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현 서울중앙지법 국선전담변호사 인터뷰

연세대 학생회서 휠체어 경사로 설치 요구도

"누군가의 권리보장 돕고 싶어" 변호사 꿈꿔

재판변론뿐 아니라 장애인등록 등에도 도움

'성명모용 사건'서 형사비용보상까지 얻어내

"소년범 처벌과 사회화 등 교육 모두 중요"

△ 사진 = 박도하 기자
△ 사진 = 박도하 기자

"내 권리를 다 침해 받으면서 남의 권리를 챙긴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다만 내 권리와 먹거리가 어느 정도 보장된 상황이라면, 변호사법 제1조의 '변호사의 사명'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한 번씩 되돌아볼 여유를 꼭 가졌으면 합니다. 기본적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사명은 대법원도 변호사가 '상인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요. 다른 변호사님들과 함께 변호사의 사명을 실천해 나가고 싶습니다."

서울 서초동 오퓨런스빌딩 13층에 있는 서울법원 국선전담변호사 사무실에서 손영현(변호사시험 6회) 변호사를 만났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점자로도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법원에서 명함을 지급하지 않아 사비를 들여 직접 만들었다는 그의 명함에서부터 사회 약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엿보였다.

손 변호사는 연세대 화학과 재학 시절,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여성주의와 장애인 인권 활동에 심취했다. '이과대 화장실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여자화장실이 아예 없던 과학관 6층에 여자화장실을 설치해 줄 것과, 휠체어 경사로를 만들어 줄 것을 학교에 요구하기도 했다.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갈망은 유치장에서 시작됐다. 그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시위에 참여하다가 2006년 5월 안양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잦은 데모 때문에 학사경고 누적으로 2006년 8월 학교에서 제적 처리됐다. 같은해 10월 다시 수능을 치르기 위해 들어간 학원 기숙사에서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에서 보낸 통지서를 받았다. 예정된 조사일에서 하루가 지난 시점이었다. 함께 간 어머니가 겨우 사정해 밤 11시 반까지 조사를 받았다.

"안양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며 만난 변호사님 덕분에 변호사라는 직업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저를 보호해주면서,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결과를 예측하시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거든요. 검찰청법상 '공익의 대표자'라는 표현이 좋아서 검사도 생각해봤지만, 최소한 누군가가 권리를 침해받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직업은 변호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서울중앙지검을 나와 서초동을 바라보면서 '우리 아들이 의사를 할 게 아니라 변호사로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학점은행제로 학위를 취득하고 학사장교로 입대했다. 근무 당시 1년에 한 개꼴로 표창을 받았다. 한국군에서 받은 표창은 4개, 미군에서 받은 훈장은 1개였다. 5년의 군대 생활을 마치고 대위로 전역한 그는 다시 연세대에 재입학해 학위를 받고 로스쿨에 진학했다.

"당시는 소셜미디어로 대통령을 욕한 사건도 '상관 모욕죄'로 처벌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같은 부대에 있던 장교는 싸이월드에 올라간 집회 현장에 있던 사진 때문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3년간 '기소휴직' 상태로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급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다른 일도 할 수 없었죠. 그래서 헌법소원을 했지만 저같이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있었다면 아마 3년을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이런 사건을 곁에서 목격하니 군 인권도 신경쓰는 변호사가 돼야겠다고 다짐했죠."

△ 손영현 변호사가 미군으로부터 받은 훈장(사진: 손영현 변호사 제공)
△ 손영현 변호사가 미군으로부터 받은 훈장(사진: 손영현 변호사 제공)

로스쿨에서 공부를 할 때도 문제의식은 여전했다. 로스쿨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6년, 변리사법이 개정되면서 변호사에게 부여되던 변리사 자격이 사라졌다. 그는 변호사시험을 앞두고 특허청에서 개최한 공청회에 직접 참석해 반대 의견을 강력하게 어필했다. 관련 헌법소원도 냈다. 현재는 대한특허변호사회에서 부회장으로 활약 중이다.

