자료는, 통화 당사자의 기지국 위치, 통화 시간, 통화 상대방, 통화 일시 등이 나타나는 것이 고작이고 그 내용은 전혀 알 수 없는 제한적인 자료인 데다, 개인정보의 침해나 사생활 침해의 소지도 거의 없어, 국민의 사생활에 대한 ‘감청’에서 보호하고자 했던 통신비밀보호법의 입법 취지와는 아예 거리가 있다.

게다가 통신비밀보호법 제13조의2가 민사소송법 제294조가 정한 ‘조사의 촉탁’ 방법에 따른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허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통신사업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본문만을 거론하며 법원의 촉탁 및 제출명령에 응하지 않았다.

즉, 전기통신사업자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을 내세워 민사소송법이 규정한 문서제출명령제도를 형해화시키고 있으며, 더욱이 법원이 통신비밀보호법 제13조의2를 적용하더라도 전기통신사업자가 자의적으로 자료의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현 소송 실무를 도외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는 별개의견이 원칙에 가장 충실하다고 보지만, 민사소송법 제351조에 근거하여 법원은 증거조사에 필요한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출을 전기통신사업자에게 명할 수 있고, 전기통신사업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을 근거로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다수의견에 찬성하는 바이다.

/이수현 변호사·충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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