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신세계, 14~22일 '부동산 오브 슈퍼맨' 상연

은퇴 영웅 '슈퍼맨'이 당한 전세사기 수법과 대응

확정일자 기록, 등기부등본 확인에도 '속수무책'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 내년중 재상연 계획

"누구도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극단 신세계(대표 김수정)는 14일부터 22일 서울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부동산 오브 슈퍼맨'을 상연했다.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실제 전세사기 사건을 바탕으로 한 창작극이다.

전세사기 피해 당사자라는 김 대표는 "특약 문구까지 신중하게 고민하며 계약을 하고, 확정 일자를 받아 전입신고를 했는데도 기획부동산 전세사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며 "연극으로라도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전세사기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의 산물이며, 사회 재난에 해당한다"며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아냐 하는지, 그에 대한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연극을 상연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 전세로 살고 있는 빌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영상 속 슈퍼맨의 모습(사진: 극단 신세계 제공)
△ 전세로 살고 있는 빌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영상 속 슈퍼맨의 모습(사진: 극단 신세계 제공)

슈퍼맨(이강호 분)은 전세 3억 5000만 원짜리 서울 성북구 에코드림 빌라 302호에 산다. 전세자금은 대출을 통해 마련했다. 성북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의 작은 빌라는 편안한 쉼터이자 안식처다. '은퇴한 영웅'을 인터뷰 하는 PD에게도 집을 자랑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2년 전세계약 만기를 앞두고 계약 당시 집주인에게 전화했더니 "빌라를 팔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왜 알려주지 않았냐"고 따져보지만 제대로 된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정사정해서 새 집주인 전화번호를 알아냈지만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부재중 통화를 남기고 문자와 카톡을 수십 개 남겼지만 역시 묵묵부답이다. 부동산에 연락해봤지만 계약을 도왔던 중개 보조원은 퇴사했고, 공인중개사 사무실은 문을 닫았다.

불안한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등기부등본을 열람했다. 그곳에는 '근저당 5000만 원'이 똑똑히 적혀있었다. 새 집주인의 등장과 함께 계약 당시에는 없던 근저당이 드러났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던 그에게 며칠 뒤 전화가 걸려왔다. 새 집주인의 부인이었다. 집주인은 구치소에 있다고 했다. 이외에 별다른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집에서 내쫓기고 빚만 남을까 봐 두려웠던 슈퍼맨은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고자 했다. 전세금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던 그는 대한법률구조공단과 주택도시보증공사 전세피해지원센터를 찾았다.

공익법무관과 법무사에게 상담을 받았으나 마음은 더 답답해졌다. 집 주인이 바뀌는데 세입자에게 알려줄 의무가 없고, 공인중개사 사무실은 집 계약 이후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국가가 운영하는 기관에서 상담을 받는데, 그 내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근저당 5000만 원'정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에 희망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슈퍼맨은 전세계약을 갱신했다.

같은 집주인을 둔 옆집 부부는 이사를 가려고 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또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집주인은 사기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전세사기'를 당한 것이라는 의심이 점점 짙어졌다.

 "이 집에 사는 게 지옥이라고 지옥."

계속해서 암울한 진실이 밝혀졌다. 어느 날 갑자기 근저당 액수가 늘어났다. 집주인이 돈을 갚지 않은채 "대출을 갚았다"며 위조한 서류로 등기부등본에서 빚이 잠시 사라졌던 것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은행은 다시 근저당을 복원시켰다.

슈퍼맨의 전셋집은 '깡통전세'였다. 실제 집의 가치는 3억 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5000만 원을 더 비싸게 주고 전세를 살고 있었다. 신축 빌라는 시세를 알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제 그가 받을 수 있는 돈은 없어졌다. 확정일자나 등기부등본은 아무런 법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 누가 죽어나가야 법이 바뀌는 겁니까."

처절했다. 슈퍼맨도, 옆집 부부도 전세사기 피해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전세사기 문제가 나온 뉴스 영상이 계속해서 무대 위에 송출됐다.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고, 누군가는 계속 싸움을 이어나갔다.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순 없었다. 관객들도 점점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슈퍼맨은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 '빌라의 신'을 몰아내고자 한다. 그동안 소시민으로 살아왔던 슈퍼맨은 배트맨, 캣우먼 등 영웅들과 함께 '빌라의 신'과의 정면 승부를 펼친다.

이 승부가 '완전한 해결'을 뜻하진 않는다. 피해자와 영웅들이 나섰지만 기존 피해자들은 여전히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으며, 전세금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 오토바이에 앉아있는 슈퍼맨(사진: 극단 신세계 제공)
△ 오토바이에 앉아있는 슈퍼맨(사진: 극단 신세계 제공)

누구나 전세사기를 당할 수 있다. 심지어 영웅인 슈퍼맨까지 말이다.

김 대표는 "전세를 살아본 사람들이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법들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게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등기부등본의 공신력을 확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전세사기를 당한 '김 부인'을 연기한 김보경 배우는 "슈퍼맨이 날 듯이 팔을 뻗고 주변 인물들과 같이 객석을 바라볼 때 관객들과의 연대의식을 느꼈다"며 "나도 힘들게 버티면서 살아가는데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저도 전세사기 피해자로서 이 공연이 조금이라도 피해자분들께 힘이 됐으면 좋겠다"며 "누구나 전세사기를 당할 수 있다는 점과 왜 이게 사회적 재난인지에 대해 관객들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연극의 법률자문을 맡은 박선영(변호사시험 3회)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다양한 법적 해결 방안에 대한 장단점과 법률리스크를 연극에 제대로 담고자 했다. 실제 김 대표와 배우들의 전세사기 상담을 하며 나온 내용도 연극에 그대로 녹아있다. 

박 변호사는 "전세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등기부등본을 보는 방법 정도는 알아야 한다"며 "해당 부동산에 자신보다 먼저 변제받을 가능성이 있는 부채가 존재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시장이 변동성이 많은 시기에는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전세보증보험과 같이 보증금을 보호할 수 있는 보험상품을 가입해서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단 신세계는 내년 5~6월께 '부동산 오브 슈퍼맨'을 재상연 할 계획이다. 전세사기 가해자와 부동산 정책 담당자 등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를 담아 좀더 풍성한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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