"다른 사람 인권에 관심이 많은 만큼 제 인권에도 관심이 많습니다(웃음). 예비 변호사로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가만히 둬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비 변리사가 대부분인 자리였지만 최소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았습니다. 로스쿨에서 공부하고 변호사가 되면 변리사로도 일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갑자기 졸업반인 3학년 때 법을 바꾸는 건 '신뢰보호의 원칙' 위반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헌법소원도 냈지만 '신뢰보호의 대상이 반드시 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각하됐습니다."

로스쿨에서는 국선전담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고 꿈을 키웠다.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뜻깊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변호사가 된 이후 꾸준히 지원을 하다가 결국 3년차에 국선전담변호사로 선발됐다.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을 묻자 '성명 모용(姓名冒用) 사건'을 꼽았다. 범인이 다른 사람 이름을 대고 수사를 받았으나 지문 비교로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피의자 신문조서상 지문과 피해자 지문이 동일한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알 수 없다는 답변을 했다. 결국 실제 범인의 인적사항을 알아내고 경찰청에 범인의 지문을 요청해 다시 한 번 지문을 비교했다.

"다행히 실제 범인의 지문과 비교를 하니 유사성 확인이 돼 사건이 일단락 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진범이 자백을 하니 공소기각 판결이 났죠. 하지만 '무죄'가 아니라 '공소기각'이라 형사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무죄 아니라 줄 수 없다'고 했지만 서울고법에서는 '대법원 판례상 판단 이유에 무죄라고 써있어도 형사비용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해서 66여만 원을 배상 받았습니다."

손 변호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국가는 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는 당해 사건의 피고인이었던 자에 대하여 그 재판에 소요된 비용을 보상하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제194조의2 1항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그는 피해자 동의를 받아 2021년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냈다.

실제로 국선전담변호사 업무는 맡은 업무에서 딱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건을 진행하다가 주민센터 복지 담당 공무원하고 통화를 하는 건 예사다. 장애인 등록을 도와주거나 청소년행복재단 등 피고인에게 필요한 기관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한 발달장애인이 절도로 경찰에 잡혔을 때 '발달장애가 있다'고 하니 '등록증을 가져와라'고 했다고 합니다. 답을 하지 못해 진술조력인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호가 필요했는데, 경찰이 무작정 '거짓말 한다'고 몰아간 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넣었고, 지난해 10월 경찰청장에게 발달장애인 사건 조사 준칙을 마련하라는 권고가 나왔습니다."

△ 사진 = 박도하 기자
△ 사진 = 박도하 기자

손 변호사는 우리나라에 좀 더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범죄자가 계속 방치되면 결국 더 많은 범죄자가 배출될 우려가 크다는 취지다.

"사회안전망에서 걸러지지 못해 범죄로 빠지는 분을 많이 만납니다. '완전히 선량하지 않은 약자'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잔인하게 구는지 깨닫습니다. 조금 나쁜 사람도 챙겨줘야 사회적으로도 재범이 낮아지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성인이 되기 전 보육원에서 나오면 온갖 범죄의 표적이 됩니다. 제대로 생활보호수당도 받지 못하고, 낭떠러지로 떠밀리는 겁니다. 이름을 빌려주고 범법을 저지르는 회사의 '바지사장'이 되어 징역을 살게 되는 등 일이 계속 벌어집니다. 강한 처벌도 필요하지만, 교화, 정신적·물질적 도움도 있어야 합니다."

그는 적어도 20대까지는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봤다. 신체적으로는 나이가 들었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사례를 수도 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소년범이 처벌을 받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처벌로 인해 받아야 할 교육을 받지 못하는 건 문제입니다. 교육을 받지 못하면 할 줄 아는 건 '나쁜 짓' 밖에 남지 않으니까요. 사회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은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등 당연한 것들을 전혀 배우지 못하고 교도소에서 시간을 보내니,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겹습니다. 결국 잠재적인 위험 요소로 사회에 남아있게 되므로 사회 공공의 차원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손 변호사는 변호사들이 남의 권리뿐 아니라 자신의 권리도 보호할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호사는 누군가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의 권리를 보호하려면 자기 권리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역뿐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계속 문제 제기를 하고, 대응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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